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실직자의 일기: 2025년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메리

살면서 이렇게까지 설레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있었던가


하나도 크리스마스 같지 않은 크리스마스지만

매년 해온 이벤트는 모두 그대로 했다.

관습 같은 거랄까..!


12월 초 남편과 서로의 선물을 준비해서 트리 밑에 뒀고(구아바 나무에 조명을 감은..)

이브날 점심을 친구와 둘이 먹고, 저녁은 요리를 해서 친구 부부를 초대했다. 매년 똑같다. 올해는 별 감흥이 없을 뿐..!


내 친구는 지속성 우울장애가 있다고 했다. 몰랐다.

약을 먹고 있는 줄도 몰랐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줄도 몰랐다.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별 반응 없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 텐션이 꽤나 낮은 편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우울감이 많은 상태였다니,, 몰랐던 게 미안했고 앞으로 더 신경 쓰고 이해해야겠다 생각했다.


다른 친구는 그동안 내가 맡았던 모임 총무 역할을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내가 신경 쓰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예쁜 마음이었다. 고마운 동시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 마냥 편하지 만은 않았다. 그래서 바로 고맙다고 하지 못했다. 친구들한테 물어보자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했을 뿐.


사실 나는 내 우울증을 내 지인들이 알고 날 이해해 주길 바랐고, 내가 맡은 총무 역할을 얼마나 신경 써서 하고 있는지 알아주길 바랐다. 속 좁은 관종 같지만 그랬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내 친구들은 그런 날 알아주고, 또 이해해 줘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시에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알아달라고 얼마나 몸부림쳐댔으면 친구들은 날 달래듯 따뜻함을 줬을까.


남편은 친구들과 올해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중에, 나에게 의지가 되지 못한 것 같다며 본인의 올해의 실패를 나로 꼽았다.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다음날 얘기해 주었다. 덕분에 내가 이만큼만 힘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진심이다. 얼마나 든든한데..


더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가득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다! 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