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침이 환해졌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들

by 한가람

귀가 얼얼하게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출근하는 아침 길에도 즐거움이 있다.

시가를 벗어나면 넓게 펼쳐진 농지가 나오고 버스가 고가로 아래를 지날 때 좌측 창가로 떠오르는 해를 본다.

넓은 경작지 너머 차곡차곡 펼쳐진 산들 틈으로 손톱만큼의 빛무리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백색으로 이글거리는 숯처럼 환한 빛을 뿜어내다 이윽고 동글동글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날은 잘 익은 사과 같은 빨간 빛을 뿌리며 새해 일출 사진 못지않은 자태를 보여줄 때도 있다.

그 모습이 담아두고 싶어서 사진도 찍어보지만

아쉽게도 사진 속에는 눈으로 본 감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가까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장면이 사진 속에서는 그냥 평범한 느낌이다. 아쉽다.

곧 해가 떠오를 것이라고 예고하는 빛무리가 지평선에 가득하다


잠시동안 자연이 펼쳐내는 풍광을 누리고 좋은 느낌들이 마음속을 채운다. 눈이 있어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버스를 타고 이 근처에 오면 습관적으로 창밖을 본다. 입춘이 지났다고 어느새 해가 일찍 떠오른다. 경작지를 지날 때는 벌써 산 위로 떠올라서 환하게 빛을 뿌리고 있다. 변함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같은 시간에 차를 타고 있건만 마치 난 벌써 내 일을 시작했는데 너는 이제 움직이냐고 말하는 듯하다.

산 위로 해가 막 떠올랐다

일주일 전만 해도 차 타고 가면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이렇게 떠오른 해만 볼 수 있다. 춥다 춥다 하면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지고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언제나 그렇듯 자연은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렇게 움직여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것을 기본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내가 알아차리든지 아니든지 상관 않고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만물들이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고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살아간다.

어제 아침 일출 모습 벌써 산위로 해가 떠올라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세히 보지 않고 눈치채지 못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아! 이분들이 이런 일을 해주고 있으셨구나! 그래서 삶 속에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구나.'라고 깨우치게 되는 순간에 보이는 분들 말이다.


반복되는 것은 지루하고 당연한 일이라 지각하게 된다. 아무 노력 없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는 착각을 가져온다. 눈에 띄는 화려하고 대단하고 근사한 무언가가 더 가치롭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하지 않다. 투박하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귀찮기도 하다. 비싼 영양제 보다. 식후 10분 걷기가 더 낫다. 향신료가 들어가고 여러 조리법을 거친 일품요리보다 단순하게 조리한 소박한 음식이 몸에는 더 좋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유전자 지도를 해독하고 더 좋은 치료법을 개발하고 모두 근사한 일이며 가치로운 일이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풍요로운 땅을 지키는 일도 가치로운 일이다.


깨끗한 거리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유지된다. 내 집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지 않고 청결히 유지되는 것은 매번 그것을 수거해 가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상수도 체계가 만들어져 있고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도시가스 설비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전기만 꽂으면 세탁도 조리도 문화생활도 신체를 청결히 하고 외모를 가꾸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내가 알아차리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해내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느끼든 아니든 계절이 바뀌고 자연이 자기 일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가끔은 나의 애씀에서 벗어나 타자에게로 주의를 돌려봤으면 좋겠다. 나 혼자서 나만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좀 외롭지 않은가? 내가 누리는 것들에 나의 노력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때로는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고마움이 가슴에서 피어오르면 좋겠다.

행복이 성큼 다가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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