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전철을 이용하다가 플랫폼 한편에 다 마신 음료컵 수거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 누군가의 고민이 들어갔구나!'
몇 년 전부터 카페가 늘고 테이크아웃 이용객이 늘면서 거리의 정류장 벤치나 지하철, 경전철의 벤치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테이크 아웃 컵을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어떤 때는 반 이상이나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때는 과일조각이나 버블 같은 것들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를 청소하고 있으시던 환경 미화원분이 내용물이 남아있는 음료컵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는 것을 목격했다. 그 한숨에서 곤란함과 성가심, 수고로움이 느껴졌다. '아하, 남아있는 음료가 처치곤란이겠구나.' 집에서도 재활용으로 분류하려면 컵의 내용물을 버리고 씻어서 두어야 한다. 밖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빈 컵이면 그냥 쓸어 담으면 될 텐데 내용물이 들어 있으면 그럴 수가 없다. 그 환경미화원 분은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려놓으시고 컵을 집어서 수레 한편에 쏟기지 않게 잘 담으셨다. 더위에 상한 음료수의 냄새를 맡으면서 어디까지 저 컵을 운반해서 치우시는 걸까....
더운 날 시원한 음료수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테다. 달달하고 시원한 목 넘김이 갈증과 노곤함을 풀어주고 정신도 들게 한다. 마시는 동안 더위도 살짝 잊게 되고 말이다. 그렇게 맛있게 마시다가 다 마시고 나면 그 가벼운 테이크 아웃 컵이 귀찮은 애물단지가 된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 다 마신 컵을 계속 들고 있자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고 왜 들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어디 버릴 곳이 없나 찾아봐도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이 사라진 지 오래다. 들고 다녀야 한다. 안심하고 버릴 수 있는 곳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집이거나 아는 사람의 집 혹은 가게를 갈 수 있을 때까지 컵을 버릴 곳이 없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불편해!"
거기다 얼마 전부터 버스나 경전철에서 뚜껑이 없는 음료(테이크 아웃 컵 같은)가 반입금지가 되었다.
카페는 늘어났고 날은 더워지고 테이크 아웃 컵에 시원한 음료수를 담아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시고 싶은 마음도 늘어날 것이다. 유혹에 등 떠밀려 음료수를 사들고 나온 순간 버릴 곳이 마땅하지 않다. 거리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어디다 버리지? 다 마셨다고 해도 아직 바닥에 남아있는 몇 방울이 있기에 가방 속에 넣었다간 대 참사가 일어날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고 들고 차에 탈 수도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기다리던 벤치에 두거나, 바닥에 두거나, 가로수 속에 찔러 넣어두거나 구석진 길거리 한쪽에 두거나......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소에 놓인 종량제 봉투사이로 심심찮게 목격된다. 특히 통행인구가 많은 시내에서는 더 하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에게 수고로움을 끼치는 순간이다.
들고 오지 말라고 해도 들고 오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벤치에 두지 말라고 해도 두는 사람은 있고 내용물이 있는 상태에서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 쓰레기통 전체를 씻거나 닦아내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끈적거리는 쓰레기통을 씻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 냄새는 또 어떻고....
청소하시는 분들의 건의가 올라갔을 수도 있고 민원도 들어갔을 것 같다(아마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을 거 같다). 더운 여름엔 반나절만 지나도 냄새가 나고 벌레들이 꼬일 수 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수고로움에 대해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민원으로 민원에 골치가 아팠을 수도 있다. 과연 그것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까?
벤치 여기저기 흩어져 놓여있다가 내용물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더 치우기 곤란할 테니 내용물이 쏟기지 않도록 플랫폼 한편에 가지런히 컵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겠지. 기왕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만들어진 수거함이다. 앉은자리에 두는 것보다 수거함이 설치된 곳까지 걸음을 옮겨서 두어야 하는 성가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치우는 사람의 성가심 보다야 덜 할 테니 여유를 가지고 열차가 들어올 거 같으면 일어나서 수거함에 음료컵을 잘 놓아두자. 기왕이면 내용물은 깨끗이 비우고 말이다.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해 주시는 분들은 많다. 더운 여름 불 앞에서 요리를 해주는 사람, 침침한 눈으로 바느질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옷을 수선해 주는 사람, 새벽녘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운행하는 사람(더 일찍 자신의 일터로 나와 사람들을 일터까지 데려다주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수리해 주는 사람, 집앞까지 물건을 배달해주는 사람, 매립장까지 쓰레기를 치워주는 사람 등등.
'그건 그들의 일이고 돈 받으려면 당연히 해야지.'라는 생각들이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분업이 세분화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달과 지구만큼이나 멀어져 버린 모양이다. 화폐로 환산해서 대가를 지불하기에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단지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서 그들의 수고로움까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괜찮은 태도인가? 내가 그 입장이 되어도 괜찮게 느껴질까? 자신이 땀흘려 한 일에 대해 그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사는 모습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물질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당연히 물질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과 가족을 곤란함에 놓이게 하지 않고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선의 물질은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존재해서는 삶 속에서 얻는 것이 빈약하지 않을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인정받고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때 잘 살아왔음을 느끼게 될 터이다. 자신의 노동이 단순히 화폐로 치환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면 존엄을 지키고 마음이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본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인간(人間)이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함께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