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이른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길지 않은 시간에도
땀이 송골송골 솟아난다.
연신 전광판을 바라보며 버스도착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다고 버스가 더 일찍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러 대가 동시에 도착했다.
타려는 버스는 제일 뒤쪽에 있다.
정류장을 벗어난 위치다.
앞쪽의 버스가 신호대기 상태라서 2~3분은
서 있어야 한다.
'버스 앞까지 가면 지금 태워주시려나?'
확신하지 못해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먼저 움직인 분들이 있었고 버스 문이 열렸다.
후다닥 달려가서 올라탔다.
시원한 실내 공기가 숨통을 틔워준다.
가끔 정확히 정류장에 진입해야만 문을 열어주시는 기사님도 있으시다. 규정상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객을 승하차시키면 안 되기 때문인데 정류장 존에서 2~3미터 벗어난 곳에 신호대기로 버스가 서있으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버스문을 두드리게 된다.
버스 기사님 입장에서는 정류장을 벗어난 것인데
승객의 입장에서는 아직 장류장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 대부분 표정이 좋지 않다. 마치 당연한 권리를 무시당한 듯한 반응이다.
아마도 우리 의식 저 안에 '인정스럽다'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정도면 융통성을 발휘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그 반대로 규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규정을 준수하는 사람보다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엄격한 사람보다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상대하기도 편하고 소통이 더 잘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당연히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은 어쩌면 규정을 준수하는 쪽일터이다. 융통성은 말 그대로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일 것인데 융통성을 발휘해서 수혜를 받는 쪽은 융통성을 발휘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수혜를 받는 쪽에서 당연하다는 듯 융통성을 요구하는 태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두에 이야기한 정류장 존을 벗어난 지점에서 승하차시 사고가 난다면 책임소재는 버스기사에게 있게 된다. 승객인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함'일 테지만 버스기사의 입장에서는 무거운 법적책임과 일자리를 위협받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버스 승하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이다.
융통성과 규정준수의 적절한 경계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규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공익을 추구한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규정만을 위한 규정 지키기가 되어버릴 수 있고 융통성을 너무 발휘한다면 불공정과 차별에 따른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융통성을 발휘하는 상대의 망설임과 고민을 인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적어도 상대가 나의 의사를 무시한다는 느낌은 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함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오늘은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웃으며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에 '여유'라는 밭을 더 넓혀보자.
넓어진 밭에 어떤 씨앗이 날아와 뿌리내리게 될지 기대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알록달록 예쁜 꽃들도 좋고 양식거리가 될 작물도 좋다. 생생히 숨 쉬는 생명력 가득한 마음의 밭을 일궈 마음 맞는 이들을 초대해 온정을 나눈다면 따스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삶 속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무더운 날씨로 숨이 턱턱 막히는 요즘입니다.
모두 건강관리 잘하셔서 무더위를 잘 넘기시면 좋겠어요.
제 브런치를 찾아주시는 글벗들님의 꾸준한 관심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평온한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