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살

정암 선암사 수마노탑 기행

by 김상원


꽃가마라는 의미인 화개살은 예전부터 중이 될 팔자라 여겨져 천하고 흉한 기운이란 의미로 살(煞)이라 불리웠다. 서른 넘어 찾아온 정미 대운이 화개살이라, 지난 십 년 대운의 삶은 내게는 끝 모를 순례의 연속이었다.


강원도 북쪽 끝 금강산 자락 건봉사부터 남도의 땅끝 달마산 도솔암까지. 휴가 때마다 부단히도 전국을 돌아다녔다. 불자도 아닌 내가 무슨 연유로 길 위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이것도 팔자, 화개살 때문이었을까.



지난 여름에 나는,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 수마노탑을 찾았다. 인도 성자 싯다르타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몇 안 되는 곳, 신라시대에 세워진 신성한 땅.


사농공상의 옛 시대에서 택할 수 있는 새 삶이란 오로지 출가뿐이어서, 다시 살고자 한다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화개살의 본질은 혼란과 번민, 이별과 상실, 인고와 성찰의 고통을 통해 낡은 과거를 끊어내고 새로운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오지 중의 오지인 태백산 깊은 자락에 마노석으로 탑을 세운 신라 승려들은 어떤 오기로 이런 역사를 벌였을까. 그 집착과 집념도 화개살의 강한 충동 때문이었을까.



여름 새벽, 산 중턱에 올라 마주한 수마노탑은 정갈하면서도 단정했다. 마치 감실의 성체를 조배 하듯, 그 공간은 진신사리를 모신 탑신과 나 둘 뿐이었다. 수년간 기다렸던 그 순간,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이 것이 내 30대의 마지막 순례이구나.


이제는 먼 산속의 부처를 찾을 일이 아니라, 곧 나를 찾아올, 내 품에 안길 부처를 모실 때다. 아직 내겐 익숙하지 않지만, 아버지란 이름의 무게와 책임을 갖고 이 산을 내려가야 한다.


이유 모를 순례길을 시작했을 때, 화개살이라 불렸던 내 무의식은 앞으로의 숙명을 미리 알았던 듯 하다. 이만 되었으니, 과거의 환상과 집착은 내려놓고 새 삶을 준비하라고. 너의 성소는 다른 것이 아니라, 끝없는 인내로 가족을 꾸리고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30대의 마지막 해, 마침내 수마노탑에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산 아래에서는 만삭의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잠들어있다. 다른 순례자의 인기척에 정적이 깨질 때까지, 한참을 나홀로 탑 앞에 머물러있었다.


절을 떠나 산을 내려가면서,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를 수마노탑을 올려다봤다. 산 아래에서는 곧 태어날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떠나는 그 길에 다시 한번 기도했다. 지난 날, 늘 내리던 마음 속 가랑비도 이제는 그만 그치길. 이제는 온전히 가족과 아버지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무언가를 끊어내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산사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며, 가는 길 내내 선문답 같은 화개살의 뜻풀이를 속으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