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홧가루 날리는 날

by 한가람

정류장에서 내려 환승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앉으려고 보니 노란 송홧가루가 벤치에 한가득이다.

옆벤치도 마찬가지. 누군가 쓸어내린 흔적 위로 송홧가루가 또 내려앉아 있다.


잠시 어쩔까 생각해 보다가 휴지를 꺼내서 닦기로 했다. 15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반듯한 자세로 서 있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닦고 있는데 옆 벤치에 앉아계시던 어르신이 말을 건네셨다.

"거 닦아봐야...."


그 한마디 속에는 고단함이 담겨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내려앉는 송홧가루에 지치셨나 보다. 하긴 이맘때 집 베란다 문을 열어 놓으면 언제 청소했냐는 듯 바닥이 버석버석 끈적끈적거리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도 환기를 안 시킬 수도 없으니 지긋지긋하셨겠지.


살짝 미소 지으며

"제가 앉으려고요" 하고 답해드렸다. 사실이 그랬다. 이 벤치를 청소해서 깨끗하게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앉으려고 보니 치워야 했던 것일 뿐이다.

깨끗하게 닦고 나서 앉으니 서 계셨던 몇 분도 옆에 와서 앉으신다.

그래 이거면 됐지. 만족스러움이 퍼져나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잠시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별생각 없이 벤치를 닦는 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이어진다면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는 상황에서도 벤치는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관리하고 함께 혜택을 누리는 것. 그것이 공공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일 터이다.

이용자, 관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용자이자 관리자인 것이겠지.


공공화장실이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는 말해 뭐 하겠는가. 곳곳에 잘 가꿔진 녹지는 숨통이 트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가로의 벤치에서는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시민들을 위한 스포츠센터나 공연장, 박물관 등 공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들 모두가 함께 관리하고 함께 누리는 곳들이다.

이용자가 잘 이용하면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어쩌면 또 다른 혜택을 제공할 여력이 생겨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공재를 더 신경 써서 사용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예전에 읽었던 거인의 정원이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거인이 살고 있는 집에는 아주 넓고 큰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언제나 겨울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이 정원으로 몰래 들어와 놀기 시작했고 성가셔하던 거인은 아이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아이들이 봄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높은 담장을 허물고 자신의 정원을 아이들에게 개방했다.


중간에 다른 사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것은 이 정도다. 크고 멋진 집과 그렇게 넓은 정원을 가진 거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정원은 겨울만 이어지고 있었고 거인의 마음도 삭막하기만 했다.

순수를 맞이하고 나서야 거인의 정원에 봄이 찾아왔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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