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와 행복
백수인데도 금요일은 기분이 좋다.
남편이 좋아하는 탓일까.
낮에 혼자 세차를 하러 가려다,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갔다.
겨우내 묵은 때가 벗겨지는 모습에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 구석구석 샴푸칠을 하며 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엄청 많다. 어디서 생긴 지 모를 상처도 꽤나 있다. 범퍼카 수준으로 험하게 다룬 것도 사실이기에 운남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운남이는 우리 애마의 이름이다.
운남이는 엄마의 결혼 선물이다. 운남동에서 차 계약을 하고 너무 신난 남편은 다리에 깁스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던 걸로.. 차가 없던 우리에게 운남이는 두 다리가 되어 줬다. 어디든 맘먹고 가지 않아도 되고, 시간 제약 없이 움직일 수도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어른들이 운전하는 차에 얻어 타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없다는 거다. 그냥 한 번 타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죄송하고 부끄럽다. 엄마에게 돈 대신 차를 해달라고 한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당연해졌던 운남이를 오랜만에 씻겨주며 귀한 마음이 다시 피어났다. 고맙고 소중한 우리의 차. 멀끔해진 모습을 바라보며 남편은 운남이 미모 돌아왔다며 좋아했다. 남편도 세차하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하다.
또 좋았던 건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실수로 샴푸 거품을 온 얼굴에 뒤집어쓴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고, 운남이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그동안의 에피소드를 곱씹었다. 세차를 마치고는 서로 수고했다며 하이파브를 했다. 그리고는 시원한 맥주를 사 와 함께 영화를 보며 금요일을 보내줬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려 노력하자는 나의 다짐이 오늘 참 잘 이뤄진 듯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