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도 실력이야. 돈이 없는 너 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태어나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최태민 일가의 자손이고 그러니 그 자체가 실력이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유형과 같은, 삶이 총체적 부정으로 얼룩져도 떵떵거리고 승승장구하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숱하게 보아오면 정말 가난은 죄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는 부자가 천국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나왔다지만 그것은 천국에 가야 증명할 수 있는 일이거니 생각하며, 기회가 공평하지 못하고 공정한 룰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세상의 서민으로 살려면 개천에서 용 나긴 글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연예인 되는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자조적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척박한 환경은 그저 척박한 환경일 뿐이다, 그 속에서 기적 같은 용이 나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해졌다, 이제 그런 기적의 문틈은 바늘구멍만큼이나 작아지고 말았다는, 허탈한 체념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 다수를 비롯해 차기 유력 대선주자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한다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사진=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공식 홈페이지 캡처
과거 대학생 앙케트 조사서 성공의 아이콘 1위로 뽑혔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나라의 살길이 열린다고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정치를 개혁하고, 경제를 살리고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피력합니다.
"미국은 100대 부자 중 70명이 자수성가이고, 30명이 상속부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00명 중 75명 안팎이 상속부자이고 자수성가는 25명가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계층 간 이동이 크게 줄어드는 닫힌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되돌리는 것이 20대 국회의 책무입니다"
(안철수 / 2016.6 교섭단체 대표 연설문 중)
“부모가 노후대비도 포기하고 학원에, 유학에 사교육비를 들여도, 아이들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의 경제적 격차가 곧 자식의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어디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의 시대에 청년들은 절망합니다. 이런 절망을 깨지 않고는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어제도 참았고, 오늘도 참고 있지만, 내일도 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참고 살아오셨고, 우리도 참고 살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 합니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거주지와 무관하게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모든 개혁의 중심에 교육개혁을 두어야 합니다.” -(안철수 / 2015.12 신당 추진 기자회견 중)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위한, 안철수식 해법, 슬로건은 '공정성장'입니다.
"몇 몇 재벌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가 불행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개인도 기업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고, 좋은 일자리도 더 많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분배 하에 우리는 다시 성장할 수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강조해왔던 '공정성장론'입니다. 격차해소와 경제민주화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입니다." (안철수 / 2015 12월 신당 추진 기자회견 중)
이재명 성남시장 블로그 캡처
이재명 성남시장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 이로 꼽힙니다. 이 시장은 빈민 소년노동자 출신으로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가 됐고 시민운동으로 구속도 되었지만 이후 성남시장에 당선, 두 번에 걸쳐 연임에 성공한 데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거침없고 명쾌한 발언으로 어느 순간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 강자로 떠오른 인물입니다.
이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에 '기회가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적어놓고 있습니다. 기회가 공평한 사회,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입니다.
이 시장은 이와 관련 지난 2014년 레이디경향 인터뷰에서 “저는 중·고등학교를 못 다녔지만 검정고시를 치르고 어찌어찌 대학을 갔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소위 신분 상승이라는 것을 했습니다"며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기회가 원천 봉쇄됐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사라지고 개천은 말라서 지렁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양극화 현상으로 부모들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사교육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위한 예로, 이 시장은 사법 시험 존치를 주장합니다.
"로스쿨이 유일한 법조인 양성 선발 방법이 된다면, (고졸 학력) 노무현 대통령 같은 법조인은 나올 수 없고, 빈민 소년노동자 출신의 인권변호사 이재명도 다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유력한 수단이었던 법조인의 길은 가난한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것이고, 판검사 임용, 나아가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갈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계층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특히 가난한 서민의 아들ㆍ딸들에게도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학력 관계없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법시험을 존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불신과 절망의 시대에 그나마 희망사다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스쿨제도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계층이동 기회로서의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합니다." (이재명/2015.7 페이스북 글 중)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식 홈페이지 캡처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 7전 8기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흙수저, 금수저 따로 없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그런 공정한 세상을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 합니다.이번에야말로 대한민국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 주권이 바로서는 국민이 주인인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반칙과 특권이 없는, 원칙과 정의가 바로 서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재인 / 2016.11 박근혜 퇴진 운동 기자회견 중)
“과거 대한민국은 기회의 나라였습니다. 가난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회가 사라진 병목사회입니다. 선택받은 소수만 성공하고, 대다수는 좌절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 7전8기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용 없는 성장’과 ‘성장 없는 고용’모두를 거부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데 국가와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문재인 / 2015.10. 싱크탱크 ‘정책 공감 국민성장 발언 중)
특히 문 전 대표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공평한 교육 시스템의 전제, 교육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도 공평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을 유도하겠습니다. 평생교육과 직업능력개발이 보편적 권리로 인정돼야 합니다. 인생 이모작 준비를 개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습니다. 대학에서 개방형 학제를 운영해 평생학습을 보편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문재인/ 2012.10 글로벌 인재포럼 발언 중)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이 없어졌다면서도 역설적으로 개천에서 진짜 용이 난다고 자신합니다. 이에 대해 나온 것은 몇 년 전 ‘개천에서 용찾기’란 주제로 방송한 MBC스페셜 다큐를 통해서였습니다. 방송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가 가능한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말미에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한 강연 내용을 빌어 관점을 바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였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없어졌습니다. 강남에서 난다, 이런 말 하는데요 저는 정말 이것은 굉장히 왜곡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남에서 물론 서울대학교 제일 많이 들어가고 때로는 판검사도 제일 많이 나고 이럴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진짜 용입니까 여러분? 강남에서 부모님들이 과외 공부시켜 갖고 다 우리가 보기에는 좋은 자리 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저는 정말로 우리 시대에 위대한 사람들은요 결코 성적 좋고 좋은 학교 나오고 그래서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박원순 / 2011.4 MBC스페셜 중)
박 시장은 이 말을 통해 진정한 용은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시사해줍니다. 그러면서 방송에 전달한 ‘개천에서 진짜 용이 납니다’라는 손글씨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다음해에 박 시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 될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더 이상 사회적 인식, 수입이라는 잣대를 따라 탄탄대로만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들어진 가능성을 좇기보단 가능성에 과감히 도전하고, 내일을 보는 눈으로 오늘을 직시해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합니다. 정치가들은 모두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냐, 아니냐를 놓고 보면 여전히 아니다라는 시선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의 꿈의 위력이 더 센 것은 아닐까요? 정치인들 중에서도 말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를 바란다면서도 속내는 정반대인, 엑스맨 같은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의문으로 정치인들 발언을 정리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은 원래 개천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고요. 편하게 태어나 편하게 용이 된 용이 과연 진짜 용일까 하고요. 그러니 기적의 문이 바늘구멍만큼이나 작아졌다 한들 진짜 용이 되는 꿈을 꿔야 하지 않느냐고요. 만약 그나마의 도전과 꿈마저 포기한다면, 그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길 바라지 않는 자들이 이기는 것일 뿐이라고요. 이상 다소 두서없고 장황했지만, 정치인 발언을 통해 보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바라는 미디어꿈이었습니다.
ⓒ 미디어꿈(http://mediakkum.com)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