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 빠진 중강새

두꺼비 집

by 유재복

아궁이 그림자

부엌은 석유 등잔보다

아궁이 불로 밝혔다

제집 드나들 듯 함부로 들어서는

겨울 어둠은

엄마의 느린 손등에 먼저 내려앉고

군불 때는 내 등에도 들러붙는다

솔가지 한 줌 집어넣어

부엌 구석까지 불을 밝히면

부엌 뒤편의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빛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자는 더 크게 자란다

엄마의 손등까지 빛이 퍼지라고

나는 그림자에 기대곤 했다




저녁이 다 되어 산골짜기 사이로 해가 넘어간 지는 한참이 지났다. 영도 형도 운도도 어디에서 노는지 돌아오지 않고 나만 방 안에서 선이와 놀고 있었다.

선이가 꾸벅꾸벅 졸더니 잠이 들었다. 가만히 이불을 덮어주고 나는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는 저녁을 짓고 계셨다.


“왜 나오니? 선이는?”

“잠들었어, 내가 군불 땔게”

“그래라”


아궁이엔 엄마 손을 덜 탄 불이 꺼질 듯 깜박거렸다. 나는 솔잎을 밀어 넣고 그 위에 삼룡이가 해다 준 장작더미를 올려놓았다. 나는 엄마와 나란히 부엌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엄마는 연탄화덕에 올려졌던 솥을 내리고 찌개냄비를 올려놓다가 자꾸 부엌문 밖을 내다보았다. 우리 집이 조금 높아서 부엌 바깥으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더러 개 짖는 소리,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바람 한 점 없이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엄마가 내가 불을 지피는 가마솥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부엌을 가득 메운다. 찜그릇이 하나 더 들었고 거기엔 감자와 고구마가 담겨 있었다. 젓가락으로 꾹 찔러본 엄마가 고구마를 꺼내 담는다.


“왜 이렇게 많이 쪘어?”

엄마는 소쿠리에 담긴 감자와 고구마를 내게 내밀었다.


“심부름 좀 해라. 이거 두꺼비네 집에 갖다 주고 와”

“두꺼비네?”

“아줌마가 묻거든 엄마가 너무 많이 쪄서 남는다고, 애들 갖다 주라고 했다고 해.”

“응 알았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올 때 형하고 운도 데리고 와. 늦으면 저녁 없다고 해”


두꺼비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다. 지난봄에 읍내에서 봉호형네 아래채로 이사를 왔다. 저녁밥을 먹는지 봉호형네 집은 불을 켠 채 시끄러운데 두꺼비네 집은 조용하고 방불도 꺼져 있다.


“두껍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두껍아”

방 안에서 뭔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리고 두꺼비 엄마가 깜깜한 방 안에서 내다본다.


“어, 도도야 무슨 일이니?”

잠이 덜 깬 목소리다.

“엄마가 이거 갖다 드리라고, 너무 많이 쪄서.”

내가 말을 이으려는데, 방 안에서 두꺼비와 동생 개구리 녀석이 뛰쳐나온다.


“와아 고구마네, 감자도 있고.”

“디따 많네. 헤헤헤”

두꺼비 형제가 바구니를 받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엄마한테 잘 먹겠다고 해라”

“안녕히 계세요”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형과 운도를 찾는 게 더 급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네 마당에서 운도를 만났고 운도에게서 형이 있는 곳을 알아내 쫓아갔다.


“형, 밥 먹으래”

형은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중학교 다니는 승모형과 모돈이 형도 있었다.

“가만있어 봐, 쫌 있다 갈게”

“밥 다 했단 말이야”

“운도랑 먼저 가”

“엄마가 형하고 운도하고 같이 들어오래”

“에이 씨, 마! 나 딱지 다 잃었단 말이야”


승모형이 저만치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저 큰 형들하고 딱지치기를 해서 제가 어떻게 이겨’ 더 한다고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늦으면 저녁밥 없대”

“에이 씨”


뒤에 있던 승모형이 빙긋이 웃으며 한 뼘쯤 되는 딱지를 집어 건넨다.

“영도야 너 이만큼 잃었지.”

딱지를 받아 든 영도형 표정이 밝지 않다.

“왜?”

“저기…….”

“응?”

“그 왕딱지도 내가 잃은 건데…….”


달력으로 접은 빨간색 왕딱지, 형이 제일 좋아하는 딱지다.

“이거?”

승모형이 빨간딱지를 뽑아 형에게 준다.

“그만 놀고 내일 다시 하자.”

“네”

형 표정이 순식간에 변한다. 어유 간신배. 맨 앞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달려간다.




다음날 저녁 무렵에도 나는 집에서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다. 저녁밥을 하는 동안 선이를 봐주지 않으면 엄마가 업고 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도형을 붙잡지만 형은 용케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이것저것 하시며 또 부엌문을 내다보신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연기가 올라오고…….”

무슨 소린가 하고 내다보니 먼데 있는 집들 연기가 보이고, 아 바로 아래 두꺼비네 집 굴뚝에서도 흐릿하게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도도야 오늘 두꺼비 봤냐?”

“응 조금 전까지 개울에 같이 있었는데,”

“두꺼비네 아버지 왔냐?”

“아니 못 들었는데, 내가 집에 오면서 가자고 하는데도 개울에서 미끄럼 타고 있던 걸”


엄마는 뒤돌아서 쌀독으로 가서 자루에 쌀을 퍼 담으신다. 바닥 긁히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쌀이 얼마 없는 거다. 나는 아궁이 속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선이를 업고 나온 엄마 손에는 고구마를 담은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이거 들고 따라오너라”


엄마는 쌀자루를 들고 앞장서신다. 나는 고구마가 무거워 어깨에 메고 따라갔다.

어제처럼 어두운 두꺼비네 집 부엌에서 두꺼비가 아궁이 앞에 앉아 억새풀 같은 땔감을 조금씩 밀어 넣고 있었다.

“엄마 안 계시냐?”

갑자기 들어온 우리 엄마를 보자 두꺼비를 말을 더듬는다.


“조, 조, 조기 산에 나무……. 주 주우러.”

엄마는 두꺼비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시고 가마솥뚜껑을 열어 보신다. 아직 열기를 받지도 못한 솥에는 물이 한가득 담겨있다.

“너 밥은 먹었니?”

“아, 아니요. 어제 도도형이 준 고, 고구마…….”

엄마는 찬장을 열어보고 구석에 있는 쌀 항아리도 열어보신다.


“내 이놈의 여편네를…….”


엄마는 가지고 간 쌀과 고구마를 부뚜막 한쪽에 올려놓고 두꺼비 머리를 한번 쓸어 주시고 밖으로 나온다.

저만치 앞서 선이를 업은 엄마가 가신다.


엄마는 뭐든지 다 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안 올라가면 쌀이 떨어진 거다.

그런데 오늘은 두꺼비네 집 굴뚝에 연기가 올라갔다.

밥 하는 연기인지 아니면 밥 하는 척하려고 불을 땐 연기인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를 속일 수는 없다.

“도도야, 내일 삼룡이 만나거든 두꺼비네 나무 두 짐 해다 주라고 일러라. 두 짐.”




앞니 빠진 중강새

골목에 들어설 때면

소란부터 살폈다

화난 목소리보다

밥상이 먼저 날아오기 때문에

김칫국물 묻은 애들은 한둘이 아니고

날아온 밥그릇에 머리를 맞은 애도 있었다

창문 밑으로 납작 숙이고 지나거나

반대편 벽에 바싹 붙어 지나가곤 했다

어, 도도 형이다

거북이가 창밖을 내다보고 아는 척한다

아버지 없어?

응 먼 데로 일 갔어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에

아줌마 노랫소리도 들린다

앞니 빠진 거북이

입 찢어지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