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화분에 용기 한 거름을 한손 가득 부어주신 분께 바치는 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지적 허영심 가득한 난 책을 읽고 싶었으나, 실상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며 살고 있으나,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립되지 않은 채 하루에도 일희일비하며 실상 내 감정조절조차 번번이 실패해서 가까운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유치 찬란한 아줌마 행렬에 동참해 살고 있는 나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쭈굴 어 들어 있는 요즘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지금보다는 덜 쭈글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야기 방을 어슬렁거리며 찬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생각나무의 작은 화분에 물 한 모금 보태려고 간간이 애를 쓴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현안들에 마주하는 우리 다수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을 한다. 이런저런 채널을 돌려가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채널은 장황하게 논점을 벗어난 화법으로 화자를 대하면 금세 채널을 돌리게 되고, 담백하게 화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단정하게 정리된 논조로 유머감 있게 전달을 하면 어느새 청자인 난 그 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가 이야기한 다른 이야기를 추종해서 쫓아다니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왜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일상의 삶이 편안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하는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느낄 수 있는 연대감과 존경심을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일까? 일면식도 없고 매체에서 그리고 그의 책 속에서 간접적으로 만난 그의 인생에 왜 나는 관심이 생겼을까?
그 질문 속에서 내 나름대로 답을 정리해 보았다.
그분의 이야기에는 애정과 따스함 살아있는 문자를 청자에게 전달하기에 듣는 이들이 공감을 하고 귀 기울이게 된다. 화자가 이야기할 때, 청자는 화자의 의도를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화자는 청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너와 나 그 둘의 관계는 연대와 상생의 관계에서 더 나은 지금 더 편한 우리가 되기 위해 소통해야 하는 취지로 자신의 잘 정리된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듣는 청자는 그 안에서 긴장을 풀고 더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해 보탬의 대화에 참여하길 원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몸을 통해 우연히 세상에. 나온 나라는 존재는 어쩜 그냥 우연의 산물일 뿐 아무것도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로부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무에서 나 스스로가 내 인생의 가치를 정립하고 나만의 길을 설계하고 끌 고 갈 수 있는 건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인생 프로젝트라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나의 삶을 정립하고 그것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그 위에 내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이 잘 된 사람에게 보이는 현상은 자기의 생각을 더도 덜도 아닌 일목요연하게 담백하게 청자에게 오롯이 잘 표현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허영심 가득한 내 눈에 보기에도 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진정 존경심이 내면 깊숙이 꿈틀거린다.
내가 그분의 말에 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청자들에게 달달하고 청량감 주는 아이스라테 같은 화법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대면하는 매일매일의 인생사에 대해 담백하게 대면하고 그대로 인정하나 그래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그 안에서 좀 더 따뜻하게 상생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자고 으쌰으쌰 하는 좋은 에너지를 가진 좋은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어느 매체에서 지나치면서 하신 말씀이. "글 아무나 쓸 수 있어요. 펜이랑 종이만 있으면요. 허허허." 특유의 텃텃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야기해 주셨다.
그분은 모르시겠지만, 그분의 그 한마디는 내 생각나무 화분에 미생물이 풍부한 거름 한아름 내 화분에 넣어주셨다는 사실을... 그. 거름 덕분에 오늘도 용기 내어 긁적긁적 댑니다. 비문 투성인 내 글도 나에겐 소중한 글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사는 공동체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