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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멕켄지 Nov 03. 2022

독박 육아할 때 남편이 알아줬으면 하는 감정

Prologue

사람이 힘들 때 힘내라는 이 긍정적 메시지가 이토록 공허하고 힘이 없는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것보다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친한 동생과 친구가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


언니,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당연하지, 네가 느끼는 감정 당연한 거야~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나였으면 너처럼도 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면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해 줬을 때 그 어떤 형식적인 격려의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1. Question

남편의 5주간 연수로 인해 독박 육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주가 견딜만한 것은 그 고지의 끝이 보이는 마지막 주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견딜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장 월요일부터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평상시 골골대던 체력을 끌어 끌어 4주간 쏟아부었더니 마지막이라 그 긴장이 풀어졌는지 평상시처럼 투정 부리는 연년생 두 돌, 세 돌 아이를 끌어안을 에너지가 나에게 바닥이라는 사실을 나조차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결국 엄청난 파국의 월요일 밤을 보냈고 그 자리에 남편이 없다는 사실과 이 소나기를 나 혼자 맞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괴로웠다. 아무리 내가 설명해도 이 감정과 고통은 남편이 알리 없고 나는 합법적인(?) 이유로 이 먹구름 아래 없는 남편이 미워졌다. 남편에게 탓할 수 없어서 그게 더 억울하고 외로웠다. 같은 물리적 공간에 없을 뿐이지 매일 점심시간과 저녁마다 나의 안부를 묻고 나의 고생을 인정해주며 주말에 오면 밀린 분리수거랑 청소도 하고 아이들 케어하고 다시 연수원 돌아가기 바쁜 자상한 그다. 그렇지만 그 나머지를 혼자서 동동거리며 채운 나의 괴로움은 아무리 곁에서 위로한들 대체되지 않았다. 지난 4주 동안 꾸역꾸역 괜찮은 척 채워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혼자서 그렇게 어제부터 남편의 톡이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가 오늘 점심때는 조금의 용기(?)를 내어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였을까? 아님 그에게 얼토당토 한 내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어서였을까? 나 자신조차 모르는 기대로 전화를 받으니 역시나 내 목소리는 냉랭할 수밖에 없었고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에 침묵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 내 모습에 남편도 하다 하다 속상해서 화가 난 것 같았다. 여태까지 잘 왔고 자신은 최선을 다해 나의 고생을 인정하고 격려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더러 더 이상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평상시처럼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해봐,

왜 평상시 L(나의 이름, 우리의 호칭은 남편은 나의 이름을, 나는 오빠라 한다.) 답지 않게 명쾌하게 풀어내지를 못해. "


"그냥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말한다고 한들 오빠가 내가 느낀 감정의 크기를 알턱이 있냐고...!

난 그게 단지 그냥 억울하고 화가 난단 말이야"


남편 말대로 나답지 않은 태도였다. 어떤 갈등이 생기고 감정의 불화가 발생하면 구체적으로 나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최대한 화나는 감정을 정화하여 담담하게 나의 느낌을 솔직하게 풀어내던 이성적인 나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대화는 상대로 하여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스러움을 안기고 동시에 비난을 느끼게 하는 최악의 화술이었다. 알고 있었다.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나의 뇌는 고장이 났다. 그런 걸 처리할 만큼 여유도 있지 않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몰라, 그냥 끊어!"


"이런 식으로 끊으면 기분이 안 좋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L답게 이야기해줘~"


"몰라, 구구절절 말하기도 힘들고 귀찮아,

오빠가 알아서 고민하고 해결해봐"


이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5주간의 연수를 잘 받고 이제 내일이면 그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남편의 노고를 완전히 무시한 참 이기적인 와이프의 모습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못났고 비정한 태도인지 충분히 알지만 뱉어버린 나의 언어는 그게 가장 와일드하고 솔직한 내 모습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었다.



2. Answer

평소답지 않은 나의 이런 모습이 당혹스럽고 화가 난다면 남편은 당황해서 오히려 역정 내지 말고 그만큼 이 사람이 힘들구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제 다 왔고 끝나가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고 다그치거나 어설픈 위로하려 하지 말고 여태까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오히려 더 살펴줬으면 좋겠다.
남편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의도인지 충분히 모르는 바 아니고 이런 심리적 기대가 평범한 남자가 풀어내기에는 과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태까지 우리의 부부관계는 내가 이런 실타래 같은 감정들을 차근차근 풀어가면서 그 합의점을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그 기계가 고장 났다. 고장 난 기계를 답답해하고 탓하지 말고 아직 꺼지지 않은 나의 이 괴로움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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