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름

by 한가람

퇴근길이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좀 전에 버스가 지나갔는지 타야 할 버스가 전광판에 없다.

이십여분을 기다린 뒤 도착한 버스에 올라 뻣뻣한 다리를 풀어주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승객이 다 탑승하고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한 사람이 급하게 버스에 오르다가 출입문 계단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저런!

한쪽 다리는 계단에 걸쳐있고 한쪽 다리는 바닥에 무릎 꿇은 자세가 되었다. 하필 운전석 주변에 둘러 있는 세로봉에 머리를 부딪혔고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버스는 출발을 해야 했고 이동 중인 버스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앞 좌석에 앉아계셨던 어르신은 꽤 놀라신 듯 연신 괜찮으냐고 물으셨고 손을 뻗어서 돕고자 하셨다.

기사님도 계속 괜찮으냐고 물으시고 병원 근처에 세울 수 있다고 하셨다.


잠깐동안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그 승객은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 비틀거리며 교통카드를 찍고 앞자리에 앉았다.

무사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안도했다.

조금만 일찍 넘어졌으면 현금수납정산기와 부딪혔을 텐데 그랬다면 큰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그 승객의 입장에서는 아픔보다 창피함이 더 컸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무사하니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다음 차 타면 돼요. 뭘 그렇게 서둘렀어요. 비 오는 날 이랬으면 크게 다칠 수 있어요."

기사님의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맞다. 다음 차를 타면 되는데 우리는 눈앞에 버스가 있으면 왜 달려가서 잡으려고 할까?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럴 때만 달려가서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눈앞에서 놓치는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것일까? 달려가서 올라타면 뭔가 뿌듯함이 있는 걸까? 반대로 놓치게 되면 박탈감을 느끼는 걸까?

꼭 그 순간에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서두르면 시야가 좁아지고 그 하나의 목적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나머지는 고려사항이 아니게 된다.

물론 때로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생명, 안전, 많은 것들이 걸려 있는 일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때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에서만 서두르냐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는 늘 서두르고 있고 그것이 기본이며 서두르지 않는 것은 꿈 뜨고 게으르고 열심히 애쓰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느리게 흘러가는 삶에서 빨리 흘러가는 삶으로 전환되면서 이를 혁신과 발전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부분은 발전되었겠으나 어떤 부분은 퇴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기다릴 수 있는 힘과 인내심 같은 덕목들을 보자. 과거에 비해 이 덕목들은 성장했을까, 축소되었을까?


대중교통의 도착 알림 시스템이 생겨난 후로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지 알 수 있으니 그동안 시간을 원하는 곳에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도로 상황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언제는 변수가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도착 예정시간보다 늦거나 빠르면 정확하지 않다고 시스템을 성능을 저평가한다.


식당에 가면 정말 빠르게 음식이 나온다. 거기에 익숙해져 있으니 10분이 넘어가면 그 식당은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곳이 된다.

빨리 나오는 것이 당연해졌으니까.


병도 빨리 나아야 하고(시간이 걸린다)

성적도 빨리 올라야 하고(시간이 걸린다)

취업도 빨리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린다)

경제적인 자유도 빨리 달성해야 하고 (시간이 걸린다)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 서두른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고

바늘허리에 실을 꿰어 쓰려고 하고

심어놓은 모가 안 자란다고 뽑아 올린다.


시간이 들어가는 일을

상황이 맞아져야 하는 일을

노력만으로 해내려고 한다.

그것이 불굴의 의지이고

용기 있는 행동이고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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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보면 시간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바쁘게 효율적으로 살면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결코 그들에게 여유는 찾아오지 않는다.

점점 메말라갈 뿐이다.

사람들이 바쁘게 살면서 생겨난 '시간적 여유'는 모두 시간도둑들이 가져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 옆에도 시간도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유를 두고 기다려야 할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빨리, 남보다 먼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스로를 옥죄고

관계를 망가뜨리고

누군가를 소진시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든

서두름에도 때가 있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현명함이

더 많이 깃들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아끼는 대상들을 껴안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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