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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Jun 15. 2024

놔두면, 알아서 큰다

보석 금전수가 우리 집에 온 지 5년이 되었다. 

일반 금전수보다 크기도 작다. 

영어 이름도 Dwarf ZZ plant 란다.

해석하면 '키 작은 금전수' 

혹은 '난쟁이 금전수' 정도 될까?

그전에 금전수를 처음 키울 때 

물 주기를 실패해서 한 달 만에 보내버렸었다.  

'이번에는 물 주기 조절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잎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잎이 마른 듯하면 물을 주어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사나흘에 한 번씩 

잎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두 달 여가 지났는데도 시들지도 않고

싱싱하게 그 모습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와! 이 아이는 선인장이라고 생각하고 키워야겠는데?'

이따금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건조하다 

싶으면 분무기로 주변에 물을 뿌려주고

물 주기는 거의 두 달~세 달에 한 번씩으로 했다. 

짙은 초록빛을 자랑하며 반짝이는 잎들이 보기 좋았다.



한해를 그렇게 잘 보내고 두 해를 맞이하는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아직은 날이 그렇게 춥지는 않은 것 같아서 

베란다에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잎의 상태가 이상했다. 

특히 그중 한 화분은 잎이 얼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냉해를 입은 것이었다. 



그날부터 저녁마다 거실로 들이고 

낮에는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베란다에 내놓았다. 

아직은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방심했던 것에 

반성하며 상태를 계속 살폈다. 

화분 두 개는 줄기 하나씩 잃고 멀쩡해졌지만 

유독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화분은 회생불가! 



그대로 두면 썩을 테니 줄기를 걷어내고 

화분을 엎어서 뿌리를 꺼냈다. 

치우려고 했는데 막상 보니 

뿌리는 아직 살아있었다. 

(감자처럼 생긴 뿌리는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었고 싱싱했다!)

'이 정도면 다시 싹이 날 수 있겠는데?'



치우는 건 취소다! 다시 잘 심어주고 

떨어진 세 개도 함께 꽂아두었다. 

낮엔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저녁에는 따뜻한 실내에

그렇게 그해 겨울을 넘겼다. 



봄이 되자 새로 싹이 올라왔고 꽂아둔 잎도 

뿌리를 내렸는지 줄기가 올라왔다.  

화분에 비해 작은 싹이 휑해 보였지만 

다시 살아나 잎을 뻗어내는 모습이 반갑고 고마웠다. 

그로부터 3년. 워낙 성장이 느린 아이라 

같이 데리고 왔던 다른 화분만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쑥쑥 자라고 있다. 

  ( 다시 살아난 보석 금전수.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키가 5~10cm 정도다.)

(같이 왔던 다른 보석 금전수. 더 무성했는데 봄을 지나면서 오래된 줄기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곧 다시 새촉이 올라와서 빈자리를 메우겠지. 이 아이는 10~25cm 정도 된다.)




내가 해준 것은 바람을 쐬라고 창문을 열어주고 

온도를 맞춰준 것 밖에 없다. 

어쩌다가 한 번씩 잎을 닦아주는 것 정도, 

잊고 있다가 생각나면 물 주기 정도.

있는 듯 없는 듯한 나의 돌봄을 받으며 

이 아이 스스로 뿌리에서 새로 싹을 내어 흙을 뚫고 올라와 

잎을 내고 햇빛을 받으며 양분을 공급받고 

그걸로 다시 줄기를 키우고 잎을 내었다. 

이 아이에게는 자신을 되살려낼 힘이 있었고 그렇게 해내었다.


어쩌면 그 정도가 딱 필요한 정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생명력에 맡기지 않고 비료를 주네, 

비닐을 씌워주네, 분갈이를 해주네 하고 덤볐다면

약해진 개체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어서 

회생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방치와 지난친 관심 그 사이 적절한 거리가 도움이 되었다.




때때로 어떤 일에 지나치게 힘을 쏟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절실하거나 중요하거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거나 하는 일 말이다.

'반드시!' 

'꼭!' 

'해내야만 해!'

라는 생각은 양날의 검과 같다. 

모든 에너지를 모아 뭔가를 이루게 해주는 마법의 언어이기도 하고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지게 되는 고통의 언어이기도 하다.

마법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지 

고통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지

명료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할 바를 다 했다면 나머지는 놓아주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무위이화( 無爲而化):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노자 [도덕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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