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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허브 Jun 14. 2022

어쩌다 사장2 : '굳이'의 미학


도시는 사람을 평면적이고 작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 사방에서 들리는 소음, 핸드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과의 계속되는 부딪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극에 인간은 사색할 시간을 빼앗긴다.


도시는 교활하다. 인간은 자신의 인간성이 납작해지고 있다는 걸 쉽게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도시 생활은 그 어느 곳 보다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잘 짜 맞춰진 대중교통은 사람들을 여기저기로 옮겨 놓는다. 좋은 카페, 좋은 식당, 좋은 문화생활을 쉴 새 없이 밀어 넣어 삶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나에게 커피를 내어주는 사람의 손목에 왜 보호대가 끼워져 있는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식당 직원들이 밥은 챙겨 먹고 일하고 있는 건지, 왜 저 할머니는 지하철역 앞에서 핸드폰만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 거까지 일일이 관심을 갖기에는 도시는 너무 많은 사람을 품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굳이’를 잃어버렸다. 인사, 사과, 아는 척, 이해. 

‘굳이’ 해야 하는 것들은 점차 도시에서 삭제되어 갔다.


예능 ‘어쩌다 사장2’는 그 ‘굳이’가 범벅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오늘 일정을 궁금해하고, 굳이 농담을 한 번 던진다. 

도시에서는 의심 어린 눈초리와 함께 무시당할 행동이지만, 이곳 공산면에서는 당연한 일상이다. ‘굳이’ 한 행동에서 그들은 웃음을 만들어 내고, 속상함을 털어내며, 도움을 받는다. 


물론 ‘어쩌다 사장2’의 공산면 주민들은 서로가 다 아는 사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마을도 작고, 거주하는 인원도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가 계산대에서 돈이 모자란 걸 발견하면, 어른은 선뜻 주머니에서 남은 금액을 꺼내어 대신 내 주려 한다. 공산면에서 무심함은 오히려 이질적인 것이다. 이웃의 인사가 시큰둥하다면, 확신컨대 그 이웃을 쫓아가서 ‘굳이’ 한 번 더 물어볼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시골은 불편하다. 대중교통이 최악인 건 당연하고, 필요한 물건도 바로바로 구매할 수 없다. 배차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는 바람에 버스를 놓치게 되면 길에다 30분은 그냥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버스가 항상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도시가 아닌 곳은 뭐 하나 사러 나가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직업과 근로자의 수도 현저히 적다. 한국은 50%가 넘는 인구가 전부 서울 하나에 몰려 있다. 지방에는 대체인력이란 게 없으니 자연히 노동환경도 나빠진다. 공산면의 단 하나뿐인 마트의 사장님은 쉬는 날 대신 가게를 운영해 줄 사람이 없어, 21년 동안 연중무휴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 공산면에는 당연하게 배려가 깔려 있다. 버스 기사님은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기다려 주고, 함께 계를 붓고도 휴가를 가지 못 하는 마트 사장님을 친구들은 기꺼이 이해해준다.


인구밀도는 행복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사람은 모두 개인 공간이란 게 필요하다. 개인 공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단지 옆을 걸어갈 뿐임에도 인간은 ‘침해’ 받았다고 느낀다. 이 근거에 따르면 서울은 공산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하지 못 한 지역이다. 실제 국민행복지수를 보면 서울 대부분의 지역이 공산면이 있는 전남 나주보다 삶의 만족도 지수가 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한 도시인들의 행복도 지수가 떨어진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수많은 이유 중에서 ‘어쩌다 사장2’에서 계속 보여주었던 ‘굳이’가 의외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회심리학 연구자들은 행복과 관련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친한 친구’를 꼽는다. 언제라도 만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쩌다 사장2 속 출연진들은 ‘굳이’ 말 한마디를 더 걸어,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주민들과 친구가 된다. 그곳의 삶은 서울에 비해 단순하고 지루할 테지만, 더 행복하다. 어딜 가도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 글의 결론은 “시골마을은 정감 있다”가 아니다. 나는 ‘굳이’를 통해 맺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마을 주민들 모두가 친밀한 관계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생활 보호가 안 되고, 보는 눈이 많으니 행동에 제약도 많이 따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시라고 사생활이 더 보호된다 거나, 행동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배로 많아지니 살짝 넘어져도 수십 개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이 도시다. 

  

사람은 많지만 관계는 적은 것이 도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고독사 비율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제일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지역은 수도권이다. 2020년 동안 2880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였는데, 그중 1862명이 수도권에서 나타났다.

만약 그들의 이상 증상을 누군가가 일찍 알아차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혹은 부재에 허전함을 느낀 사람이 좀 더 빨리 나타났다면 누워있던 마지막 자리가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도시 사람들의 개인화는 타인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지만, 존재에 대한 망각이기도 하다. 눈앞의 존재가 하나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점차 흐려지는 것이다. 


어쩌다 사장2는 잊고 살던 ‘굳이’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굳이 건네는 한 마디에서 개인의 하루와, 삶과,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것들을 오지랖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 도움이 없는 것과,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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