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는 출입문이 열리고 승객을 태운다.
한 사람 한 사람 교통카드를 찍고 차에 오른다.
그중 한 분에게 눈길이 갔다.
오른발에 반깁스를 하고 서있는 모습이 힘겨워보였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불편해 보이시는데 여기까지 오시라고 해야 하나 어쩌지' 하고 있었다.
마음이 다 똑같은지 앞자리 승객 두 분이 바로 일어나서 자리를 권하셨다.
두 분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놀라우셨는지 괜찮다고 손사래 치시며 서서 가도 된다고 하셨고 자리를 권하셨던 승객은 아니라고 잠시라도 앉아서 가시라고 재차 권하셨다.
더 이상 거절은 아니다 싶었는지 미안하신 표정으로 고마워하면서 양보받은 좌석에 앉으셨다.
양보하셨던 승객도 양보받으신 승객도 표정에서 따스함이 번져나갔다.
두 분에게 그날은 포근한 날로 기억되겠지.
보고 있던 나에게도 포근한 날이었다.
며칠 전 큰애가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는데 그날따라 광역좌석버스가 시간 안에 오지 않아 경전철과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가야 했다고 했다.
당시 발목 인대가 부분파열되어 반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광역버스를 타면 학교 근처에서 내려서 셔틀을 타고 학교로 바로 갈 수 있는데 반깁스 상태다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용객이 많아 서서 기다리고 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야 해서 꽤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발목에 힘이 가해지면 안 되니까 한쪽 다리에만 힘을 주고 버티다가 겨우 자리가 나서 앉았다고 했다.
"아. 무. 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어!"
라고 강조를 하는 큰 애의 얼굴엔 실망감, 속상함 그리고 시린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는 각자 경험한 대로 세상을 지각한다.
우리의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시린 경험이 더 많을 수 있고
어떤 이는 따순 경험이 더 많을 수 있다.
어떤 경험은 강렬하게 내면으로 들어와
선명한 자취를 남기고
어떤 경험은 흐릿하게 잔상만 남기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생존에 문제가 되기에 불행을 더 크게 지각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면 안 좋은 경험들만이 뇌리에 남아 어둡고 쓸쓸한 자리에 가 앉게 될지도 모른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소중하다.
흐려지는 눈동자에 총기를 불어넣고
식어가던 가슴에 온기를 되찾아준다.
좋은 경험도 나쁜 경험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니
이런 일 저런 일이 안 생기기야 할까.
일은 늘 있는 것이고 내 뜻대로 끌고 가기 쉽지 않다.
어떤 경험을 더 기억할 것인가?
일어난 상황보다 어쩌면 무엇을 선택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삶이 따스하게 지각될 수도
시리게 지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경험이 어떤 자리로 나를 데려가고 있는가?
고요히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