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만,

가래떡

by 유재복


집을 나서는데 신작로에 미경이가 서서 개울을 내려다보고 있다. 개울 건너 미루나무 나란히 서있는 곳에 못 보던 가오리연이 위태롭게 떠서 흔들린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미경이 옆에 서서 개울 둔 턱을 내려다보니 미경이 바로 밑 동생 현오가 날리는 연이다. 저만치서 운도가 연을 띄우려고 달음질하고 있다. 저건 며칠 전 봉호형 집에서 내가 만든 연이다.


“어딜 갔나 했더니, 내 연 갖고 나왔네”

“저거 네가 만든 거야?”

“응, 봉호 형 만드는 거 보면서…….”


사실은 봉호 형이 거의 다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도 자꾸 빙빙 돌아서 봉호 형이 손을 봐주었다. 그래서 양쪽 날개꼬리 길이가 다르다.


“현오 연은 근사한데, 바람도 없는데 잘 날아”

“응, 아버지가 만들어 줬거든 연실이 없어서 내가 실패에 이거 저거 다 감아줬어”


미경이가 동생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늘 업고 다니던 막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 오늘은 포대기에서 해방됐네.”

“응, 오늘은 엄마가 가게에 안 나갔거든. 그럼 뭐 하냐? 막내 대신 저 녀석을 보고 있으니”


운도의 연이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지자 개구리와 운도가 또다시 저만치 달려간다. 개구리가 연을 놓자 운도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바람이 부는지 아까보다 연이 더 높이 떠오른다. 운도가 뒤를 보며 달린다. 연이 없는 개구리는 공연히 운도 따라 달린다.


연이 제법 떠올라 바람을 받자 둘은 멈춰서 킬킬거린다. 가오리 연 긴 꼬리가 둥그렇게 바람을 맞다가 축 처진다.


“운도야 뛰어”

내 소리를 듣고 운도가 신작로를 쳐다본다. 연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운도가 뛰기 시작하자 이번엔 뱅글뱅글 돌면서 땅바닥에 처박힌다. 미경이가 깔깔깔 웃는다.


“다시 손봐야겠는데…….”

개구리와 운도가 연을 들고 또다시 저만치 올라갔다가 다시 뛰어 왔지만 연은 날지 않는다.


“그런데 운도 좀 이상하지 않냐?”

미경이가 묻는다.

“뭐가?”

“스웨터 뒤집어 입은 것 같은데”

“그게 여기서 보여?”

“저거 네 옷이었잖아. 앞에 이렇게 지그재그 무늬 있는 거잖아”

“어라 그러네. 뒤집어 입었네."


나는 운도를 불렀다. 어차피 연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왜? 엉아”

“이리 올라와 봐”


미경이가 대신 대답했다. 개울에선 제 차지가 된 연을 들고 개구리가 뛰고 있었다.

신작로로 올라온 운도 얼굴은 땀이 나고 뻘겋다. 미경이가 물었다.


“너 뛰는 게 힘들지 않아”

“허! 오늘은 이상하게 답답하네, 그런데 그걸 누나가 어떻게 알았어?”

“그래 답답하지?”

“응 개구리는 잘 뛰는데 나는 이상하게 답답하고 힘들어”

“푸하하하”


듣고 있던 내가 갑자기 웃자 미경이도 웃음을 터트렸다. 저 스웨터는 원래 영도 형 거였다. 내가 물려 입고 그다음이 운도 차례다. 몇 년 동안 우리 형제가 자리 잡아 놓은 앞뒤를 운도가 뒤집으니 스웨터 목이 운도 턱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바보야, 옷을 거꾸로 입었잖아, 얼른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다시 입혀달라고 해”

“어? 어쩐지”


운도가 스웨터 목을 잡아당기며 대답한다.

“집엔 왜 가?”

미경이가 제 동생 다루듯 운도 잠바를 벗겨 나에게 주더니 스웨터를 바로 입힌다. 꼭 우리 엄마처럼 능숙하다

“자 이제 가서 놀아”

잠바를 입혀주곤 어깨를 뚝뚝 치며 미경이가 말했다. 운도가 겸연쩍게 웃고는 개울로 뛰어 내려간다.


“둘이서 뭐 해?”

치완이 목소리다. 돌아보니 용진이와 함께 와 있다.

“짜자잔…….”

용진이가 뒤에 숨기고 있던 걸 들어 보인다.

‘가래떡’ 뒷짐 지고 있던 치완이 손에도 두 뼘쯤 되는 떡이 들려있다.

“웬일이야? 너네 집 벌써 떡을 한 거야?”


미경이가 묻는다. 치완이가 대답한다.

“응 엄마가 막 떡광주리를 내려놓기에 한가닥 들고 뛰어나오는데, 용진이는 똥개야,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집 앞에 떡하니 기다리고 있잖아”

“헤헤, 저 앞마당부터 치완이 엄마를 따라갔지.이고 가는 광주리에서 김이 막 나던 걸 헤헤헤”


치완이가 제 손에 있던 떡을 삼등분해서 나와 미경이에게 준다. 아직도 따뜻하고 맛있다. 그러는 사이에 개울 턱에 있던 꼬맹이들이 우리가 뭘 먹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연을 집어던지고 신작로로 올라왔다.


“엉아 뭐 먹어?”

동작 빠른 운도가 제일 먼저 와 묻는데 ‘아차’다 먹었다. 빈손을 내보이는데 역시 미경이는 누나다. 현오에게 남긴 가래떡을 먹인다.

남아 있는 건 용진이 손에 들린 한 뼘쯤 되는 가래떡이다.


“형, 한 입만”

“나도”

“나도 한입만”


꼬마들이 용진이 앞으로 모여든다. 며칠 전에도 용진이는 볼 따귀가 터지는 커다란 알사탕을 한참 물고 다니며 아이들을 약 올렸다.

꼬마들 아양이 시작됐다. 용진이가 시키는 대로 뜀박질도 하고 춤도 춘다. 운도가 제일 열심이다.


“야 뭐냐?”

용팔이 형이다. 용진이가 뒤춤에 숨기는 가래떡을 이미 봤다.


“야 이리 줘 봐. 한 입만 먹을게”

“싫어, 그러다가 다 먹으려고?”

“짜식 요만큼만…….”


손가락 한마디만큼을 가리키며 용팔이 형이 용진이를 돌려세운다.

“진짜 요만큼만…….”


용진이가 손가락으로 떡을 짧게 잡고 용팔이 형에게 내민다. 용팔이 형이 떡 쥔 용진이 손을 잡더니,

“아야, 물지 마”


용진이 손에 들린 떡은 황당했다. 손가락 앞에 잡힌 떡조각은 남고 손 뒤에 늘어져 있던 떡이 온데간데없다.

“우 씨이, 내 이럴 줄 알았어”

용진이가 남은 떡조각을 입에 넣으며 저만치 킬킬거리며 달아나는 제 형 뒤를 쫓아간다.


운도를 돌아보았다. 춤추다 정지한 상태로 멈춰 서 있는데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나는 얼른 운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섰다. 왜 운도 몫을 남기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


“엄마 우리도 자지떡 해 줘”

대문을 들어서자 운도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말한다.

“누가 벌써 떡을 했냐? 설이 보름이나 남았는데”

“응, 치완이네”

“치완이네는 부자니까, 그리고 어른들도 계시니, 일찍 했구나”

“자지떡, 응 자지떡”


운도가 엄마 치맛자락을 흔들며 떼를 쓴다.

“어련히 때 되면 하니까 기다려”

엄마가 돌아선다. 운도가 더 떼를 쓰다가는 혼이 날 것 같으니 시무룩하게 돌아선다.

“영도 엄마 계세요?”

치완이 엄마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린다.

“네, 여기 계세요.”


운도가 그렇게 빨리, 그렇게 크게 대답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는데,

운도 입이 저렇게 컸었나?

입 찢어지게 웃는다.




개학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일이 개학식이기 때문이다

밀린 숙제 때문이다


형이 날씨를 베낀다며 내 일기장을 가져갔다

마구 휘갈긴 글씨가 두 칸에 한 줄로 채워졌다

엄마가 검사하다가 딱

걸렸다

나는 오늘 형하고 놀았다 를

나랑 똑같이 썼다 그것도

선을 마구 벗어난 글씨 때문에,


형은 내복바람에 밖으로 쫓겨났다

휘이잉 담벼락을 훑고 가는 소리


겨울바람은 쫓겨난 아이들만 찾아다니며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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