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야 놀자”
치완이 목소리다. 나가보니 용진이도 있다.
“야 우리 텔레비전 보러 만화 가게 갈 건데, 같이 가자”
“왜?”
“오늘 레슬링 하는 날이잖아, 봉택이는 벌써 갔는데…….”
“벌써?”
“응, 늦으면 앉을 데도 없잖아. 그럼 저 윗집 마당에서 보는 거랑 똑같지”
윗집 마루에도 테레비를 내놓는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마당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오늘처럼 사람이 많은 날은 잘 보이지도 않고 밖이라 추웠다. 그래서 가게 방으로 가면 입구까지 사람들이 가득해 들어가지도 못한다.
“응 잠깐만”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십 원만”
형과 운도는 이 소리를 늘 달고 다녔지만 난 오랜만에 해본다. 밖에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다 듣고 있던 엄마는 눈을 찡긋하며 돈을 꺼내 주신다.
“형하고 운도 한 텐 절대 비밀이다.”
“응 치완이가 보여줬다고 하면 돼”
만화가게는 아랫동네까지 내려가야 한다. 우리 걸음은 빨라졌다.
벌써 아이들이 가득했다. 십 원씩 내고 우린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앞에 앉은 봉택이가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를 보면 테레비는 공짜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다. 테레비를 보는 척하며 어깨사이로 만화책을 훔쳐본다. 그러다가 기분이 이상해 고개를 드니 뚱뚱한 만화가게 주인아줌마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본다. 아이고…….
잘못하면 테레비도 못 보고 쫓겨난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 어른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아이들을 일으키고 의자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기다란 나무의자는 한쪽에 포개어져 쌓이고 우리는 바닥에 바싹바싹 다가앉았다. 봉택이와 한 줄이 되어 다닥다닥 앉았는데도 아이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앞으로 더 당겨라”
늦게 오신 어른들이 뒤에서 우리를 밀었다. 더는 사람이 못 들어올 것 같은데 우리 사이에 또 끼어 앉는다.
그 사이에 레슬링 시합이 시작되었다. 사람들 목소리에 묻혀 아나운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호랑이와 등 쪽에 삿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김일 선수가 화면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가게 안은 조용해졌다.
상대는 백인과 마스크를 쓴 미국 챔피언이었다. 천규덕 선수와 김일 선수도 덩치가 컸지만 미국인들은 엄청나게 크고 뚱뚱했다.
로프 반동 천규덕 선수의 당수에 맞아 링 밖으로 떨어진 마스크가 손에 뭔가를 쥐고 링 위로 올라온다. 마침 터치를 하고 링 위에 있던 김일 선수 이마를 뭔가로 찍었다.
“병따개”
“아이고 심판은 뭐 하냐? 저 놈 손에 저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리를 질렀다. 마치 우리들 목소리가 심판에게까지 갈 것처럼, 김일 선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심판이 마스크를 불러 손을 보자고 한다.
“아이고 저런…….”
“멍청한 새끼”
“뒤, 뒤…….”
반칙이 특기라는 마스크는 병따개를 엉덩이 위 팬티사이에 끼워두고 두 손을 펴 보이며 고개를 젓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지만 소용없었다.
그 사이에 피가 흥건한 김일 선수를 노랑머리 백인과 마스크가 둘이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한다. 저런 바보 같은 심판……. 심판은 미국 놈들은 안 보고 링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천규덕 선수만 막고 있다.
“박치기”
“박치기”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나운서나 만화방에 앉아 있는 어른 아이들 모두 한 목소리로 김일 박치기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다 병따개로 이마가 다 찢어졌는데 어떻게 박치기를 할까? 그런데…….
나왔다. 박치기.
“와 아아아아 아”
가게 안이 떠나갈 듯했다. 연거푸 두 방이나 박치기를 맞은 백인이 우당탕 쓰러진다. 그걸 본 마스크가 뒤춤에 숨겨둔 병따개를 꺼내 들고 김일 선수의 이마를 겨냥해 내려치는데,
그 손을 밀치며 번개처럼 박치기.
마스크가 비틀거렸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김일 선수도 화가 많이 났다. 한 손으로 마스크를 움켜쥐고 한쪽다리를 번쩍 들었다가…….
박치기.
“죽여, 한 번 더”
쓰러지는 마스크를 일으켜 세우며 두 손으로 마스크를 움켜쥐고 다시,
박치기.
“와아아아”
안으로 들어온 천규덕 선수와 김일 선수가 쓰러진 거대한 미국선수를 누르며,
“완 투 쓰리”
“와 아아아 아”
경기는 끝났다. 아이들은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레슬링 선수가 되어 있었다.
아침상을 들고 엄마가 부엌으로 나가자 영도 형이 레슬링 시범을 보인다고, 나와 운도를 못살게 했다. 결국엔 나와 운도에게 박치기 시범을 보이다가 운도를 울리고 말았다.
형도 나도 집에서 쫓겨났다. 동네 마당으로 가려고 신작로를 따라 가는데 성혜네 골목으로 승모 형네 아저씨가 들어가는 게 보인다. 성혜네 개는 어른들에겐 짖지 않는다. 성혜네 골목으로 가는 게 지름길이니 어른 따라가면 안 짖는다.
나도 성혜네 골목으로 들어섰다. 승모 아저씨가 집 앞을 지나가는데도 성혜네 개는 짖지 않는다. 어디 있나? 들여다보는데 개 집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웅크려 있다. 저러다가 내가 지나가면 벼락같이 튀어나와 짖겠지?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걸었다.
부엌문이 덜컹 열리며 성혜가 나온다. 개밥을 주려나 보다, 나는 개에게 안 들키려고 그 자리에 서서 울타리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흰둥아 밥 먹어”
개밥그릇을 당겨 밥을 부어주자 커다란 개가 개집 밖으로 나온다. 남아있는 밥풀을 떼어내려고 그릇을 툭툭 치는데 배가 고팠던지 성질 급한 개가 성혜에게 으르렁거린다.
성혜가 밥그릇을 개에게 밀어주고 일어서다가 개를 내려다본다. 표정이 안 좋다.
다시 개 앞에 쪼그려 앉더니 개밥그릇을 당긴다. 허겁지겁 밥을 먹던 개가 주둥이로 밥그릇을 누르고 으르렁대며 이빨을 깐다.
성혜가 잠시 내려다보다가 개밥그릇을 확 뺏는다. 그러더니 흰둥이 목줄을 잡아당겨 개 얼굴을 들여다본다. 개머리가 성혜 머리만큼 크다.
‘아 성혜도 개랑 눈싸움을 하는구나’
생각하는데 헉 저럴 수가,
“뻑”
“깨갱깨갱 캥”
박치기다. 성혜도 어제 레슬링을 봤나 보다. 모를 건 흰둥이다. 발 밟힌 강아지처럼 꼬리를 사리고 개 집안으로 들어가서도 계속 앓는 소리를 계속한다.
‘개는 박치기에 약하구나 그럼 나도 다음에 저 놈을 박치기로 상대하면 된다.’
‘아니다 어쩌면 성혜가 박치기가 셀지도 모른다.’
동네 마당에 있는 미루나무는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이놈 저놈 달려들어 당수에 박치기를 해댄다. 우리끼리도 박치기를 하지만 치완이에겐 안 된다. 우리 친구들 중엔 치완이에게 박치기를 이길 수 없다. 6학년 형도 이겼으니까.
그래서 치완이가 김일 흉내를 내며 한쪽 발을 높이 들고 머리를 내리칠 자세를 하면 우리는 얼른 치완이 앞을 피한다.
“왜 그래 너희들은”
한쪽 담장에서 구경하던 미경이가 치완이에게 쫓겨 다니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며 묻는다.
“쟤 완전 돌머리야,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별이 열개도 넘게 보인다니까”
내가 대답하자 용진이도 거든다.
“맞아 우리 동네에서 치완이가 박치기 대장이야, 우리 형도 치완이랑은 박치기 안 한대”
“그래? 성혜도 박치기 잘하는데…….”
“푸하하하 성혜가? 무슨 여자가 치완이를 이기냐?”
용진이도 치완이 봉택이도 다 한 번에 웃었다. 나는 아까 본 게 있어서 머뭇거렸다.
“야, 나오라고 해 내가 김일 박치기를 보여줄 테니…….”
치완이가 한쪽 발을 크게 들었다 내리며 머리를 흔든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미경이가 성혜네 집 쪽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아야”
치완이 동작을 흉내 내며 저희들끼리 박치기를 하던 운도와 개구리가 서로 머리를 붙잡고 있다.
“우리 형도 박치기 대장인데”
이마를 비비며 개구리가 말한다.
“그래? 그럼 두꺼비도 오라고 해. 누가 박치기 대장인지 한번 해보자고 하하하”
치완이가 허리에 손을 얹고 웃는다. 그럴 만큼 저 녀석은 돌머리다.
“왜 그러는데?”
미경이 손에 이끌려 오며 성혜가 묻는다.
“너 박치기 잘한다며?”
용진이가 물었다. 성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누가 그래? 난 박치기 못해”
“하하하 그럼 그렇지, 야 김일 선수가 여자냐? 하하”
움츠러드는 성혜를 보고 치완이가 의기양양해하며 웃는다.
“야! 쟤가 이 동네 박치기 왕이라고 까부는 거야, 너도 박치기 세잖아”
미경이가 성혜에게 말한다. 성혜가 다시 김일 흉내를 내며 다리를 드는 치완이를 흘겨보더니,
“야 해봐. 누가 왕인지 한번 해보자고”
“하하하 나한텐 안 될 텐데……. 아프다고 울기 없기다.”
“너나 울지 마, 어떻게 하는 건데?”
우리는 모여들었다. 박는 사람보다 받히는 사람이 더 아프다.
“마주 서서 하나 둘 셋에 서로 박는 거야”
둘이 마주 섰다. 성혜가 크다. 그러나 키 큰 게 유리한 게임은 아니다.
“자아 준비 하나 둘…….”
“뻑”
셋 소리는 부딪치는 소리에 묻혔다. 둘이 한동안 그냥 서 있다. 둘 다 세다. 우리 같으면 머리를 싸안고 펄펄 뛸 텐데,
성혜는 표정이 변함이 없다. 돌아서서 킬킬킬 웃는 치완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치완아 너 이거 눈물 아냐?”
옆에서 봉택이가 치완이를 보며 묻는다. 이마가 빨갛다.
“아니야, 마. 내가 누군데 계집애한테”
“뭐라고 계집애라고? 너 이리 와 다시 해봐”
“그래, 무승부니까 다시 하자”
내 생각엔 치완이가 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여자애한테 질 수는 없으니 아파도 참는 것 같았다.
“빡”
아까보다 더 소리가 컸다. 치완이는 다시 돌아서서 실실 웃는다. 성혜는 무표정하게 이마를 비비며 서 있다.
“박치기 대장은 아니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야, 나도 암시랑 안 하거든”
치완이가 소리를 지른다. 이마가 빨갛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무승부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하자, 무승부니까, 넌 남자 대장이고 성혜는 여자 대장 해”
내가 나서서 말하자 성혜가 나선다.
“그런 게 어딨어? 대장은 한 명이지”
“그럼 어쩔래? 한 명이 질 때까지 계속할 거야, 염소처럼?”
“와하하하 염소들처럼”
내가 한 말 때문에 모두들 웃었다. 옆을 보니 언제 왔는지 두꺼비가 따라 웃고 있다.
“야 두껍아 너도 박치기 잘한다며?”
두꺼비가 씩 웃는다.
“어제 김일 선수 봤지? “
또 웃는다.
“그럼 이렇게 하자, 두꺼비도 센 것 같으니 두꺼비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어떻게?”
“각자 두꺼비와 시합을 해서 두꺼비에게 누가 더 아픈지 물어보면 되잖아? 두꺼비가 누구 편들 것도 아니니까 공평하잖아”
내가 말하고도 그게 공평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 살 어린 두꺼비를 울릴까 그게 걱정이었다.
“두꺼비 너 아파도 울면 안 돼”
치완이가 건들거리며 말한다. 두꺼비 옆으로 가서 슬쩍 박치기를 해본다. 두꺼비가 멍하니 올려다본다.
“안 아파?”
“응”
어쭈 진짜로 할 땐 김일처럼 한다.
“응! 김일처럼…….”
두꺼비가 자신 있어한다. 성혜가 두꺼비 앞으로 다가온다. 하나 둘 셋.
“뻑”
키가 작은 두꺼비 얼굴부터 살폈다. 애가 신경이 무딘 건가 눈만 껌벅거리며 성혜를 올려다본다. 고개를 돌려 성혜를 돌아보는데,
“아, 잠깐만…….”
성혜가 이마를 싸안으며 주저앉는다. 그걸 본 두꺼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는다. 놀란 건 치완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 동네에서 김일 선수 행세를 하고 다녔으니 기가 죽을 수 없다.
“어쭈 제법인데, 성혜야 비켜봐 내가 상대할 테니”
치완이가 단단히 벼른다. 하나 둘에 한 다리를 들고 고개를 한껏 젖히더니,
"쾅 "
‘세다’ 엄청 세게 부딪쳤다. 그리곤 잠잠했다. 이번엔 치완이 얼굴부터 쳐다봤다. 눈동자가 벌겋다.
“아이고, 아이고”
치완이가 머리를 싸잡고 펄쩍펄쩍 뛴다. 저만치 뛰더니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야, 저 시키 완전 돌덩이야, 사람머리 아냐”
치완이가 엎드려 소리를 지른다.
“넌 괜찮아?”
“흐흐 좀 아파, 그래도 괜찮아”
두꺼비는 그 자리에서 웃고 서 있다. 소란스러움에 다른 곳에서 놀던 조무래기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야, 너희들 두꺼비에게 인사해라. 오늘부터 두꺼비가 우리 동네 박치기 대장이다.”
내가 말하자 용진이도 거든다.
“그래 두꺼비는 이제 우리 동네 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