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3

by 안온

구구는 샤워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구구가 어제 반찬가게에서 구매했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반찬가게가 존재한 적이 없었더라면, 구구는 이것들을 어떻게 구매해 올 수 있었던 것일까.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는 반찬가게의 상호가 붙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그 스티커를 보고 있으면 하루 만에 조명가게로 바뀐 것이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찬가게는 분명히 조명가게로 교체되었다. 완벽하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구구는 늘 수온을 섭씨 40도에 맞췄다. 계절에 상관없이 그 온도를 선호했다.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의 물에 몸을 완전히 담글 때의 기분은 애인과의 섹스에서 느낄 수 있는 오르가슴 못지않았다. 구구는 눈을 감고 얼굴까지 완전히 욕조에 담갔다. 물속의 정적은 공기 중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조금 더 묵직하고 밀도 있는 정적. 집안에 떠도는 백색 소음은 뚫을 수 없는 정적. 구구는 그 정적이 마음에 들었다.

물의 온도가 체온과 같아지면 목욕을 마무리했다. 섭씨 40도에서 체온까지 물의 온도가 내려오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도, 구스 점퍼를 껴 입어도 이가 딱딱 붙이지는 겨울에도 구구가 사는 집의 화장실은 그 나름대로의 향상성을 유지했다.

하반신에 목욕 가운을 두르고 나오는데 현관문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목욕 끝났나 보네."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단발의 여성이 구구의 집으로 들어왔다.


"루루."


구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루루라 불린 여성은 검은 부츠를 벗고 구구에게 다가가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구구의 쇄골에 코를 파묻었다.


"좋은 냄새."

"몸에 물기가 남아 있어서 옷이 젖을지도 몰라."

"어차피 벗을 거야."


옷이 젖는다는 걱정에 어차피 벗는다는 대답이 맞는지 루루의 대답을 구구는 일년 남짓한 연애기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구구에게서 몸을 뗀 루루가 옷을 벗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평일이면 늘 이 시간에 구구를 찾아왔고 구구가 사용했던 목욕물을 사용해 목욕했다. 구구는 물을 비우고 다시 채워 써도 된다고 했지만 루루는 "자기가 쓰고 난 물의 온도가 딱 좋아."라고 말했다. 아마도, 물의 온도보다 욕조의 물을 비우고 다시 채우기까지 시간을 쓰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른다고 구구는 생각했다.

루루는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욕실을 나왔다. 그녀는 구구의 집에서 목욕을 한 이래 늘 머리가 젖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말리는 시간이 아까워."


루루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실은 조금이라도 구구와 함께 있기 위해 시간을 아끼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상태로 주방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어 보리차를 꺼내 마셨다. 자기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그녀였는지라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한 손은 허리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보리차를 병째들이마신다. 보리차가 넘어가는 목젖의 움직임이 관능적이다. 그러나 구구의 몸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생리가 찾아오는 날을 제외하면 그의 집에 찾아오는 매일, 그녀는 옷을 입고 생활하지 않았다. 나체로 텔레비전을 보고, 나체로 책을 읽고, 나체로 침대에 들어갔다.

섹스는 오롯이 그녀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졌다. 연애 초기 그녀의 나체를 보고 달아오른 구구가 그녀의 안쪽을 만지려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내가 원할 때만 들어와 줘."


루루는 구구의 시선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겼다간 다시는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강했다. 구구는 루루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생리혈이 나올 시기를 제외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늘 관계를 맺었다. 구구는 점차 그 루틴에 익숙해졌다. 적어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그녀를 마음껏 탐할 수 있다,라는 게 절대 그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구구는 성욕 해소를 위해 루루를 만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섹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사귀는 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일주일에 두 번이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타협안이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구구는 루루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날이었다. 루루는 평소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침대로 들어갔고, 구구도 따라 침대로 들어갔다. 평일 밤 10시는 침대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섹스를 하든 그렇지 않든 둘이 침대에 함께 있는 시간은 새벽 1시까지였다. 새벽 1시가 되면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벗어놓은 역순으로 옷을 입고 구구의 집을 나갔다.


"매일 새벽에 돌아가면 피곤할 텐데, 자고 가는 건 어때?"

"내일 출근하려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옷을 가져와도 돼. 옷장에 자리가 충분하거든. 월요일에 와서 금요일에 돌아갈 때까지 입을 옷을 넣을 정도의 공간은 있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루루는 옷을 갈아입는 행위를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중요한 의식이 있어. 나는 내 집에서 잠을 자고 내 집에서 어제의 옷을 정리하고 오늘의 옷을 입고 싶어. 그게 내가 하루를 여는 의식이야. 우리가 결혼한다면 당신의 집이 곧 내 집이겠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집이 있으니까. 그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하루가 온통 꼬여 엉망이 되는 기분이 들거든."


그러고 보면 구구는 루루의 의식이 어긋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함께 외박을 한 적도 없었고, 늦은 시간까지 유흥을 즐긴 적도 없었다. 밖에서 데이트를 할 때에도 그녀는 밤 10시에 구구의 집에 함께 돌아갈 수 있게 일정을 준비해 왔다.

차렵이불을 열어 몸을 넣고 턱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당겼다. 루루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안겨온다. 루루의 체온은 구구보다 아주 조금 더 따듯하다. 구구는 그 약간의 체온 차이에 긴장이 풀린다.

서로를 껴안은 손이 상대방의 등을 조심스레 감싸는 것. 이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일 밤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킨십의 전부였다. 그렇게 딱 붙어 세 시간 동안 체온을 주고받는 것이 이제는 구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때, 가만히 껴안고 있던 루루의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구구의 날개뼈 위에 올려둔 손이 척추를 타고 조금씩 내려와 어느덧 꼬리뼈 바로 위 허리에 다다랐다. 루루가 잠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내려간 것일지도 모른다, 고 구구는 생각했다. 감은 눈을 살짝 떠보니 루루가 전혀 졸린 기운이 없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구는 감히 그녀의 몸을 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해진 날 외에 그녀의 예민한 부위에 손대는 것은 약속되지 않은 것이었기에.

루루의 손은 다시 천천히 내려가 구구의 엉덩이를 거쳐 앞쪽으로 부드럽게 돌아들어 왔다. 구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당황해 루루의 적극적인 애무에도 몸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참다못한 루루가 결국 몸을 일으켜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계속되는 자극에 구구의 성기가 딱딱해지고, 루루는 전희 없이 곧바로 자기 속으로 집어넣었다. 루루가 움직이는 와중에도 구구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어쩌다 시선이 향한 창문으로 푸른 보름달이 보였다. 정확히 창문 중앙에 걸려있다. 어제와 똑같이 그 달은 구구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달이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 생각이 들자 구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루루가 구구의 상태 변화를 알아차리고 다시 자기 자리에 누웠다.

새벽 1시가 되자 그녀는 평소처럼 벗어놓은 옷을 역순으로 입고 구구의 집을 나섰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지켜본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멀어져 가는 그녀,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구구. 높이 뜬 푸른 보름달은 그 둘을 동시에 응시하는 듯했다. 구구는 그 시선을 참을 수 없어 커튼을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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