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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멕켄지 Nov 30. 2022

시아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 버리기

1.

남편과 결혼한 지 6년 차다. 한 가정을 이루면서 누구나 그렇듯 가장 많이 신경 쓰이고 늘 어려운 부분은 또 다른 문화를 지닌 상대방 배우자의 가정을 품어야 한다는 것.


나에게는 결혼하면서 시아버님이 생겼다. 결혼하기 얼마 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쓸쓸하실 아버님을 생각해서 결혼 후 평상시 자주 뵈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나는 불행히도 살갑게 이 얘기 저 얘기 잘하는 성격이 못 되는 며느리였다. 평상시 듣도 보도 못한 말이겠지만 나에겐 어른 울렁증이라는 심각한 불치병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은 아이들 데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


그래서 우리 가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님을 뵙고 식사를 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의 관습이 되었다.


아주 편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가끔 아버님과 밥 먹고 나서

"오늘도 아버지랑 밥 먹고 섬겨줘서 고마워~"

표현해 주는 것이 참 고마웠고 외동아들인 남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가 이것임을 알기에 나는 기꺼이 같이 동참했다.


그런데 매번 불편했던 것은 아버님이 나에게 식사하면서 늘 하시는 말씀.

"그거 먹고 되냐.  이렇게 맛이 없게 먹어서리~

 좀 많이 먹어라.

애들 키우려면 힘도 많이 드는데~"

안다. 충분히 날 사랑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

어른들이 흔히들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


하지만 먹을 때마다 먹는 게 마땅치 않으셔서 불편해하시는 아버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불편했다. 눈치 보면서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 키에 평균 BMI 지수와 몸무게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아버님 보시기엔 말라서 힘 하나 못 쓰게 생겼고 밥 먹는 양도 성에 안 차신다. 나는 매번 충분히 맛있게 먹었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많이 먹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논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고봉밥처럼 밥공기에 가득 채워서 먹는 그 양을 잘 먹는다고 생각하시는 아버님과 식당에서 성인 1인 공깃밥 1/2이 적정량인 나. 그 간격을 채우기거리가 너무 멀었다. 매주 보는 아버님인데 그럴 때마다 아버님의 그 기준을 꾸역꾸역 채우려다 면 나 역시 인간인지라 벅차서 이 시간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른들 그냥 으레 하시는 말씀이시지' 하며 그냥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쉽지가 않았다.

                                                                                  From.  화가 이목을


2.

그런데 최근에 그렇게 넘기지 못하고 눈물이 핑 돌았던 사건이 있었다. 역시나 내가 먹는 모습이 못 마땅한 아버님은 그날은 인상을 쓰시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셨다.(내가 느끼기엔 호통인데 남편은 그냥 하시는 말씀 스타일이라고 한다. 나보다 어버님을 더 잘 아는 남편 말을 존중한다. 어쨌든 나의 주관적 정서는 그랬다.) 속으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분위기 이상해져'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다. 그때 남편이 어설픈 위로하거나 아버님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나는 더 화가 나고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남편은

"그래,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말투가 여자들이 느끼기엔 무섭게 느껴질 거야. 

그리고 J(내 이름)가 특히 그런 거에 예민하고 싫어하는 부분이니까."

라고 대답해줬다.




여전히 아버님은 나에게 밥 먹을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 중 이해 안 되는 지점들도 적지 않다. 70 평생 가꾸고 축적해오신 당신의 삶의 방식과 생각을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세월에 대한 존중. 이제는 나 역시도 그것들을 필터링하는 법을 배웠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암기하는 것.

어설프게 이해하려 했다가 오히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더 힘든 경우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아~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런 성향의 사람이야. 그러니 이럴 때 이런 말, 이런 행동을 하곤 하지.'하고 수학 근의 공식을 외우듯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외워버리는 것. 그러면 내가 앞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감정 노동의 강도도 현저히 낮아지고 내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힘들어질 때 흔히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너무나 쉽게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은데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가 따르며 그리고 그게 가능하리라고 기대하는 걸까?  


그 '이해'의 허상을 버리는 순간 나에게 편안함과 자유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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