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고, 사람들은 바삐 살아가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도 유독 이 ‘1인 식사 문화’만은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은 집단생활이 당연하고,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며,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보니 그런 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그것도 경쟁과 효율성 안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제는 남이 혼자서 밥을 먹든 면을 먹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여전히 고깃집은 좀 쳐다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혼밥이 일상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며 함께 뜬 콘텐츠가 있다. 바로 ‘먹방’이다.
먹방이라는 콘텐츠의 최초 의도는 ‘혼자 밥 먹지 말고, 같이 먹어요’였다. 아직 혼자 먹는 게 어색하고,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다이어트나 운동, 지병 등의 이유로 먹고 싶은 걸 먹지 못 하는 사람들의 대리만족 콘텐츠로 성격이 변화해 갔다. 점차 음식들은 자극적이게 됐고, 양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새로운 먹방을 원했고 곧 ‘점보 라면 20분 내에 다 먹기’, ‘불냉면 다 먹기’와 같은 챌린지 콘텐츠가 생겨났다.
먹방 콘텐츠는 이제 단지 먹는 행위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청자와 소통하고, 새로운 메뉴와 조합을 찾아내고, 지역 소상공인과 상생하고, 요리 과정을 체험해야 한다. 물론 대식은 기본이다.
나도 평소에 먹방을 즐겨보는 편이다. 특히 배는 고픈데 밥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늦은 시간에 주로 보고 있다. 물론 먹방을 통한 대리만족이 항상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보다가 못 참고 결국 냄비에 불을 올린 적이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한 사람이 한 번에 20인분의 음식을 먹는 것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먹방 유튜버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세상에 대식가가 이렇게 많구나, 그것도 좁은 이 한국 땅에. 이 나라는 여러 가지로 재주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넘쳐 난다. 여기가 터가 좋나.
놀랍게도 먹방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해외 유튜버들도 ‘Eating show’가 아닌 ‘Mukbang’이라는 단어를 내걸고 먹방을 한다. 한국에서 유행한 먹방 콘텐츠는 곧 해외 유튜버들에게도 전파된다. 반대로 우리에게 생소한 해외 음식도 한국으로 넘어와 콘텐츠가 된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던 유튜버들이 TV 방송에 진출하여 출연하는 것도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먹방’ 시장은 여전히 크기를 넓혀가고 있고 그 수요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지금까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먹방 콘텐츠가 하나 등장하였다.
콘텐츠의 이름은 ‘음식 랜덤 디펜스’, 줄여서 ‘음랜디’라고 부른다. 음랜디가 어떤 콘텐츠인지에 대해서는 해당 콘텐츠를 처음 시작한 유튜버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 적겠다.
“시청자가 주문하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막아내는 콘텐츠”
유튜버는 음식을 배달받을 주소를 시청자에게 공개하고, 시청자는 자신이 결제한 음식을 해당 주소로 배달시킨다. 그리고 유튜버는 배달받은 음식을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이 콘텐츠의 룰이다.
세부적으로 유튜버에 따라 ‘겹치는 메뉴 제외’, ‘유튜버가 못 먹는 혐오 음식이나 너무 매운 음식 제외’ 등 룰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공격’한 음식을 먹어서 ‘방어’한다는 포맷은 동일하다.
이 콘텐츠가 그동안 보아왔던 먹방과 다른 점은 상당히 가학적이고, 누군가에게 있어 기만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먹방 유튜버가 반드시 가져야 되는 기본 태도 한 가지를 꼽으라 한다면 그건 ‘끝까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게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 많이 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식사가 끝나갈 때쯤이 되면 처음처럼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먹방 유튜버들은 끝까지 음식이 처음처럼 맛있다는 듯이 먹는다. 시청자는 그 부분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대중이 단지 많이 먹는 걸 좋아했더라면 먹방이 아니라 푸드파이터 대회가 흥했을 것이다.
‘음랜디’ 콘텐츠의 끝은 대부분 비슷하다. 너무 많은 음식에 괴로워하면서 꾸역꾸역 입 안에 음식을 집어넣는 유튜버의 모습이다. 더 이상 눈앞의 음식을 맛있어하지도, 즐겁게 즐기지도 않는다. 시청자의 ‘음식 공격’을 ‘섭취로 방어’하여 승리하는데 의의를 가진다.
이것이 기만적인 이유는 과한 음식 소비에 있다.
누군가는 그럼 그동안의 먹방 영상도 기만적이라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소식가가 제 양대로 적게 먹는 것이 당연하듯이 대식가도 제 양만큼 많이 먹는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만 먹었기 때문에 기만보다는 ‘식사’의 성격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음랜디는 다르다.
유튜버들이 음랜디 콘텐츠를 진행하며 꼭 하는 말이 있다.
“억지로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끝날 때쯤이 되면 먹다가 지쳐 의무적으로 음식을 씹어 넘기는 무미건조한 모습만 남는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이렇게까지 음식을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매일 국제적 이슈와 환경 문제로 식량난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마당에 이 콘텐츠가 나오는 게 적절한 타이밍일까?
장을 보는 사람들은 체감할 거다. 소비자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다. 1년 동안 천 원이 넘지 않던 숙주가 갑자기 30%가 올라 1,200원이 되었다. 980원이던 버섯은 이제 세일을 해도 절대로 천 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트레이더스, 코스트코 등 창고형 할인점은 식용유를 1인당 1~2병씩만 구매할 수 있게 제한했다.
인도는 폭염으로 줄어든 곡물 수확량과 전쟁으로 봉쇄된 수출항 등의 이유로 밀, 설탕, 그리고 쌀의 수출을 제한시켰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밀, 설탕, 쌀을 2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당연히 국제 식량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현재 빈곤국에서는 코로나에 식량난까지 겹치며 기아 문제가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UN은 얼마 전 ‘몇 달 안에 전 세계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적인 식량난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음랜디’ 콘텐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은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유튜버의 입장에서 음랜디는 잘 팔리는 스테디 콘텐츠다. 유튜브에서 ‘음랜디’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최소 25만에서 최대 700만까지의 조회수를 보장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는 유명 연예인과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 다른 나라의 유튜버에게까지도 즉각적인 전파성을 가진다.
이런 콘텐츠가 지금과 같은 식량 위기의 상황에서 어떤 사회적 현상을 일으킬지 우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