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여행자의 연극 도전기
한국어를 공부한 나로서 한국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원래 나는 극장에서 직접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극장, 그리고 한국 연극은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했다.
마침 내가 묵던 호텔 근처에 부산은행조은극장이라는 극장이 있었다.
미리 일본어로 된 정보를 찾아봤지만 하나도 없었다.
하긴, 여행 와서 극장에 가려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
적어도 한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할 테니까.
그래서 극장 웹사이트에서 공연 작품과 시간을 확인한 뒤 직접 극장에 찾아갔다.
연극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도착했더니 내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
표를 끊고 극장 안에 들어가 4 열째 자석에 앉았다.
텅 빈 극장은, 여행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한국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 신선하고 특별했다.
점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전부 커플들이었다.
앞으로 시작될 연극에 들뜬 듯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내 옆자리에도 커플이 앉았다.
혼자 온 나는 갑자기 너무 어색해졌다.
극장 안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 뭐지? 한국에서는 혼자 연극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건가? 연극은 무조건 연인끼리 보는 거라는 규칙이라도 있는 거야!?'
일본에서는 혼자 다니는 사람이 많아 어디서든 눈에 띄지 않는데, 한국에서 나는 완전 '이단아'가 된 기분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행사가 있었다.
관객 모두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다음 공연 표나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내가 이기면 어떡하지......)
이미 혼자 온 외국인으로 충분히 눈에 띄고 있었는데, 더 주목받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같은 공간에 있는 관객으로서 나도 즐기고 싶어 참여했다.
"가위 바위 보!"
다행히 마지막까지는 남지 않아,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진행자도 나를 보며 살짝 난처해하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가위바위보만 봐도 한국과 일본은 참 다르다.
한국에서는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라고 외치지만, 일본에서는 ”다사나이토 마케요 잔켄폰!"혹은 "사이쇼와 구, 잔켄폰!"이라고 한다.
"다사나이토 마케요"는 “안 내면 져요"라는 뜻이고,
“사이쇼와 구”는 “처음엔 바위(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참고로 처음엔 바위라고 하는 건 단순히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다.
또 다른 차이도 있다.
한국에서는 가위를 검지와 엄지로 만드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에서는 대부분 검지와 중지로 피수 사인을 만든다.
이렇게 작은 놀이에서도 두 나라의 문화 차이가 드러나는 게 참 재미있다.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다.
코미디 연극이었는데,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무대 위로 올리는 등 관객 참여형 공연이었다.
나는 연극을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혹시 내가 지목되면 어쩌지?’
'배우가 나한테 말 걸면 어떡하지?'
하며 코미디를 보면서도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만약 내가 무대에 올라간다면 무슨 말을 하지?‘
별의별 생각을 하다가, 다행히 (혹은 아쉽게도?) 지목되지는 않었다.
뻔히 혼자라 분위기가 달라 보이는 나를 굳이 무대에 올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면 공연 분위기가 망가질 수도 있었으니까.
결국, 배우들이 하는 한국어 대사를 90%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들 웃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나에겐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