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백수의 일기 : 2월 두 번째 금요일

국립중앙박물관

4시간 남짓 잠을 잤다. 백수는 피곤할 일이 없어서 잠도 필요 없는 걸까. 하지만 잠을 못 자니 종일 너무 피곤했다..


연휴 전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국중박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함께 떡상한 국립중앙박물관. 나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슬슬 사람도 덜 몰리고, 평일 오후니 좀 낫겠지 생각하며 가보기로 했다. (잠을 못 자서 살짝 후회하긴 했다) 역시나 사람도 적고 주차도 편했다! 그리고 상설 전시가 무료라는 사실에 놀랐다. 왜 몰랐지? 이렇게 멋진 곳이 무료인데..!


사유의 방 하나만 기대하고 갔는데, 예상외로 너무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먼저 웅장한 크기에 압도되었고, 꽤나 감각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가장 재밌었던 건 문명의 발전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그림으로 소통하던 시대에서 정갈한 문자가 새겨지는 과정. 흙을 빚어 투박한 그릇을 사용하던 시절에서 고급스러운 무늬까지 담은 유리그릇을 사치품으로 두는 때까지. 두 발로 걸으며 달라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참 신기했다.


기대하던 사유의 방에 들어섰을 때, 무언가 나를 훅 휘감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공간에 고요히 앉아 사유하는 반가사유상 두 점뿐인데, 꽉 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동시에 내 몸이 차분해졌다.

다음에 혼자 와서 사유의 방에 오래 머물고 싶다. 이들과 함께 사유하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분이 갑자기 해설을 해주셨다.(해설가는 아니었다) "달과 해가 왕의 상징이었다, 이 상징은 신라시대까지도 이어졌다" 라며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시기도 했고, "확실하진 않지만.."이라며 본인의 해석도 말씀해 주셨다. 나랑 남편은 이 해석엔 살짝 반대다...ㅎ

이 선생님은 코가 없는 사람 얼굴은 다 죽은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코의 역할인 숨, 숨이 없는 사람은 코를 만들지 않음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코는 튀어나와 있는 탓에 부러지거나 없어졌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코 얘기를 하며 선생님은 주입식 교육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코를 만들지 않음으로 망자를 표현하던, 기발한 뇌를 우리도 갖고 있는데 직접 쓰지 않고 지식을 넣어버려 기회를 잃고 있다고.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꽤 인상 깊어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훨씬 넓고, 볼 것이 많아 다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또 방문하면 되니 아쉬움을 금방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 문화생활을 함께해 참 즐거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추측해 보고, 알아가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역시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짝꿍이랑 놀 때가 제일 재밌다. 꽉 막힌 퇴근시간 나에게 운전을 시키고 코 골며 자는 사람이지만 이것도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