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난 양말

썰매 타기

by 유재복


개울엔 어디에나 얼음이 얼어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 앞에 있는 얼음판이 제일 넓게 얼었다. 지난여름에 아버지가 우리들 수영하라고 둑을 막아놓아서 물이 많이 고여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이곳을 넓은 얼음이라고 불렀다.


어제까지는 내린 눈이 엉켜있어 거칠거칠했는데 어제 한낮 햇살에 녹은 눈이 다시 얼어붙어 미끈해졌다. 날씨도 따뜻해 얼음판 위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였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여자애들도 나와서 동생들 썰매를 밀어주고 있었다.


우리 집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칼날 설매가 있다. 철사 줄로 바닥을 동여맨 다른 아이들 썰매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승모 형이 한 발 썰매를 타고 있다. 나는 저 한 발 썰매가 항상 부러웠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아닌 위쪽에서 승모 형은 여기저기를 다 다닌다. 거긴 얼음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 때문에 우리들 두발 썰매는 못 가는 곳이다.


게다가 속도도 빨라서 긴 꼬챙이로 한 번만 밀면 내가 세 번 꼬챙이 질 한 것보다 더 멀리 간다. 우리의 두발 썰매는 잘 멈추지 못하고 미끄러지는데 승모형의 한 발 썰매는 빠르게 달려와서 경사면 앞에서 얼음을 긁으며 멋지게 선다.


언제 왔는지 운도가 개울 옆에서 오르락거리며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운도에게 썰매를 넘겨주고 승모 형이 있는 위쪽 빙판에 가서 구경을 했다.


“한 번 타볼래?”


형이 돌아보며 묻는다. 이게 웬일이냐?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안될 걸, 그래도 연습해 봐.”

승모 형이 긴 꼬챙이를 넘겨준다.

꼬챙이가 내 키만큼 길어서 난 중간을 잡고 썰매에 발을 올렸다. 내 썰매와는 다르게 평평하지 않고 경사가 져서 미끄러웠다. 두 발을 올려놓기도 힘들었다.


“형 이거 잘못 만든 거 아녀요? 앞이 너무 높잖아”

“그래야 설매가 따라오지, 안 그러면 너만 튕겨 나갈 걸”

얼음 밖에서 팔짱을 끼고 부엉이 형과 얘기를 하던 승모 형이 대답한다.


꼬챙이를 딛고 올라서 중심을 잡았다. 꼬챙이를 미는데…….

썰매는 뒤에 남아 있고 발만 미끄러져 나온다.

“와 하하하”

언제 왔는지 치완이가 승모 형, 부엉이 형과 웃고 있다.

“그렇게 된다니까, 발을 썰매에 딱 붙이고 처음엔 살짝 밀어서 균형을 잡는 거야”

승모 형이 가르쳐 준 대로 했더니 ‘된다’ 어설프게 커브도 돌았지만 승도 형처럼 멋지게 브레이크를 잡으려다가 설매만 튕겨 나간다.


“어쭈 제법인데, 내년엔 도도도 한 발 짜리 타겠는 걸”


승모 형이 웃으며 말한다. 나는 가까이 와 손을 내미는 부엉이 형에게 꼬챙이를 넘겨주고 칼날을 어떻게 구할까 궁리했다. 잘 타는 부엉이 형이 썰매가 없는 건 칼날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조를 수밖에 없다.


운도와 나란히 썰매를 타는 개구리가 자꾸 처진다. 꼬챙이도 잘 찍히지 않고 옆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가까이 가서 개구리 썰매를 뒤집어 보았다.

철사가 한쪽이 벗겨져 있다. 두꺼비 엄마가 아이들 성화에 대충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꼬챙이에도 가는 못이 박혀 있어 쉬이 구부러진다.

나는 치완이와 돌멩이를 주어 철사날을 똑바로 끼워주었다. 휘어진 꼬챙이도 돌 위에 두들겨 펴서 개구리에게 주었다.


“우와, 잘 간다.”

개구리가 빠르게 운도를 앞지른다.


오후의 햇살이 가득히 퍼진 얼음판은 꼬챙이 구멍사이로 삐져나온 물과 녹은 물이 모여 점점 더 물이 많아졌다. 물이 튀거나, 썰매에서 미끄러져 옷이 젖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하나둘 빠져나와 부엉이 형이 개울 턱에 피워둔 모닥불로 모여들었다.


“운도야 나와”

아직도 두꺼비와 운도는 빙판 위에 있었다.

“더 미끄러워 썰매가 잘 나가”

운도가 대답하곤 썰매를 탄다. 꼬챙이를 꽂을 때마다 물이 튄다. 그러다가 어어…….


그럴 줄 알았다. 얼음 녹은 사이로 돌부리가 튀어나왔나 보다. 무릎을 꿇고 썰매 타던 자세 그대로 빙판 위로 미끄러진다. 돌에 걸린 썰매는 뒤에 남겨져 있다.


“하하하하”

“와 메기 잡았다. 운도가 젤 큰 메기 잡았네”

불가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얼른 들어가 운도를 일으켰다. 무릎 아래가 다 젖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울지 마, 괜찮아”


달래지만 운도가 우는 이유는 엄마에게 혼나는 게 무서워서다. 데리고 나오며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모닥불에 말리면 엄마도 모를 거야”


운도가 올려다본다. 이르지 말라는 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헤 거리며 불가로 달려간다. 아이들이 서로 여기저기에 마른풀을 주워다 올려 불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두꺼비만 빙판 위에 남았다. 썰매의 중간까지 물이 차 두꺼비 옷도 다 젖었다. 그래도 늦게 온 두꺼비는 아쉬운지 몇 바퀴를 더 돈다. 썰매 뒤로 물이 튀는 게 멋있다.


영도 형이 저벅저벅 들어간다. 역시 형이야, 운도가 두고 온 썰매를 가지러 가는 줄 알았는데 젖은 썰매를 툭툭 털더니 쪼그려 앉은 자세로 썰매를 탄다. 텅 빈 얼음판을 끝까지 달려 옆으로 커브를 돌며 멈춘다.


“와 아아아 아”


얼음 섞인 물이 썰매 날에 밀려 한쪽으로 튀겨 나간다. 아이들이 멋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영도 형이 신이 났다.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더 빠른 속도로 내려오며 커브를 틀었다.


더 많은 물이 튀겨 나간다. 보고 있던 부엉이형도 나오는 두꺼비 썰매를 타고 물을 튀기러 들어간다.

둘이서 시합을 한다. 우리 썰매보다 두꺼비 썰매가 안 좋은데도 부엉이 형이 튀기는 물보라가 더 컸다.

“와아아”


영도 형이 다시 내려온다. 아까보다 더 빠르다. 더 많이 내려와 커브를 확 틀었다. 어어어…….


물보라와 함께 썰매가 튕겨 나가고 형은 없다. 물구덩이에 철퍼덕 앉아 있다. 이젠 죽었다. 엄마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형은 형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를 털며 킥킥 웃으며 밖으로 나온다.


“도도야, 치완이랑 나무 좀 더 주워 와. 옷 말려야겠다.”


불가에 엉덩이를 디밀며 내게 말한다. 운도도 더 말려야 한다. 나는 치완이와 신작로를 건너 포도밭 철조망주위에서 탈만한 것들을 주워 모았다. 개울가엔 더는 태울 게 안 남아 있었다.


영도 형이 신발을 벗어 기울이자 물이 한가득 쏟아진다. 신발을 뒤집어 돌에 기대고 젖은 양말을 불 가까이 번갈아 대며 말린다.


“자아 비키세요”

나보다 늦게 온 치완이가 한 아름 안고 온 마른풀들을 불 위에 올렸다.


“타다닥 타다닥”


사방으로 불꽃이 튀며 불길이 확 솟는다. 노린내가 나서 옆을 바라보니 치완이 옆머리가 그슬려 있다.


“치완아 너 머리”

“에이 씨, 다 탔네”


치완이가 머리를 쓸며 웃는다.

둘러섰던 아이들이 다들 한걸음 물러섰는데 형은 아직도 앞에 서서 양말을 말린다.

“타다닥 타닥”


풀씨가 타는지 불꽃이 마구 튄다. 맞은편 형을 바라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발바닥이 훤히 보여 처음엔 양말을 벗은 줄 알았다. 나일론 양말이 불꽃에 타 오그라 붙어 발바닥이 다 드러난 거다.


“혀영, 양말”


내가 손가락질 하자 형이 화들짝 놀란다.


"어쩐지 시원해지더라니……."


다른 형들이 드러난 발바닥을 들어 보며 킬킬거린다.


“위는 감쪽같은데 뭘, 하하하하”


썰매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형이 부른다. 주먹을 쥐고 눈을 흘긴다. 엄마에게 이르면 죽어, 안다. 그래도 이르게 된다. 양말이 짝이 안 맞는 걸 엄마는 금방 알 테니까.




스펀지 잠바


나일론 잠바는 단벌이어서

팔꿈치부터 빤질거린다

썰매 타고 나온 개울가 모닥불에서

풀들의 불꽃은 나일론 잠바는 없다는 듯 지나가

물려 입은 잠바엔 이미 난 구멍에 구멍이 더해지고

구멍사이로 더 구멍 많은

스펀지들이 삐져나오곤 했다


피부도 단벌이라서 아무리 빨아도

눈길 많이 닿은 곳부터 빤질거리고

스펀지 잠바같은 마음은

불 맞은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하다


어른이 되면서 옷의 구멍은 없어졌지만

마음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늘어간다

물기가 젖으면 잘 마르지도 않고

나이들수록 빈구멍엔 무거운 것들이 들어

어깨가 처진다




“형님 계세요?”

두꺼비 엄마 목소리다. 여느 저녁때처럼 나는 선이를 보고 있었고 부엌에 있던 엄마가 밖으로 나오신다.


“왜? 무슨 일이여”

“아까징끼 있지요?”

“왜 누가 다쳤나? 많이 다쳤나?”

“아니요, 두꺼비가 조금 긁혔어요.”

“그래? 도도야 약통 좀 꺼내와라”


나는 안 그래도 약통을 꺼내 들고 있었다. 영도 형과 운도 때문에 나는 이 약통을 수시로 꺼낸다.


“어쩌다가?”

“그게 참, 읍내에 있는 어머니에게서 바느질거리를 좀 가져와 하거든요, 그래서 두꺼비에게 나무 좀 해오라고 그렇게 일러도…….”


“삼룡이가 들여 준 나무 다 땠어?”

“아니요, 얼마 있으면 설인데 아껴야지요”

“아끼긴, 또 해달라면 되지, 몇 짐이나 부려놨는데?”

“세 짐이라면서요? 그런데 매일 가져오는 거예요, 그래서 삼룡이한테 물었더니 다섯 번째 와서는 그게 세 짐이라는 거예요.”

“그래도 신통하게 세 짐은 외우네”


“그래 삼룡이 엄마에게 찾아갔지요. 세 짐 값은 형님이 주셨다지만 나머지 두 짐은 내가 주어야지요”

“나무값이랄 게 뭐 있나 그래서?”

“안 받는데요. 마침 들어오는 삼룡이에게 몇 짐 내렸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삼룡이야 당연히 세 짐이라고 하죠. 그러니 더 받을 게 없다는 거예요. 다 아시면서 우리 애는 생전 거짓말은 못한다고 하니”

“그럴 거야, 그 이도 삼룡이처럼 착하니 ”

“그래서 고맙습니다 하고 나왔죠, 그러니 그 나무 때기가 더 아까워서 ”

“그렇다고 두꺼비가 나무를 어떻게 해?”

“아 도도는 하잖아요. 제 형하고 나뭇단 해서 메고 오던데”

“쟤들이야, 어려서부터 제 아버지 따라서 산에 다녔으니까 그렇지, 읍내에서만 살다 온 애들이 뭘 알아?”

“그래도 제 아버지가 저러면 철이 좀 들어야지요, 나 참 한심해서”

“그래서 때렸어?”


“아니요, 마루에서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데, 도훈이가 들어오는데…….”


도훈이는 개구리의 이름이다.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린 거예요. 하라는 나무는 안 해오고 어디서 불장난만 하다 들어오니 부아가 치밀어서”

“…….”

“다듬이 방망이를 확 집어던졌죠”

“저런 그래서 다쳤어?”

“아니요, 도훈이 녀석 머리로 날아가는데 귀신같이 몸을 비틀며 피하는 거예요. 몸을 돌려 내빼는데 뒤에…….”

“그래 뒤에? "


“두꺼비 놈이 따라 들어오지 뭐예요, 형이란 놈이 얼굴엔 검댕을 잔뜩 묻히고 바지는 다 젖은 채로”

“그래서 나머지 방망이를 또 던졌죠. 속이 뒤집히니 나가 죽어하면서, 그런데? ‘

“왜?”

“깩 소리가 나는 거예요. 동생도 피했는데 형이란 놈이…….”


나는 방 안에서 킥킥 소리를 참으며 웃었다. 개구리는 청개구리처럼 초롱초롱한 눈에 빠르지만 두꺼비는 느리다.


“어쩌자고 애한테, 어딜 어떻게 맞았기에 피가 나?”

“아니요, 맞기는 배를 맞았는데……. 내 참 후후훗”

“그게 웃을 일이야?”

“맞았으면 끝난 거 아녜요? 그런데 후후 피하는 시늉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것도 느릿느릿…….”

“호호호”


듣던 엄마도 상상이 되는지 웃으셨다. 그 소리에 나도 목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었다.


“배를 잡고 빙그르르 돌아 내빼려다가 그만 넘어져서 돌부리에…….”

“많이 다쳤어?”

“조금 긁혔어요, 그렇지만 얼굴이라 흉 질까 봐”


나는 방문을 열고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며 약통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극성맞은 사내애 둘을 키우면서 소독약도 없어?”

엄마가 약통을 열었다. 다 쓴 소독약 병에 소독약을 채운다. 저건 부르르르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쓰라려, 쓰라려를 외치게 하는 약이다.


다음 쓰던 빨간약을 들어 얼마만큼 들었는지 하늘에 비춰보고 쓰던 약솜과 함께 아줌마에게 준다.

“우리는 새것 있으니까 가져가, 그리고 애 놀랬을 테니 더는 야단치지 말고”

아줌마가 돌아갔다.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신 잠시 후,


“호호 후후 후훗”


웃음소리가 났다. 방으로 들어가던 나도 엄마 웃음에 전염돼 한참 웃었다. 눈만 느리게 껌뻑이는 두꺼비 표정이 자꾸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