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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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해당 제목은 아직은 가제목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구구가 눈을 떴을 땐 정오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정오. 일요일의 정오는 구구의 25년 인생에 늘 특별함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도 무탈히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다가 해가 질 때쯤 저녁을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여 보는 것, 그것이 구구가 보내는 일요일의 전부였다. 일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일주일을 버티게 만드는 충전방식이었다. 그런 그의 무해한 일요일에 균열이 발생했다. 점심을 먹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볼만한 영상을 찾기 위해 앱을 켰는데 첫 영상 시작해 끝없이 내려도 온통 '외계인 침공'과 관련된 영상만 노출되었다. 외계인 침공이라니. 구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10월의 하늘이었다. 외계인 침공에 의한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적막했다. 구구는 영상 중 하나를 터치해 재생했다.


"우리는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 수많은 상상을 해왔습니다. 무자비한 에이리언, 자연친화적인 나비족, 혹은 자신만의 환경에 적응한 채 살고 있는 인지능력이 낮은 생명체까지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의 차원에서 관측가능한 것에 머물렀습니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침범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영역이었으니까요.

오늘 인류는 우리보다 뛰어난 문명을 가졌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침입으로 당장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예요……."


영상은 고차원적인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삼차원의 존재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모델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삼차원의 존재인 인간이 늘 인지하는 이차원, 수학적으로 이해가능한 삼차원을 넘어서자 더 이상 구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주려 해도 자신이 존재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차원을 이해하기란 일반인의 영역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구구는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생각했다. 고차원의 외계인 침공. 고차원, 외계인, 침공으로 단어들을 하나씩 뜯어보아도 구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와닿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책을 하고 싶어서였다기보다 스마트폰 속 세상이 온통 외계인 침공만 다뤄 볼만한 게 없어서였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그가 밖으로 나가도록 한몫했다.

바깥은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온갖 미디어에서 외계인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세계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과일을 파는 사람, 길을 걷는 사람, 구매한 물건을 차에 싣고 있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까지 모두 지난 일요일들과 다를 게 없었다. 구구는 자주 들르는 반찬가게에 들어갔다. 그는 늘 먹던 반찬만 샀다. 깻잎장아찌, 미역줄기 볶음, 모둠생선 구이. 단 한 번도 다른 반찬을 고른 적도 없었고 다른 반찬을 살지 고민한 적도 없었다. 그는 늘 먹던 맛이 제공하는 안정감을 좋아했다.

계산대에 반찬을 올려놓으니 주인이 봉투에 담으며 말했다.


"외계인이 온 건지, 외계인이 왔다고 우릴 속이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반찬가게 주인의 시선이 입구 옆 모서리 천장에서 내려오는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속보라는 붉은 글자가 화면 우측 상단에 크게 박혀 있었다. 화면에서는 이 시간에는 하지 않을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 아나운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외계인이 우리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스트로 초대된 유명 대학의 우주생물학과 교수는 지구와 인류가 겪을 피해에 대해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반찬을 사고 있는 지금, 우주생물학과 교수의 말은 아주 멀리 떨어진 별에 속한 또 다른 행성이 겪고 있는 이야기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 아닌가요."


외계인이 침공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외계인이 침공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구구는 그렇게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는 반찬이 든 봉투를 들고 조금 떨어진 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공원의 사람들에게서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는 반찬가게 주인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미디어의 소란은 전 지구적 서프라이즈였던 게 아닐까. 구구는 의심해 보지만 이내 그 의심을 접는다. 어느 한순간을 노려 전 세계 사람들을 동시에 속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이득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구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외계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디어는 모두 하나같이 외계 생명체가 아닌 외계인이라고 언급했다. 그들은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인간과 같은 지적 활동을 한다는 의미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어떤 유의미한 형태로 나타난 게 아니다 보니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인류는 단지 그들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조금 피곤한 일요일이 되어버렸다. 사지 않아도 될 반찬을 미리 샀고, 하지 않아도 될 공원 산책을 했다. 이 조금의 뒤틀림이 나의 일주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일주일을 버틸 만큼 충분히 휴식하지는 못했다는 것이었다.

저녁밥을 챙겨 먹고 오늘 보기 위해 PC에 다운로드해 둔 영화를 재생했다. 분명 저번 주에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상당히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도저히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영화 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소리를 내는 모든 것들이 정지하면서 침묵이 찾아왔다. 구구는 이미 어두워진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연이겠지만 보름달이 창문 한가운데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을 뚫어져 쳐다보는 눈동자처럼. 달은 동남아의 푸른 바다에 담긴 것처럼 새파랬다. 하얀 달, 노란 달, 붉은 달도 봤지만 파란 달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구구는 달이 분명하게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한 발짝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달빛이 미묘하게 자신을 따라왔고, 그 순간 느낌은 약간의 확신으로 변했다.

구구는 놀라 커튼을 쳤다. 암막 커튼은 구구를 향하던 달이라는 눈동자를 완전히 가려주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가 내뿜던 어떤 기시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시야를 가린 것에 분노한 어떤 존재가 쾅-하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구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커튼이 갑자기 젖힌다든지, 쾅- 소리가 난다지, 미지의 존재가 말을 걸어온다든지 하는 초자연적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구구는 온몸으로 체감했다.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했다는 것을. 그것이 하루종일 언급되었던 외계인의 침공에 의해선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이전에 쓰던 글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쓰자고 마음 먹은 건 이 소설인데, 어쩌다 앞에 쓴 글들을 연재하게 되어버려서요.


5월까지 초고 완성을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오타 검사와 문장 확인 후 업로드 하고 있으나 초고인 만큼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주전쟁같은 소설은 아닙니다. 그저 지금을 쓰고 싶었어요. 시민의 안전을 위해 CCTV가 늘어난다고 뉴스에서 언급되었을 때, 사람들은 치안과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치열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감시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지요. '이런 곳까지 우리를 감시하겠다고?'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이런 곳에도 우리를 보는 눈이 있어서 다행이야'로 바뀌었습니다. 커다란 충격이 일상으로 자리잡는 게 세기를 걸치거나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런 얘기를 좀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감시로부터 벗어났을 때 찾아오는 두려움은 무엇일까. 온전하고 안전한 고독은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지금 쓰는 글이 그것에 대한 답으로 갈지, 회의주의의 굴레로 빠져들지는 끝에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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