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2

by 안온

구구는 오전 5시 50분에 정확히 눈을 떴다. 그는 늘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눈이 떠졌다.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 날-주말 또는 공휴일-에는 무작위 시간에 눈을 뜨는데 반해 알람 시간을 정해놓은 날은 늘 10분 일찍 눈이 떠졌다. 그것이 출근을 위한 알람이든 오전 약속을 위한 알람이든 변함없었다. 알람이 울려 잠에 깨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늦잠에 대한 대비로 맞춰놓는 것도 아니었다. 특정 시간에 알람을 맞춰두면 구구의 신체는 알람 울리기 10분 전 기상으로 동시에 맞춰졌다.

구구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나의 상태를 의식하고 있다', 10분 뒤 알람이 울리겠지'와 같은 별 의미 없는 생각들이었다. 구구는 이 생각을 하기 위해 10분 일찍 눈이 떠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답을 찾진 못했다. 알람은 늘 그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서 10분 늦게 울렸다.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의 해제 버튼을 밀었다. 전기 포트에 데운 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로 가 머리를 감고 양치를 했다. 면도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면 출근 준비는 끝이었다.

구구는 작은 물류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도매로 받아 온 대량의 공산 식품들을 주문받은 만큼 소분하여 소매업체에 납품하는 곳이었다. 구구는 이곳에서 발주를 확인하고 주문 내역서를 뽑아 물류 창고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전날 들어온 주문을 출력해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업무지만, 실제로는 실시간으로 취소되고 추가되는 사항을 물류차량에 싣기 전에 전달하고 먼 곳에 납품하는 물건이 안쪽에 실릴 수 있도록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까지 초보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 번 꼬이면 납품 시간이 도미노처럼 밀려나는지라, 구구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 진득하게 맡아서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반면 구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적성에 너무나도 잘 맞았다. 남들은 어려워하는, 실시간으로 일의 순서를 끼워 넣는 작업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물류 창고 직원들은 그를 신뢰했고 건네는 주문서에 적힌 것이 당장 불편을 초래할지라도 묵묵히 작업했다.

문제의 시작은 점심시간 직후 걸려 온 전화였다. 가장 먼 거래처를 돌아야 하기에 가장 먼저 출발하는 물류 기사 누누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구구 씨, 중간에 들리는 A마트 알지? 거기서 오늘 아침 일찍 추가한 물건이 있다는데 누락이 되었다고 하네. 구구 씨에게 잔소리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야. 지금까지 이런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잖아. 그래서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되어서 전화한 거였어. A마트 직원도 당장 오늘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가 내일 일찍 가져다주는 걸로 잘 해결되었기도 했고."

"어제 푹 쉬지 못해 피곤해서 실수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어이, 사과받으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고. 아무튼 별일 없는 거라면 다행이네. 구구 씨도 사람이니 충분히 실수할 수 있다고 봐. 지금까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던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전화를 끊고 구구는 생각했다. 분명 몸의 피로가 완전히 풀린 상태가 아니었지만 실수를 할 만큼 일할 때 집중하지 못했다고도 여겨지지 않았다. 어디서 누락된 것일까. 아침에 추가된 주문을 확인했고, 주문서를 빠짐없이 출력해서 빠짐없이 현장에 나눠주었다. 물건이 실리지 않았다는 건 구구의 작업 과정 중 어딘가에 구멍이 났다는 증거였다. 구구는 출근 이후 자신이 일을 처리했던 과정을 복기했다. 가방과 외투를 사물함에 넣고, 컴퓨터를 켜고, 사내 물류 관리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주문을 확인하고, 월요일 퇴근 이후 추가로 들어오고 빠진 주문을 확인하고, 확인한 모든 주문을 출력하고, 물건이 첨삭된 주문서를 물류 창고 직원들에게 전달하며 한 번 더 직접 물건을 챙겼다. 누락된 부분은 없었다.

다행히 추가로 발견된 실수는 없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또 전화가 걸려오진 않을까 전전긍긍했지만 구구가 걱정하는 전화가 더 걸려오지 않았다. 물류 기사 누누 씨의 말대로, 우연히 실수가 일어난 것이었을 테다.

이 실수 말고도 구구가 신경 쓰이는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누구도 어제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니 외계인의 침공이, 마치 창문을 통해 난입한 파리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본 사람만 신경쓰게 되는 하찮은 일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 아닌가요.


반찬가게 주인의 말이 구구의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처럼 떠올랐다. 모두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구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근무를 시작하기 전 휴게실이나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 한담으로 나올 법한 이야기임에도 아무도 어제의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모두들 아무 일 없듯이 지내는 것일까.

구구는 퇴근하는 직원들 중 한 명을 붙잡아 어제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외계인이 침공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든지 '정말 외계인이 침공하긴 한 걸까요'라든지 '그들의 침공 이후 달라진 게 있으세요'라든지.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못했다. 퇴근 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더 우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서였다.

구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찬가게에 들를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그 주인은 자신과 외계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주리라 여겼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어떤 일이 흘러가고 있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반찬가게가 있었던 자리에 조명가게가 영업하고 있었다. 구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까지 멀쩡히 존재했던 반찬가게가 하루아침에 조명가게로 바뀔 수 있는 일인가.

구구는 반찬가게 바로 옆에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있던 반찬가게는 이전했습니까?"


과일가게 주인은 구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처음부터 틀린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요?"


과일가게 주인이 되물었다.


"어제까지 옆에 반찬가게가 있지 않았습니까."


과일가게 주인은 여전히 구구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저 집이 조명을 판지 벌써 십 년이 넘었어요. 대체 무슨 반찬가게를 말하는 거요? 여기 반찬 가게라고는 시장 입구에 있는 곳 한 곳밖에 없어. 어디 멀리 놀러 갔다 왔어요? 거기서 자주 가던 가게랑 헷갈린 거요?"


구구는 자신이 분명 어제 깻잎장아찌, 미역줄기 볶음, 모둠생선 구이를 사갔었다고, 지금도 그 반찬들이 냉장고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말했다.


"글쎄, 반찬가게는 여기 있었던 적이 없었다니까 그러네."


과일가게 주인의 목소리에 점차 짜증이 묻어났다. 구구는 더 캐묻는 걸 그만두고 가게를 나왔다. 바로 옆 조명가게는 눈이 피로할 만큼 알록달록한 전등들을 전면 유리 가득 진열해 놓았다. 어떤 것은 LED광고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이기까지 했다. 구구는 그 앞에 서서 가게 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부 공간을 어림잡아 봐도 이전에 있었던 반찬가게와 비슷했다. 가게 안쪽 책상에 앉아 서류 업무를 보던 가게 주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얇은 컬로 볶듯이 펌을 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주인은 금세 시선을 거두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구구는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깜빡이는 전등을 쳐다보았다. 깜빡깜빡깜빡, 깜빡, 깜빡. 전등이 시선처럼 다가왔다. 눈꺼풀이 덮일 때마다 사라지는 눈동자처럼, 전등의 깜빡임이 마치 눈을 깜빡이는 것 같았다.

구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반찬가게는 하루 만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TV 프로그램 속 세트장을 갈아 끼우듯 완벽하게 조명가게로 대체되었다. 돌아가는 그의 등을 깜빡이는 조명이 살아있는 시선처럼 그를 지긋이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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