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 단편

1. 할머니의 장례식

by 안온

작은 아버지로부터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장례지도사가 작은 아버지의 전화기에 등록된 연락처로 일괄 연락을 돌렸는지 문자에는 필요한 정보들만 담겨 있었다. 시립장례식장 203호, 삼일장, 고인의 이름과 고인의 명복을 빌어달라는 짧은 문구.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고인이 떠나는 길을 알려주는 문자를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메마르게 보낼 일인가 살짝 불만이 일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 할머니를 병실에서 뵈었다. 작은 아버지로부터는 10년 만에 받은 연락이었다. 연락처는 갖고 있었지만 성인이 된 뒤로 연락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전화가 온 순간 좋은 소식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잘 지내지? 다름 아니라 할머니가 많이 위독해. 정신이 들 때면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셔. 할머니가 너 어렸을 때 많이 애지중지했잖아. 많이 그리우신가 봐. 염치없다는 거 잘 알지만 할머니를 위해 한 번 와줄 수 있어?"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전화기 너머로 작은 아버지가 양손으로 전화기를 붙잡은 채 허리를 연신 굽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당연히 가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 갔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왔었지만, 아버지 쪽 형제 어른들과 어머니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나빴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나와 엄마만 남았을 때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우리 가족과 연을 끊으려 했다는 얘기를 성인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거기서 혈연이 단절되지 않게 보듬어주신 분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자기 자식과 며느리 사이에서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할머니 부럽지 않게 나를 아껴주셨다. 분쟁의 불똥이 튀어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신 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머니가 그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아버지의 친가를 향해 내보인 증오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도 몰랐었다. 그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표출하는 건가 혼자 짐작할 뿐이었다.

할머니를 마지막에 뵌 것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중학교를 올라간 뒤로는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 만난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그저 늙어서 할머니라고만 생각했다. 할머니는 이미 늙은 사람이니 더는 늙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기억 속 모습보다 더 늙은 채 병실에 누워 계셨다. 15년이 아니라 30년은 더 늙었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할머니는 작게 쪼그라져 있었다.

대장암으로 시작한 병이 이제는 온몸에 다 퍼진 상태라고 작은 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 초점을 잃은 할머니의 눈이 천천히 내쪽으로 움직였다.


"우리 손주 왔나?"


있는 힘을 다했을 할머니의 목소리가 내 귀에 겨우 닿았다. 나는 뼈에 살가죽만 붙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앙상해진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네, 저 왔어요."

"아이고, 우리 영민이 어른 다 됐네."


할머니가 다른 한 손을 맞잡은 내 손 위에 얹혔다. 마른 나뭇가지에 달린 한 장의 낙엽이 손 등위에 덮이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의 손에서 생의 따스함보다 떠나갈 이의 메마름만 느껴졌다.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러지며 내 손가락 사이로 생의 남은 것들이 모두 새어나갈 것 같았다.

할머니는 다른 말 없이 묵묵히 내 손등 위에 얹었다. 할머니의 손이 너무 작았다. 행여나 놓을세라 어린 내 주먹을 소중한 보물처럼 감싸 쥐고 시장을 누볐던 할머니의 손이, 어른이 된 나에게 반대로 너무 작고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죽음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어서 나으라는 평범한 인사조차도 민폐가 될 것 같았다. 그때 할머니가 내 손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으로 내 손등을 천천히 몇 번 쓸었다.

네 마음 다 알아, 그래도 이 할미를 보러 와줘서 고마워. 할머니의 손길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를 지켜준 건 할머니였는데 왜 할머니가 고마워해. 목 끝까지 차오른 슬픔마저 밖으로 나올까 봐 그 말을 마른침과 함께 삼켜 넘겼다. 대신 할머니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삼일장 중 둘째 날 저녁의 장례식장은 문상객들로 붐볐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할머니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왔던 친척들이 많았다.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카인 내게 용돈을 주겠다고 부를 때가 아니면 마주할 일도 없었던 어른들이었다. 그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들이 제삿날 봤던 친척들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들을 눈치 보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접객실에 앉아 술과 음식을 먹던 사람들은 젊은 조문객의 등장에 약속이나 한 듯 쳐다봤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그중 한 명이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술을 꽤나 많이 드셨는지 얼굴이 불콰한 70대 정도의 남성이 내 앞으로 성큼 걸어왔다. 나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갑작스러운 난리에 유족들이 확인차 빈소에서 나왔다.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어느덧 대학생이 된 사촌 동생, 큰 어머니와 사촌 누나까지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자 괜히 반가웠다. 작은 아버지가 내가 덤벼들 것 같은 할아버지를 막아섰다. 그러는 동안 작은 어머니가 내 팔을 잡아 빈소로 이끌었다.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 하셨는데, 잘 왔어. 들어가서 인사드리자."


양팔 넓이의 세 배 정도 길이의 제단의 중앙에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건강하셨을 때의 모습이었다.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긴장하신 건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긴장하신 건지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밀려오는 할머니의 기억을 꾹 누르며 재배(再拜)했다. 그리고 유족들을 마주 보며 맞절했다.


"와줘서 고마워."


작은 어머니가 내 어깨를 쓸어내렸다.

바깥의 상황은 정리되었는지 소란이 멎고 적당한 높이의 대화소리만 오갔다. 작은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접객식 구석 조문객이 적은 쪽으로 데려갔다. 조금 전 소리치던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상조회사에서 보낸 주방 도우미 아주머니가 내가 앉은자리로 와서 식사가 필요한지 물었다.


"먹고 와서 괜찮습니다. 간단하게 마실 것만 부탁드릴게요."


발소리 없이 뒷걸음질로 몇 걸음 물러선 뒤에 재빠르게 음식을 가져와 세팅하는 솜씨에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배운 티가 났다. 테이블 위로 소주와 맥주, 생수와 식혜 캔이 올라오고 같이 곁들일 수 있는 수육과 마른안주, 과일 일체가 놓였다. 목이 말랐던 나는 맥주병부터 땄다.


"한 잔 드려요?"


작은 아버지가 말없이 종이컵 두 개를 꺼내 하나는 내 앞에 두고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작은 아버지가 자신의 잔을 받고 병을 건네받은 뒤 내 잔을 채워주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시는 술은 평소에 마시던 술과 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분명 같은 술인데 쓴맛이 더 무거웠다. 술 안에 죽음의 슬픔이 섞여있는 것만 같았다. 남겨서는 안 될 쓴맛이었다. 나는 잔을 단숨에 비웠다.


"조금 전 화냈던 분, 누군지 알아보겠어?"

"전혀 모르겠네요. 저를 알아보시는 걸 보면 친척 분이신 것 같지만요."

"할머니의 남동생 분이셔. 네겐 외종조부가 되겠구나."


그렇게 말해주셨지만 기억이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단순히 네가 어느 순간 발길을 끊어서 싫어하시는 건 아니란다. 여러 사정이 있었어."

"어머니에게 사정은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가 쪽에서 우리 가족을 떼어내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는 그렇게 된 연유에 대해 말을 꺼냈다.


"당시 상황이 좀 복잡했어. 네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던 건 기억하지? 네겐 아버지였고 내겐 형이었던 그 사람이 파킨슨 병에 걸린 거였어. 근육이 점차 굳어 잘 걷지 못하고, 말을 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은 너도 봐왔으니 잘 알 거야. 그 병을 치료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어. 치료 도중에 발생하는 합병증은 손댈 엄두도 나지 않았지. 물론 나와 큰 형, 할머니와 할머니의 가족들은 아버지 치료에 온 힘을 쏟았어. 그래도 부족해서 네 어머니 가족들에게도 부탁했단다. 이제 남편이 된 사람이면 한 가족이니 치료비에 대한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이지. 그런데 네 외가 쪽에서는 병을 알고서도 결혼시킨 걸 문제 삼았어. 사기 결혼이 아니냐고 따져왔지. 우리도 형이 병을 갖고 있다는 걸 증세가 나타나고서야 알았으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어. 그러나 들어줄 리 만무했지. 네 어머니는 남인 우리보다 친정 쪽의 말을 더 신뢰했어. 홀몸으로 너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를 매도했어. 그래서 우리도 얘기했지. 결혼을 했으면 집안끼리 만나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그때 외종조부가 나서서 네 어머니에게 그럴 거면 연을 끊어버리라고 한 거야."장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말만 들었을 땐 친가 쪽에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떼어낸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외가 쪽 가족들이 아버지의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문제를 일으킨 거였다.


"네가 어머니에게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어. 판단은 네가 할 몫이지. 우리도 잘한 건 없지만, 우리만 잘못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저는 이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할머니는 소중한 분이셨고, 또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다른 친척분들에게 원한을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진실을 안다는 건 제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네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맙다."


확실히 진실을 알고 나니 어느 쪽이 더 잘못했다 말하기가 어려웠다. 각자가 각자만의 사정이 있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는 사정들이었다. 어른들의 사정 속에서 할머니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잘 클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시장에 데려가 맛있는 걸 사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을 쥐어주고, 보고 싶은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려주던 분이었다. 손주 사랑이 으레 그렇듯이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주었다. 당시 '안 돼' 소리만 늘 듣던 엄마에게서 벗어나 '다 해'라고 말해주는 할머니는 천사와 다름없었다. 물론 내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욕심이 없는 편이긴 했다. 평소 먹기 힘들었던 소시지 핫바 하나, 시장에서 조금 벗어난 학교 앞 문구점에 파는 얄궂은 500원짜리 장난감이 갖고 싶은 것의 전부였다. 비디오테이프는 세 개 이상 빌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가 세 편 다 보고 나면 뒤편이 보고 싶을 거라며 두세 개씩 더 집어 들곤 했다.

집에서는 좋아하는 만두를 밥 대신 가득 먹게 해 주었던 사람, 덥다고 하면 선풍기가 켜져 있는데도 옆에 앉아 부채질을 해주었던 사람, 그게 할머니였다. 단 한 번도 내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의 싸움에 아무 잘못 없는 손주가 불쌍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손주를 사랑했기에 나오는 것들이었다.


"어쨌거나 제게 할머니는 소중한 분이셨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두 잔 째 맥주잔을 비웠다.


"그래도 할머니가 널 마지막으로 보고 가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할머니는 나를 보기 위해 남은 생(生)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으셨는지 내가 병문안을 했던 바로 다음 날부터 의식을 잃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셨다.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가 나를 만나기 전까지 마취제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도 습관처럼 내 이름을 연신 중얼거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저께 새벽에 돌아가셨어. 평온한 표정이 마치 숙면에 빠진 것 같았어. 바이탈 모니터의 신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보지 않았다면 정말로 잠이 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까. 네가 우리 같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잘 자란 것을 보는 것이 할머니가 스스로에게 내린 마지막 숙제였는지도 몰라."

"오히려 중간에 찾아뵙지 못한 제가 더 죄송한걸요."

"아니야. 할머니를 위해 우리가 먼저 네게 연락했어야 했어. 네가 오지 않은 건 어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그 오해를 풀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당시의 나도 형이 죽은 것이 네 어머니의 가족들이 치료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형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었고,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어."


나는 작은 아버지의 잔을 채우고 내 잔을 채웠다. 병에 든 맥주가 딱 맞게 떨어졌다. 오랜 기간 깊어진 오해의 골이 쓴 맛이 되어 맥주와 함께 목으로 넘어갔다.


"내일이 할머니 발인이야. 할머니를 보는 마지막일 수도 있어."


나는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셋째 날, 내게 소리를 질렀던 외종조부는 참관하지 않았다. 내가 오는 것을 알고 마주치기 싫어서 그랬던 건지 일정이 맞지 않아 오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오셨더라면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가족들이 아버지의 병세를 두고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었다. 절대 아버지를 내팽개치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일에 맞춰 15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제를 지냈다. 정말로 싫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다만 당시의 상황이 어머니가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수 없도록 몰아넣었다. 분열을 만든 오해는 땅 속 깊은 곳에 상자를 두고 부어버린 시멘트처럼 진실을 덮은 채 단단히 굳어버렸다.

아침 이른 시간에 입관이 진행되었다. 장례식장은 몇 번 조문한 적이 있었지만, 빈소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장례가 절차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어린아이가 볼 만한 건 아니라는 이유로 셋째 날은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 머물렀다. 그래서 장지로 이동할 때 아버지의 영정 사진은 장남인 내가 아니라 큰 아버지가 들었다고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입관실엔 나와 작은 아버지 내외, 큰 아버지 내외와 사촌 누나만 들어갔다. 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은 채 입관실 중앙 영좌(靈座) 위에 놓인 관 속에 누워 계셨다. 영좌의 왼쪽에 장례지도사가 섰고 우리는 영좌 오른쪽을 두르듯 섰다. 깨끗하게 씻고 화장을 한 채 누워있는 할머니는 도저히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부르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야, 우리 손주'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일어날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의 왼손 앞에 서 있던 사촌 누나가 억누르던 감정을 폭발했다. 딱딱하게 굳은 할머니의 왼손을 맞잡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오열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하나둘씩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어머니, 엄마, 할머니와 같이 그녀를 부르는 명칭들이 모두의 오열 속에서 어지럽게 맴돌았다. 나는 그 속에서 홀로 울지 않고 할머니의 얼굴을 응시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정확하게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꼼꼼하게 훑었다. 할머니의 이마, 눈썹, 광대, 코, 입, 턱, 그 사이사이에 패인 주름들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장례지도사가 면포를 가져왔다. 맨 위의 면포를 집은 후 그것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조심하며 정성스럽게 감았다. 할머니의 얼굴이 면포에 가려지는 순간 친척들의 오열이 극에 달했다. 면포 위로 할머니의 얼굴 곡선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장례지도사는 면포로 얼굴과 목을 꼼꼼하게 감쌌다. 그 작업이 끝이 났을 땐 그것은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하시겠습니까?"


장례지도사는 어떤 절차를 진행할 때마다 계속해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겐 지금 진행되는 모든 행위들이 단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작은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할머니의 몸 위에 올렸다. 노잣돈이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편안하게 가시오."


나도, 다른 친척들도 편안히 가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는 동안 장례지도사가 한쪽에 준비해 두었던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할머니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꽃이 계속 놓였다. 살아생전에도 이렇게 많은 꽃을 받아 본 적이 있으셨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꽃들로 관이 치장되었다. 작업이 끝났을 땐 할머니의 모습은 꽃 속에 완전히 감춰졌다. 무수한 꽃들이 할머니와 우리,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것만 같았다.

입관 이후 발인이 진행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입관을 참관했던 유족들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배정해 놓은 시간인 듯했다. 친척들은 정리가 되어가는 빈소에 앉아 울었던 흔적들을 추슬렀다.

나는 발인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시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이 내다 보이는 건물 본관 앞은 고요했다. 이따금씩 다른 호실의 상주나 조문객들이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 오는 사람은 없었다. 비흡연자인 나는 재떨이가 있는 곳 반대편으로 갔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거야?"


언제 내려왔는지 옆에 작은 아버지가 서 계셨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불을 붙이진 않았다.


"피우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작은 아버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크게 한 모금 빨았다가 더 크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것은 깊은 한숨 같았다. 작은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만 태웠고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먼 하늘만 쳐다봤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죠. 할머니시니까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남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고인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할머니의 곁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마지막, 마지막. 입 안에 그 말이 맴돌았다. 이번 장례식을 끝으로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가와도 마지막이 될 터였다. 친가와 나를 이어주던 마지막 연결끈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더 이상 만날 구실도 접점도 없게 되었다.


"고맙다."


작은 아버지는 내가 할머니의 문안드린 이후 틈만 나면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고 고마워할 일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로 작은 아버지가 과거의 짐을 덜 수 있다면 내버려 두고 싶었다. 내겐 그들을 처벌할 권리도 용서할 권리도 없었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구를 옮길 때 큰 아버지가 가장 앞쪽에 영정사진을 들었고 나를 포함함 친척 남자들이 좌우로 세 명씩 붙었다. 비쩍 마른 할머니의 시신만 담긴 관 치고 꽤 무게가 나갔다. 가벼웠으면 할머니가 관 속이 아니라 이미 하늘로 가버렸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을 텐데 무거우니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시는 것 같았다.

영구와 유족들을 태운 장의 버스가 화장 시설로 향했다. 화장 시설은 장례식장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 영구가 화장로에 들어갔고 두 시간 뒤 품에 안길 정도로 작은 유골함으로 돌아왔다. 유골함을 받아 든 작은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유골함을 내밀었다.


"할머니, 안아 드려 볼래?"


나는 작은 아버지가 건네는 유골함을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화장 시설로 올 때 함께 들었던 영구의 내 몫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것은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였던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유골함을 안아 드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존재가 가진 고유의 무게 상실은 할머니가 이승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을 선고 내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장례라는 것이 단순히 고인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나 후회, 마음의 앙금들을 단계적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조절해 주는 의례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할머니의 장례를 타인의 장례처럼 조문만 하고 끝내버렸다면 나는 분명 어떤 찝찝함을 계속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면서, 나는 그 찝찝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도 작별했다. 이제 내 안엔 소중히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남았다.

장지 내 봉안당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내 허리쯤 오는 높이의 안치단에 안치되었다.


"할머니는 뭘 좋아하셨을까요?"


문득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걸 많이 아셨지만 나는 할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작은 아버지가 헛헛하게 웃으며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 꺼내주었다.


"나처럼 지독하게 담배를 좋아하셨지."


그러나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담배 냄새가 아닌 할머니 냄새가 났다. 그저 나이가 들었기에 자연스레 풍기는 노인의 냄새. 거기에 섞인 할머니의 집 냄새와 자주 입으시던 리넨티셔츠의 냄새. 거기에 담배 냄새는 없었다. 거기다 할머니는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우시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당연히 비흡연자인 줄로만 알았다.


"네가 담배 냄새 싫어할까 봐 너 온다고 하면 일주일 전부터 담배를 끊으셨어. 집 안에서도 절대 피우지 않으셨지. 혹시나 집에 담배 냄새가 벨 까봐. 나도 흡연자라서 꾸준히 피우던 담배를 일주일, 열흘 이렇게 끊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거 알기 때문에 네 할머니가 담배를 끊으실 때마다 널 정말 아끼는구나 싶었어. 자, 이제 슬슬 돌아가자."


작은 아버지는 꺼낸 담배를 할머니의 유골함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장례는 유골함을 봉안당에 안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유족과 친지들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올라타는 사람들 중 몇몇은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몇몇은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여전히 슬픈 사람들도 분명 슬픔을 덜어내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슬픔의 총량이 너무 많아서 삼일 동안 모두 다 덜어내지 못했을 뿐일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주차장 옆 흡연 공간에 흡연자들이 모여 이곳에서의 마지막 담배를 태웠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는 소리만 났다. 먼저 다 피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작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꽁초를 재떨이에 집어던졌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려는 작은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라이터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작은 아버지가 주머니에 넣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나는 작은 아버지의 손에 놓인 라이터만 가져갔다.


"먼저 출발하세요. 저는 볼 일이 있어서 따로 돌아갈게요."


작은 아버지는 내가 뭘 하려는 지 알아챘는지 어깨를 툭 한 번 치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떠나는 버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 뒤에 나는 다시 봉안당으로 돌아갔다.

안치단을 열어 작은 아버지가 놓고 간 담배를 꺼냈다. 유골함을 열어 뼛가루도 조금 움켜쥐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바깥 입구 옆 난간에 할머니의 뼛가루를 올려놓은 뒤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뱃잎에 붉은빛이 돌면서 스스로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담배를 할머니의 뼛가루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향을 피운 것처럼 담배연기가 가느다란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담뱃불이 순간 짙어졌다가 옅어지면서 짧아질 때면 할머니의 영혼이 곁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담배를 즐기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것이 나와 할머니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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