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승객이 더 많고 금요일은 적으며 토요일은 승객이 확 준다는 것, 어떤 기사님은 차를 천천히 몰고 어떤 기사님은 빨리 몬다는 것(아침 출근길 환승하는 내게는 바로 탈 수 있느냐 정류장에서 십여분을 기다려야 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거리에 붙은 현수막을 통해 이 동네에 어떤 행사가 있고 어떤 이슈가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중에서 늘 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사람이 올라타고
내린다는 사실은 피곤함을 호소하는 몸에게 유용한 정보다. 반복되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읽어내어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거의 자동적으로 '아, 저 사람 잠시 뒤에 내리지'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몸은 이미 그 사람 앞에 가 있다. 두어 정거장 뒤에 그 사람이 내리면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편히 간다.
재밌는 점은 내게도 같은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내가 내려야 하는 바로 앞 정류장에서 타시는 분이 있으신데 항상 내 근처로 오신다. 내가 내리면 그 자리에 앉는다. 서로 눈인사조차 나눠본 적 없지만 암묵적인 룰이 우리 사이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느슨한 그 룰은 잘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눈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늘 같은 시각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누가 매번 버스를 이용하는지 누가 일회성 승객인지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고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앉아서 갈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몇 번의 관찰로 패턴을 찾아내고 가설(저 사람도 출근하나 보다. 그러니 여기서 내릴 수밖에 없어)을 세우고 가설이 참이 되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이 또한 하나의 자동화 패턴이 되어서 안정화가 된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이렇게 자동화시켜놓고 있다.
상황을 파악하고 '이럴 땐 이렇게'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는데 눈치는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의 이익을 증대시키기도 하고 관계를 유연하게 하기도 하고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좌석버스에서 안쪽에 앉아있다가 내리려고 가방을 챙기면 통로 쪽 사람은 말하기도 전에 내가 내리기 편하도록 몸을 돌려주거나 아예 일어나주기도 한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인 셈이다.
이 '눈치'라는 것도 재능의 영역에 가까워 보인다.
무슨 말이냐면 눈치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둔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그래서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라고 핀잔주기 쉽다.
맞다. 말로 해야 알지 어떻게 알겠는가? 상대가 무슨 의도로 무엇을 원하는지 넘겨짚는 것은 상황에 따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는 서로를 탓하게 되기도 한다. 그냥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로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면 된다.
애매하게 에둘러서 이야기하고는 상대가 눈치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말이다. 대개 그런 경우는 자신이 난감한 상황일 때인 것 같다.
상대가 눈치껏 상황을 읽어내고 그에 맞게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게 안되면 본인이 불리해지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앞서 말했듯 눈치도 재능의 영역에 가깝다. 그러니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잘 안된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같은 노력을 들여도 재능이 있는 사람은 더 빨리 더 많은 성취를 이룬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성취가 더디다. 어떤 경우는 정말 안되기도 하고 말이다.
상대는 당신을 곤란하게 할 의도가 없다. 다만 '눈치'라는 영역에 재능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 상대에게 눈치를 잘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거나 눈치가 없음을 인정해 보자. 눈치가 없는 그도 세상살이가 편하지는 않다. 어쩌면 눈치가 좋은 이가 옆에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많이 가진 쪽이 덜 가진 쪽을 도울 수 있다. 덜 가진 쪽이 많이 가진 쪽을 돕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