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의 영화 관계자들에게 봉준호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배우의 인터뷰 때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으로 언급되거나, 영화 학교의 레퍼런스, 해외 영화 유튜버의 연출 분석 영상 등에서 그의 작품은 심심찮게 등장하곤 하였다.
‘살인의 추억’은 영화학도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에게도 약점은 있다.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언급되어오는 이 영화의 약점. 그건 바로 범인을 너무나도 ‘미스터리’한 존재로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는 2019년이 되어서야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처제를 성폭행 및 살인 혐의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살인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서야, 그의 살인도 멈추었다.
이춘재는 살인의 추억에서 나온 것처럼 미스터리한 존재 따위가 아니다. 그저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가학적인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고, 그걸 지속적으로 과시한 비겁한 인간일 뿐이다.
범죄자를 ‘범죄자 이상’의 인물로 그려내면, 그들의 그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 행위는 뒤에 가려지고 ‘대상화’ 된 존재만 드러나게 된다. 동시에 가해자는 본인이 행한 짓들을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고, 특정한 ‘의미’를 가진 행위라고 인식하게 된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이 스스로를 ‘악마’라고 부르고,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장대호’가 “이번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범죄자에게 ‘경찰 머리 위에서 노는 뛰어난 지능범’이나,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인간’과 같은 캐릭터성을 주는 데에 미디어와 언론만큼 앞장선 매체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미디어가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창작물’이라는 핑계로 범죄자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소화시키던 모습이 근래 들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쓴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드라마 도입부에 실제 사건과 무관하다는 안내문구가 나오지만, 작품에서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특정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죄자를 ‘객관적’이게 묘사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범죄자들이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인한 이유는 그들의 과거가 불운해서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뇌에 이상이 있는 정신이상자여서도 아니다.
그들은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에게서 얻은 분노를 눈앞에 있던 ‘운 나쁜’ 약자에게 해소한 인간쓰레기일 뿐이다.
이 작품은 피해자의 고통과 자극적인 것만 쫓는 언론의 잔인함과 한 ‘인간’ 일뿐인 프로파일러의 고뇌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떠난 자리에는 ‘악마 같은 범죄자’가 아니라 ‘인내하는 프로파일러’와 ‘고통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와 ‘무책임한 언론’이 남아 있다.
마치 ‘대중들이 정말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대중의 인식 변화에 발맞춰 변화해 나간다.
언론과 미디어가 익숙하게 답습했던 ‘범죄자 행적 찾아가기’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조주빈의 서사를 밟아가는 회차를 공개했을 때, SNS와 시청자 게시판은 방송사를 비난하는 글로 뜨거웠다.
2022년의 뮤지컬 데스노트는 20년간 ‘경찰을 뛰어넘는 천재 지능범죄자’로만 표현되어 왔던 주인공 라이토를 ‘유치하고 감정적이며 비겁하고 소극적’인 범죄자로 재해석했다.
대중은 이제 가해자의 삶에 집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우한 과거를 겪은 모든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길 원하고 있다.
연대자들이 피해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전히 너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세상에는 너의 편이 계속해서 존재할 거라고.”
그렇게 세상은 다시 한 번 탈피를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