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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멕켄지 Dec 12. 2022

"NO"라고 말하기 힘든 당신에게

외고 자퇴를 결심한 아이



몇 년 전 외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입학한 지 석 달 정도밖에 안 된 1학년 어느 반 반장 아이가 자퇴를 결정하고 행정절차를 밟고 있을 때였다. 나 역시 그 반 수업을 들어가는 터라 잘 아는 아이.


어느 날 그 아이가 조용히 들어와 담임 선생님 자리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담임선생님 옆자리 같은 부서로 일하고 있었다. 상기되고 긴장된 얼굴이 역력한 아이의 얼굴에는 어느 누가 봐도 그 당시 선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많이 힘들지?"


아이는 묵직한 교무실의 공기를 깨준 아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고맙고, 한편으로는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네~ 지금도 이 결정이 맞는지 많이 고민돼요."


여기까지 왔을 땐, 이 아이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얼마나 많은 주변 어른들로부터 조언이란 명목으로 설득을 들어왔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내가 어쭙잖은 가타부타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선택이든 이 아이 당사자 본인만큼 진지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선택에 답은 없어.

외고 자퇴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외고 졸업한다고 인생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네가 행복한 게 선택의 답이지."


그런데 씩씩하게만 보였던 아이가 펑펑 운다.


"선생님~, 사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선택이 어쩌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두려움 때문에 바르르 떨고 있는 그 여자 아이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나 보다. 여태까지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NO"를 하며 자신의 정당성과 자신이 이곳에서 불행한지 설명하고 설득했을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


그걸 해낸 아이가 지금 이 순간 문득 떠오른 이유는 그 용기를 가진 아이에게 선택의 팁을 준 당사자인 나 자신은 왜 내 삶에서는 그 용기를 꺼내지 못하는가 때문이다.


홀로 계신 시아버님이 적적하실까 봐 매주 두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우리 가정. 남편은 말했다. 내가 우선이라고 컨디션 안 좋거나 불편하면 언제든지 "NO" 하라고.


그런데 한주라도 사정이 생겨 아버님과 식사를 하지 못한 주가 생기면 담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한다는 남편의 의지가 직접적인 워딩 없어도 나에겐 보였고 더더욱 나는 내 의사를 말하기 힘들었다.


어제는 식사하는 그날이었고 나는 아침부터 두통도 있고 컨디션도 최악이라 정말 "NO"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 청승맞게 온몸이 힘들어서 서럽게 눈물을 남편 몰래 훌쩍거렸다.


왜 거절하는 것이 어려울까?
거절하고 돌아오는 상대방의 반응을 왜 이토록 과하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결국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부족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아버님과 식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의 몸상태이다. 그 컨디션이 유지되어야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나'로 버티며 살아갈 수가 있다.


"NO"에 대한 결과는 상대방의 몫이고 거기에 파생되는 파편은 아쉬워하지 말고 서운해하지 말고 그만큼의 신뢰를 형성하며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다.


내가 할 몫은 나를 우선으로 돌보며 나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답하는 것. 


몇 년 전, 자퇴하는 외고 아이에게 내가 했던 그 말.

("선택에 답은 없어.

그냥 네가 행복한 게 선택의 답이지.")

나에게 돌려주며 용기 내본다.


"오빠(남편  호칭), 나 오늘은 가기 싫어.

그냥 좀 쉬고 싶어.

애들이랑 아버님이랑 식사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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