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피하기

by 한가람

아침에 눈을 뜨면 주위가 환하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데 햇빛이 달라졌다.

출근길 버스에서 일출을 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미 하늘 위에 떠서 햇살을 듬뿍 내려보내고 있다.


버스를 탈 때도 햇빛이 비치는 쪽인가 아닌가를 구별해서 타는 시기가 되었다. 아마 1~2주 전쯤부터였을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면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려서 앉아있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서 앉게 되었다.


사흘 전쯤이었을 것이다. 며칠 동안 날이 흐리다가 맑아진 날이었다. 말 그대로 쾌청한 하늘이 고운 자태를 보여주어 기분까지 상쾌했다.

창밖으로 색색의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꽃들을 보며 눈호강을 제대로 하고 있다가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가 막 커브를 돌았고 도심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 쪽 승객들이 마치 구령에 맞추어서 움직이기라도 하듯 동시에 창가자리에서 내측자리로 옮겨 앉았다.

뒤에서 그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고 있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성별, 나이를 벗어나 모두 한마음으로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햇빛을 꺼려하게 된 걸까?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햇빛 속에서 뛰어놀았던 것 같다. 초등 저학년 때도 친구들과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동산에 가서 쑥을 캤었고, 방과 후에는 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안경, 오징어땅콩, 고무줄놀이(고무줄이 발목에서 시작해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나중에는 머리까지 간다. 몸치인내가 노래 박자에 맞춰서 그렇게 놀았다는 게 새삼스럽다), 사방치기, 비석치기(납작한 돌을 옮겨서 세워진 돌을 넘어뜨리는 놀이. 이 역시 발등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난이도가 올라간다), 단단뛰기(엎드린 친구 위를 뛰어넘는 놀이. 여러 명이 하면 마치 장애물 경주처럼 계속 뛰어넘어야 한다) 공기놀이(공기는 당연히 작은 돌이다) 등등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밖에서 놀았다.

선크림 그런 거 없었고, 모자 그런 거 없었다. 분명 해가 내리쬐서 더웠을 텐데 그래서 힘들었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훨씬 강하다.

여름엔 새까맣게 타는 게 당연했고 더우면 수돗가에 가서 세수하고 물 마시고 또 놀았다.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에 가서였던 것 같다. 햇빛의 자극이 너무 강해서 어지러웠던 것도 같다. 그즈음 체력이 약해진 것도 있을 것 같고 상대적으로 바깥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야 뭐 농담처럼 '별 보기 운동'이었으니까 체육시간이 아니면 밖에 나와서 해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새벽에 등교해서 한밤중에 집에 오는데 해는 무슨.


대학에 갔었을 때는 피부관리를 해야 한다며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뭔가 무지한 행동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오후의 강한 햇살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도 같다. 어느새 햇빚과 멀어졌었나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자연과 멀어지고 햇빛에 대한 기피도 늘어난 것 같다.

음지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을 빼고 보통의 생물들에게 햇빛은 꼭 필요한 존재인데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오늘도 날씨가 좋다.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고 미세먼지도 있지만

햇빛샤워를 하러 나가봐야겠다.

흙 위로 걸어보고 꽃들도 보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도 느껴보고

살랑이는 바람도 느껴봐야지.

창밖의 햇살이 참 따뜻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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