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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Jan 22. 2024

국제관계로 바라보는 고려 (1)

거란-송의 양극체제와 세력균형

역사 기록을 해독하는 것은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하지만 국제관계 이론을 전근대 동아시아에 적용하여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도전적인 새로운 영역이다. 시간과 공간의 범위 면에서 근현대와 서구를 넘어, 전근대 동아시아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국제관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접근은 일반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각 국가의 대외 정책을 설명하는 '조공' 외교라는 특수한 구조를 중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학, 특히 현실주의에서 국제 체제가 작동하는 것은 각 국가의 '이익'(interest)을 기반으로 한 행태를 기초로 한 구조적 요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제관계학의 용어로 전근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국제체제는 세 가지 형태로 바라볼 수 있다. 

1) 중국 대륙의 단일 통일 제국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패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극체제(unipolar system)

2) 중국 대륙의 양분된 제국들(보통 북방 이민족 왕조와 남방 한족 왕조)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극체제(bipolar system)

3) 여러 왕조들이 경쟁하는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


거란-송의 패권경쟁 속에서 고려(와 서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출처: 나무위키)


고려 왕조 초기(918-1170)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패권 경쟁에 따른 큰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300년 동안 번영을 누린 당나라가 무너진 후, 오대십국시대(907~960)에 전쟁과 권력 교체가 반복되는 사이 거란(요) 제국이 연운16주를 차지하며 중국 북부로 진출했다. 남쪽에는 한족의 북송 제국이 현재의 북경을 중심으로 거란과 국경을 맞대며 대립과 갈등이 발생했다. 거란의 군사적 우위는 송의 북쪽 영토 확장을 차단시켰다. 1004년 두 제국 간의 전쟁은 1005년 전연의 맹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국제관계에서 거란에 비해 송의 입지가 약해지고 중화질서에서 한족 중심의 세계관이 약화됨을 의미했다. 북송은 해마다 은 10만냥과 비단 20만필을 거란에게 바침으로써 동아시아의 규범적, 실질적 패자의 지위를 포기했지만, 거란과의 잠재적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전연의 맹에서 드러난 송의 상대적 약세와는 대조적으로, 거란의 수 차례에 걸친 군사적 침공에 대한 고려의 승리는 100년 넘게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993년부터 1019년까지 진행된 고려-거란 전쟁은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서 고려에게 더 큰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했으며,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고려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993년 두 왕조 사이의 합의로 확립된 압록강 이남의 새롭게 편입된 고려의 영토(강동6주)는 고려-거란 전쟁을 거치며 더욱 공고하게 고려의 영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려는 강화된 국제관계에서의 입지를 활용해 거란과 수교를 공식화하여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게 되었다. 동시에 고려는 송과 문화, 경제적 교류를 유지했다. 고려와의 공식 외교 채널에서 송의 영향력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송은 고려와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1068년 송은 고려와 국교를 회복하며 고려 사신을 거란과 동등한 국신사(國信寺)로 승격시켰다. 송의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고려와 거란을 같은 위치로 인정한 것이다. 거란에 대항하여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려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송의 절실한 필요성과 함께, 고려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 역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균형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 글은 국제관계 이론을 전근대 동아시아에 적용하여 고려의 외교정책을 분석한 한국국제정치학회 논문 "동아시아 국제체제에서의 이익을 위한 편승: 거란-여진 패권 투쟁 시기 고려의 외교정책 (Bandwagoning for Profit in the East Asian International System: Goryeo’s Foreign Policy Choice During the Khitan-Jurchen Power Struggle)"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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