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장독대에 가득한 항아리 색처럼 잔뜩 어둡더니 저녁나절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옷 젖는다고 엄마는 야단쳤지만 형과 운도는 벌써 나가고 나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동네 마당엔 아이들이 가득했다. 언제 나왔는지 치완이와 봉택이는 제법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고 있었다. 눈사람은 두 개의 눈덩이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더 커 보이는 봉택이 눈뭉치를 함께 굴렸다.
“어? 너희들.”
치완이가 우리를 보고 힘을 내보지만 언 손을 입김으로 부는 사이에 교대로 굴리는 우리 눈덩이가 점점 더 커졌다. 당연히 우리 눈덩이가 몸통이 되고 치완이 눈덩이는 머리가 되었다.
우리가 눈알을 붙이고 코와 입을 만들 나뭇가지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도도야”
용진이에게 팔을 붙잡힌 용팔이 형이 나를 부른다. 우리 형과 부엉이 형이 뒤에서 따라왔다.
“이 찐득이 좀 떼어가서 같이 놀아라.”
용진이는 찐득이처럼 용팔이 형 팔에 매달려 있다.
“용진아 왜?”
“우리가 저 위 골짜기에 가려는데 자꾸 같이 가자고. 거긴 미끄러워서 너희는 안 돼”
용진이에게 물었더니 용팔이 형이 대답한다.
“그럼 같이 놀면 되잖아?”
용진이가 형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그럴까? 오랜만에 도둑놈 잡기 어때?”
부엉이형이 용팔이 형에게 말한다. 우리 형도 용팔이 형도 좋다고 하자, 근처에 있던 조무래기들도 다 모여든다.
“그럼 우리들이 도둑놈 하고, 야, 이거 순경이 너무 많은데……. 야, 강띵아”
부엉이형이 자기 집 앞마당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강띵이 형을 부른다.
강호 형. 학교는 안 다녀서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형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다. 좀 모자라고 또래가 없어서 형들하고 자주 놀았다.
몸이 뚱뚱하고 배가 나와서 어른들은 강띵이라고 불렀다. 우리들이 강띵이 형이라고 불러도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 넷이 도둑놈이다. 너희들은 순경이고"
운도와 모여 있던 꼬마들이 와아아 소리를 지른다.
“우린 순경들한테 잡히면 죽는 거야, 우리가 몰래 뒤에서 순경머리를 이렇게 때리면 순경이 죽는 거고”
부엉이 형이 용진이 머리에 알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며 설명했다. 우리들은 다 안다.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알아 알아”
“그럼 우리 도망갈 테니 열세고 쫓아와”
“하나, 둘, 셋, 넷…….”
운도가 재빨리 세기 시작하자 형들이 놀란 표정으로 후다닥 마을길로 뛰어간다.
“열, 시작”
우리도 재빨리 마을길로 들어섰다.
“앞에 가는 사람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순경”
뒤에서 운도와 아이들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따라왔다. 조무래기들은 도둑놈이 어디로 도망가는 지엔 관심 없고 노래 부르는 것에만 신이 나 우리들 뒤를 졸졸 따라온다.
마을 윗길로 올라가는 강띵이 형을 쫓아가다가 눈에 나있는 발자국을 보니 ‘아차’ 발자국이 두 개뿐이다.
“치완아, 형들이 두 패로 나눈 것 같은데…….”
우리는 돌아섰다. 아직 두 명은 마을 어디에 숨어 있다. 우리를 따라오던 조무래기들은 승모형 네 집 울타리에서 우리를 올려다보며 소리소리를 지른다.
“앞에 가는 놈,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순경”
승모형 네 뒤쪽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꼬맹이 서너 명 뒤통수에 꿀밤을 먹인다.
“하하하, 그 도둑놈 여기 있다. 잡아봐라”
부엉이 형이다. 우리가 달려 내려가는데 영도 형과 함께 다시 반대편 길로 달아난다.
“누구누구 죽었냐?”
용진이가 묻자, 개구리와 옆에 있던 짱구가 손을 든다.
“그럼 너흰 우물가에 가 있어. 그리고 너도 죽지 않았어?”
운도를 보고 용진이가 다시 묻는다.
“아냐, 난 이렇게 피했는걸”
운도가 몸을 비트는 시늉을 하며 우긴다. 운도도 꿀밤을 맞는 걸 나도 보았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억울해한다.
“아냐, 너도 죽었잖아?”
“아냐, 이렇게 피했다니까.”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일곱 살짜리들이 서로 싸운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뒤돌아 내려온 형들이 언덕 위에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 그건 무효. 죽은 사람 없이 다시 시작하자”
“와아아”
죽었던 꼬맹이들이 먼저 언덕 위로 뛰어간다. 어차피 꼬맹이들에게 잡힐 형들이 아니다. 마을 위 길로 후다닥 달아난다. 어차피 거리는 멀어졌고 밭둑을 일렬로 걸어가며 우리도 소리만 지른다.
“앞에 가는 노옴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순경”
밭이 끝나면 골짜기 포도밭이 나온다. 겨울엔 숨을 곳이 없다. 발 빠른 봉택이와 치완이가 밭이 끝나자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용진이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신이 난 꼬맹이들도 우르르 달려간다.
“왜? 왜 그래?”
봉택이와 치완이가 앞길에 멈춰서 있기에 따라가서 물었다.
“여기…….”
눈 위에 난 발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 발자국 여러 개는 먼 목장 쪽으로 향했고 하나만 포도밭 쪽으로 향했다. 어디에도 형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이쪽으로 가야지”
나는 목장 길로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발 빠른 봉택이가 대답하며 휙 앞으로 달려간다. 친구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나는 꼬맹이들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목장 길 언덕은 미끄러울 것 같아서 운도에게 나머지 발자국 하나를 따라가 보라고 할 참이었다.
“으, 으, 으”
처음엔 바람 소리인지 알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이는데 아이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운도야, 조용히 해봐”
아이들 노래가 딱 끊겼다.
“으, 살려줘…….”
가슴이 덜컹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포도밭 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나는 포도밭 위로 달려가며 앞선 아이들을 불렀다.
“치완아, 봉택아”
운도와 아이들도 불길했던지 형들을 소리소리 부르며 따라왔다.
포도밭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구석에 있는 커다란 똥통 외에는 숨을 곳이 없다. 나는 똥통 앞으로 달렸다. 똥 누는 귀신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으으으, 나 좀 어어어”
블록으로 넓게 쌓아 올린 똥통 위로 일 미터쯤 턱이 있었다. 발자국 하나가 턱 앞에서 없어졌다.
“강띵이 형”
땡땡 얼어붙은 똥통 위로도 눈이 가득 내려 땅바닥처럼 평평해 보였다. 내 앞에 난간을 꼭 잡고 빠져 있는 강띵이 형 얼굴이 보였다. 나를 보자 강띵이 형이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또또야, 나 좀.......”
나는 강띵이 형 목덜미 스웨터를 두 손으로 바짝 움켜잡았다. 언제 왔는지 용진이와 치완이도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땅띵이 형 팔과 목덜미를 잡았다. 우리가 끌어올리려고 해 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일 멀리 갔던 봉택이가 뛰어 오는 것이 옆 눈으로 보였다.
“봉택아, 어른들한테…….”
눈치 빠른 봉택이가 마을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지만 강호 형네 집은 너무 멀다.
“봉택아, 이놈 할아버지네”
포도밭 위에는 포도밭을 관리하는 할아버지 집이 있었다. 아이들이 포도밭을 얼씬만 해도 이놈하고 냅다 소리를 질러대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그 집이 제일 가깝다.
봉택이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포도밭 위로 달려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등잔불빛이 올려다 보였다. 하지만,
강띵이 형 윗도리는 털실로 짠 스웨터였다. 옷이 점점 늘어나고 형 몸이 점점 더 빠지는 게 느껴졌다. 큰일이다.
“형, 용팔이 형 부엉이형”
운도와 꼬마들이 손나팔을 만들어 목장 쪽에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더 어린 꼬마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에 나도 울먹이며 형들을 불렀다.
“도도야 나와”
등 쪽에서 와다다 발소리가 나더니 강띵이 형 어깨에 팔을 끼운 부엉이형 얼굴이 내 앞에 있다.
"혀엉"
나는 손을 놓고 나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하이고 이놈들아 이게 뭔 일이냐?"
어느 결에 이놈 할아버지도 달려와 똥통을 넘겨다 본다.
영도 형과 용팔이 형도 다 붙어서 하나 둘...... 하더니, 똥냄새가 순식간에 사방에 확 퍼졌다. 그렇지만,
형들이 정말 크게 보였다.
엄마에게 혼이 나고 나서야 똥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었다. 놀란 나는 덜 혼내고 영도 형은 친구를 챙기지 못한 죄로 옷을 다 벗기고도 밖에서 한참 야단을 맞았다.
“강띵이형은 괜찮아”
“응, 너 아니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뒤늦게 이불속에 들어온 형이 내게 말했다. 강띵이 형은 걸음이 느리다. 형들이 저만치 앞서가고 꼬맹이들이 바싹 쫓아오자 포도밭으로 들어갔더란다. 아무리 봐도 숨을 곳이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똥통 턱에 잠깐만 숨기로 하고,
“왜 얼어붙으면 워낙 단단하잖아?”
“응, 그런데 왜 깨졌을까?”
나는 혹시 똥 누는 귀신이 잡아당긴 것 아닐까 싶어 형에게 물었다.
“강띵이가 워낙 뚱뚱하잖아”
“아…….”
“그렇게 깨질지 몰랐던 거지. 두 팔로 턱을 잡았는데 미끄러워서 도저히 못 나오겠더래, 버둥거리다 힘은 빠지고, 그때 너희가 목덜미를 잡았던 거지.”
우리 집 마당엔 형과 내 빨래가 우리 대신 딱딱하게 얼은 채 걸려있었다. 밖에 나갔던 운도가 시무룩하게 들어온다.
“왜 더 놀지?”
“아무도 없어”
동네 마당은 고무줄 하는 여자 애들만 있고 저희들이 따라다닐 형들 대신 집집이 빨래가 걸려 있다고 했다.
“엄마 있냐?”
외할머니가 들어오시며 물었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강띵이가 똥띵이가 됐다며?”
“아이 엄마도, 똥띵이가 뭐예요?”
“강띵이 할매가 그러더라, 밤새 물 데워서 씻기느라 혼났다고…….”
“애는 괜찮대요?”
“놀라고 떨어서 몸살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뒤에서 듣고 있던 운도 눈이 반짝였다. 너…….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고 후다닥 나가버린다.
마당에 걸린 내 잠바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어이쿠, 돌덩어리다. 나는 얇은 옷 속으로 스미는 바람 때문에 팔짱을 끼고 동네 마당으로 나갔다. 노는 아이들이 없다.
“강띵이 똥띵이”
다섯 살, 여섯 살짜리들이 노래를 부른다.
“뚝, 누가 가르쳐줬어?”
내가 돌아서며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 노래를 삼키며 강띵이 형네 집 쪽을 손가락질을 한다. 거기 반달곰처럼 검은색에 흰색 가슴 줄무늬가 새겨진 강호형 스웨터와 빨래들이 걸려있다.
“강띵이 똥띵이”
그쪽에서 노랫소리가 난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운도와 개구리가 마당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유, 저걸…….
모퉁이를 돌아나가는데, 아이들을 쫓으려고 막 돌멩이를 던지려던 호순이가 나를 발견하고 재빨리 강호형 스웨터 뒤로 숨는다.
그 사이에 나를 발견한 운도와 개구리도 윗골목으로 재빨리 달아난다.
이건 순전히 외할머니 잘못이다.
만약에 강띵이 형이 죽는다면 그건 몸살도 똥독도 아니고 오로지
쪽팔려서다.
운도 앞에서 강띵이를 똥띵이로 바꿔부른 외할머니 때문이다.
똥 냄새
다 벗고 우물가에 서 있어
우물가에서 물벼락 맞는 형의
궁둥이가 추위에 달달 떨린다
가을에 메뚜기 잡는다고 들어갔다가 혼나 놓고서
왜 또 호박밭 똥구덩이에서 뒹굴며 놀아?
허옇게 김 나는 엉덩이를 또 얻어맞는다
그나마 형은 다행이다
형 옷의 똥냄새는
엄마의 빨랫방망이에 무지하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