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억지로 꾸역꾸역 몸부림치며 애쓰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Nothing Impossible"을 외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설픈 조언으로 허구의 용기를 주는 멘토들이 남겨놓은 그 메시지가 진리인양 믿으면서 살았던 청년시절. (이 메시지가 용기가 된다는 사람에게는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짐을 알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그것을 내려놓고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특히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더욱더 그 순간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아이에게 A를 하라고 하면 B를 하고, A를 하라 했더니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시간이 되어서야 한다.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감정을 나에게 안겨준다.
연년생 두 돌, 세 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기쁨과 행복의 순간도 많았지만 내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인내의 한계, 분노의 클라이맥스를 맛보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감정의 찌꺼기와 불순물들을 들여다보면서 후회하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이런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은 앞서 말한 내려놓지 못한 나의 교만이 컸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 역시도 스스로 한 새해 약속, 남편의 요구들을 귀담아듣지 못해 누군가의 만족을 주지 못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면서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에게 그 기대를 한 것부터가 어쩌면 처음부터 모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마음. 요게벳의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다.
모세의 갈대상자 (태바)
이스라엘 백성 중 아들이면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던 핍박 속 시대에 태어난 모세.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기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무리라는 생각에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나일강에 띄운다.
성경 속 몇 줄 안 되는 이 이야기를 나 역시 건조하게 읽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하며 내 머릿속에 갈대상자를 그려보니 담담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갈대상자에 물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가다가 물살에 휩쓸여 가라앉지는 않을까?'
모세 어머니 요게벳에게 있었던 용기는 내어 맡김의 믿음이었다. 그것이 모세의 갈대상자 태바의 어원이기도 하다.
2023년 계획했던 다짐들,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감, 사회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좌절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한계, 가족들에게 받는 상처,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한 당혹감, 기대했던 결과에 대한 좌절, 연애, 결혼, 직장, 가족, 이별 등
올해 마흔이 된 나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필요한 자세는 이 모든 것들을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모세의 갈대상자, 태바의 형상이다.
그래야 진장한 자유를 맛볼 수 있으니까.
그래야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니까.
올해 마흔. 나이를 허투루 먹을 수 없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를 두고 (출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