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책 읽으며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에게 톡 한 줄을 받았다. 오늘 점심때 출장 나오면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니 겸사겸사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오전에 등원시키고 점심때까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 하나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 화난 감정은 지체 없이 손가락 타이핑을 움직이며 카톡에 서운한 표정의 이모티콘과 대사를 쏜살같이 날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본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나. 회사일 하다 보면 변수가 늘 생기기 마련인데 무슨 일 있었겠지’하며 일하고 있는 남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당장 그가 보기 전에 삭제해 버렸다.
화가 난 이유 1. 이유 없는 약속 취소에 대한 서운함
그런데 문제는 내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늘 체력과의 싸움으로 골골 대던 내가 오늘 아침도 아이들 등원시키느라 아침도 못 먹은 상태로 부랴 부랴 나온 상태였다. 게다가 유치원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멀어서 빠르면 30분, 러시 때 걸리면 40-5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등원은 남편이 출근하면서 하기로 했지만 그가 오전에 좀 여유 있게 출근했으면 하는 마음에 오전에 하고 싶은 운동하고 가라면서 먼저 보낸 아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데 못 나온다는 문자는 단순히 약속이 어그러져서 그렇다기보다는 설명 한 줄 없이 그 뒤에 이유를 내가 추측하며 받아들이라는 명령처럼 느껴지고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했다. 한 줄 더 쓰는 게 그렇게 바쁘고 힘든가?
화가 난 이유 2.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든가?
그리고 설령 이렇게 되었다면 오전에 한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점심 늘 거르고 체력도 없는데 잘 챙겨 먹으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어느 책에서 그런 것처럼 기대를 가지면 그 기대에 대한 결과 역시 기대한 사람 몫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일까? 이 기대는 부부 사이에서 가지면 안 되는 과한 욕심인 걸까? 결국 이 서운한 감정을 다 풀어내지 못하고 읽고 있던 책을 덮고 1시에 있던 약속도 취소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힘들지만 그래도 ㅅㄹ,
브런치를 켰다. 글로 쓰다 보면 안다. 생각하다 보면 안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사람은 마음이 상하고 또 이렇게 사소한 걸로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망치고, 이렇게 사소한 일로 나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릇보다 더 깨지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아는 악의 영은 늘 인간에게 나의 서운한 감정에 집중하라면서 달콤한 유혹을 한다.
하지만
그게 뭐라고...
그게 뭐 대수라고...
그게 뭐 그렇게 천지개벽할 일이라고...
그 알량한 나의 자존심과 서운한 마음 때문에 상대의 성품을 강등시켜 버리고 동시에 나의 인격도 강등시킬 일인가?! 왜냐하면 그래봤자 우리는 한 몸인 부부이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준 점수가 결국 내 점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매번 느낀다. 부부 생활하면서 항상 느낀다.
사랑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나에게 없는 사랑을 주려니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나는 나에게 없는 그 사랑을 충전하기 위해서 매일 몸부림친다. 사랑이 항상 가득 채워져 방전되지 않는 샘물을 찾아 그 속에서 깊은 사랑을 끌어와 1분 1초를 견디고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을 살아간다. 그러면 한 달이 가고 1년이 흘러간다. 힘들지만 그 사랑을 하고, 그 사람을 품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신은 속삭인다. 나는 그 속삭임에 예스하기로 했고 대신 그 힘을 달라고 전혀 손해 볼 것 같지 않은 거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