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니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턴 나만 고모네 집에서 살았다. 동생은 아빠와 둘이 살았고.
나보다 7살 많은 언니는 내 친언니 같은 존재가 되었다. 물론 그녀가 날 키링처럼 늘 데리고 다닌 덕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6학년 여름 방학이었을 거다. 방학엔 작은 아빠 댁에서 동생과 함께 지냈는데,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오더니 고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아마 고혈압이었던 고모에게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
아직도 고모 영정사진을 마주한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진 눈물,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생생하다.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또 날 키링처럼 달고 다니던 언니도.
언니는 고작 20살이었다. 나는 13살. 우리는 고모가 돌아가시고 더욱 끈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고모 없이 20년을 잘 살아냈다.
지난해 나는 결혼을 했고, 언니는 아이를 낳았다. 출산 시기가 겹쳐 내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나는 결혼식 전에 고모 납골당에 가 편지를 두고 왔다. 언니랑 내가 이렇게 잘 큰 모습을 고모가 봤다면 너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언니랑 내가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된 모습을 가장 좋아했을 고모다.
오늘은 언니의 아이. 내 조카의 돌이다.
새삼, 어떻게 우리 언니가 아이를 낳고 이 아이를 1년이나 키웠을까 싶다. 고모가 안 계신 빈자리가 너무너무 컸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워냈을까 하는. 그리고 그 조그맣던 아기가 1년을 무럭무럭 자랐다는 사실이, 곧 걷고 말도 할 거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경이롭다.
우리는 지난 20년을 잘 살아왔다. 고모가 그립지만 우리끼리 잘 해냈다. 앞으로도 계속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함께 살아가면 된다. 꼭 건강하길 새삼스럽지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