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 단편

2. 층간 소음 피해자

by 안온

퇴근 후 돌아가는 집이 너무 불편하다. 그러나 밤 10시가 넘은 시각, 바깥을 맴돌 만큼 맴돌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파트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다. 4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곧장 내려온다.

한참을 탑승한 사람이 없었는지 문이 열리면서 엘리베이터 내부 조명이 한 템포 늦게 켜졌다. 나는 이 아파트 최상층인 15층을 누른다. 나도 모르게 후- 하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전구를 교체하지 않아 복도가 컴컴했다. 내가 사는 그린 아파트는 좌측으로 1호실과 2호실, 우측으로 3호실과 4호실이 있는 구조였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요즘 시대에 이사 온다고 떡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의 방식도 워낙 다양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라고 마주친 적도 없어 얼굴조차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종종 열린 현관문으로 인기척이 나거나 주문한 택배가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빈집은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가장 오른쪽 1504호에 살았다. 문 앞에 택배가 놓여있다. 며칠 전 주문한 기초화장품이었다. 현관문에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아 안심했다. 택배 박스를 집어 들고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4051. 1504호를 뒤집은 번호였다. 버튼을 하나씩 누를 때마다 전자음이 복도에 울렸다. 소리가 너무 컸다. 구형 도어록이라 볼륨도 조절되지 않아 버튼을 누르고 난 뒤 1호 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불 꺼진 복도 저편은 고요했다. 누구도 도어록 전자음에 시끄럽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소리치지 않는다.

집 안은 온 바닥에 소음 방지 매트가 깔려 있다. 집에선 잠을 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할 것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중 하나가 씻는 것이었다. 샤워는 늘 10분 안에 끝마쳤다. 몸에 거품을 묻히는 건 사치였다. 몸은 물로 재빠르게 씻어내고 얼굴만 꼼꼼히 씻는다. 씻으면서 바닥에 소변을 본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대변은 회사에서 최대한 해결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서 볼일을 보게 되면 다음날 아침 출근할 때까지 뚜껑을 덮어두어야만 했다. 출근을 위해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날 밤 결과물의 냄새를 맡는 것은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 냄새가 개어놓은 수건과 걸어놓은 휴지에도 벤다고 생각하면 더욱 끔찍했다. 그렇기에 다음 날까지 참을 수 있다면 참는 편이 나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택배 박스를 열었다. 평소 즐겨 쓰는 브랜드의 스킨과 로션이 가지런하게 들어있었다. 둘 다 꺼내 마개를 뜯고 조여드는 얼굴에 서둘러 발랐다. 매끈해진 볼 감촉에 긴장이 살짝 풀렸다. 그때였다. 복도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거실의 불을 껐다. 입을 틀어막고 숨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심했다. 복도를 따라 점점 커지던 발소리는 내 집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쿵쿵- 두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래층 사람이다. 이 사람은 절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나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길 바라며 가만히 있었다.


"안에 있는 거 알아요."


문틈에 바짝 대고 말하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마치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내 귓가에 또렷하게 박혔다. 나는 그 여자가 너무 무섭다.




두 달 전 아래층에 이사로 인한 인테리어 공사가 있었다. 9시부터 16시까지 3주간 리모델링 공사로 인한 소음이 발생할 거라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과 1층 로비 중앙 게시판 내 공문들 사이에 게재되었다. 출근을 위해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8시,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저녁 6시를 조금 넘는 시간이어서 공사와 관련해서 나와 부딪힐 부분은 없었다. 실제로 나는 공사 소음을 거의 듣지 않았고, 공사 마무리 기간인 마지막 주 토요일에 약간의 진동과 소음을 들은 게 전부였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다음 날 아랫집은 곧바로 이사를 왔다. 출근하기 전부터 이삿짐 차량이 진입하니 차를 빼달라는 연락을 받아 오늘 이사를 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조금 일찍 출근하는 셈 치고 집을 나섰다. 주차장 들어오는 입구에 큰 사다리차가 차가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짐이 많은 집인가 보다 생각하며 차를 몰고 사다리차 옆을 지나쳤다.

퇴근 후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을 땐 사다리차는 철수한 뒤였다. 아파트는 3주간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것처럼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을 눌렀다.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다. 그 잠깐의 시간이 아까워 스마트폰으로 SNS 앱을 열고 무심하게 피드들을 훑었다. 다섯 개째 피드를 보려고 화면을 스크롤 한 순간 땡-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리려는데 반대편에 서 있던 여성분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말을 걸어왔다.


"14층이에요."


그 말에 뻗은 오른발을 멈추고 위를 쳐다봤다. 14라는 숫자와 함께 위로 올라간다는 화살표가 고정되어 있었다.


"15층에 사시나 봐요."


엘리베이터로 들어오며 그녀가 말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검은색 레깅스에 딱 붙는 베이지색 슬리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에 군살 하나 없는 매끄러운 신체 곡선이 자기 관리에 상당히 신경 쓰는 사람 같았다.


"네. 15층에 삽니다. 15층에 볼일이 있으신가 봐요?"


14층에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는 건 15층에 볼일이 있다는 얘기였으므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녀는 왼손에 쥐고 있던 비닐을 들어 올렸다.


"떡 돌리려고요."


요즘 시대에도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몇 호에 살아요?"

"1054호요."

"바로 윗집이시구나. 더 잘 부탁드려야겠네. 저희 집에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거든요."


당시 나는 그 말을 아이들이 있으니 시끄럽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췄다. 그녀는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우리 집부터 나눠줄 생각인지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문 앞에 서자 그녀가 소분해 담아놓은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옛날에는 스티로폼 접시에 떡을 넣고 랩을 씌운 것을 돌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먹기 좋게 개별포장된 떡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투명한 봉투 안에는 7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먹기 좋은 사이즈의 떡이 색깔별로 하나씩 네 개가 담겨 있었다.


"잘 먹을게요."


건네는 떡을 받아 들고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녀는 잰걸음으로 벌써 1호 집 문고리에 떡을 걸어놓고 엘리베이터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잘 먹겠다는 뜻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현관문 뒤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떡을 받은 뒤로 며칠 동안은 아래층 여성과 마주할 일은 없었다. 평일엔 출퇴근을 하느라 저녁이나 밤 시간 뒤에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없었고, 주말엔 친구를 만나거나 별일 없어도 바깥을 나돌았다. 내 집은 잠을 자고 씻고 종종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숙박시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래층은 여성과 다시 대면한 것은 그녀가 이사 온 이후로 두 번째로 맞이하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밖에서 치킨과 맥주를 걸치고 10시쯤 귀가한 참이었다. 곧장 화장실로 가 샤워를 마친 뒤 영화를 보며 맥주를 한 잔 더 할 생각으로 거실 식탁에 앉았다. 맥주 캔과 안주로 먹을 볶은 땅콩 한 줌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태블릿 PC의 OTT앱을 실행시켜 어떤 영화를 볼지 스크롤을 내렸다. 최신 스릴러 영화와 평소 보고 싶었던 히어로물 영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곤 배달 기사뿐이었다. 노크하지 말라는 요청사항에도 종종 노크를 두드리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에 살금살금 현관문으로 걸어가 신발장에 넣어 둔 남자 구두를 꺼낸 뒤 도어스코프를 통해 바깥을 쳐다봤다. 칠흑 같은 어둠 바깥에 더 짙은 사람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였다.


"아래층에서 왔어요."


퇴근하던 날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아래층에서 올라올 일이 없었다. 나는 문을 열지 않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세요?"

"문 좀 열어 봐요. 나 혼자예요."


혼자라는 말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어 안전장치를 건 채 문을 열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이웃끼리 얼굴 붉히기 싫어서 나도 참다가 참다가 올라온 거예요."

"무슨 일이신데요?"


나는 여전히 긴장한 채 물었다. 1404호 여자는 한 뼘도 채 열리지 않은 현관문에 얼굴을 바짝 댄 채 우리 집 안쪽과 내 발을 확인했다.


"아가씨, 혼자 살아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무섭게 쳐다만 보지 마요. 내가 피해자인데. 사실은 요 며칠 너무 시끄러워서 올라왔어요. 전에 말하지 않았나, 우리 집에 아이가 둘 있다고요. 낮에 시끄러운 거야 참으면 되지만 밤에 시끄러운 건 아니지 않아요?"

"시끄럽다니요? 저 10시 넘어서 들어왔고 샤워 말고 한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시끄럽다는 거예요. 물 내려가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게다가 아가씨 발 보니까 실내화도 안 신었던데 걸어 다닐 때마다 쿵쿵거려요. 발망치라고, 당사자는 잘 모르더라고요. 아가씨 걸을 때 망치처럼 쿵쿵 소리 나요."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신발을 신을 생각조차 못해 맨발로 현관을 딛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자 1404호 여자가 손을 쑥 집어넣어 현관문을 잡았다. 힘껏 닫았으면 손이 끼일뻔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밤엔 조금만 조심해 줘요. 부탁해요."

"알겠으니까 이거 놔요."


여자가 현관문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말인데요."


현관문이 반쯤 더 닫혔을 때 약간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저렇게 남자 신발 두는 거, 아무도 안 속아요."




1404호 여자의 쏘아붙이는 말에 기세가 눌려 듣는 내내 머릿속이 새하얬다. 이곳뿐 아니라 어디를 살면서도 층간 소음으로 클레임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식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래층에서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나는 가해자의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층간소음이 있다고 했지 어떤 소리가 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샤워를 했다고 하니 물소리가 시끄럽다는 말로 맞받아쳤다. 심지어 낮엔 집을 비워두는데 낮에 시끄러운 건 참는다는 말까지 들었다. 층간소음의 범인이 내가 아닐 수도 있었다. 아파트란 공간은 바로 이어진 위층뿐 아니라 위층의 옆집, 옆집, 아랫집에서도 소음이 생길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오래된 아파트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층간소음은 공사 당시 원가 절감을 위해 설계한 대로 자재를 쓰지 않아 발생되는 것이라고 어느 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소리가 벽을 타고 전달되면서 어느 집에서 발생한 소음인지 특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맥주를 단 번에 반 캔을 들이마시며 이미 지난 일,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화장실의 물 빠지는 소리나 야밤에 걷는 소리가 참기 힘든 정도였고 나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1404호에 살 있던 이전 세입자도 분명 문제 삼았을 것이다.

아래층 여자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 영화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태블릿 PC의 화면을 껐다. 안방의 침대로 가는 내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신경 쓰였다. 내 탓이 아니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머리와 마음은 별개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다음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서 실내용 슬리퍼를 샀다. 여름을 제외하면 사계절 내내 쓸 수 있는 쿠션감 있는 파란색 실내화였다. 층간소음 이슈로 사는 건 아니었고 원래 하나쯤 장만할 예정이었다. 실제로 계속 살 마음은 있었지만 구매를 미루고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안 사게 되었다. 그러니까 절대 아래층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고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실내화는 편했다. 우선 매일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 발생하는 머리카락과 자잘한 부스러기들이 발에 밟히지 않는 점이 너무 좋았다.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쿵 찧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실내화의 충격 흡수 기능은 탁월했다. 한 마디로 발이 편했다.




실내화를 신은 뒤에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고 늦은 시간에 길게 샤워하는 것만 자제했다. 나와 생활패턴이 비슷하거나 생활소음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하수관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아이가 잠들어 밤의 고요가 필요한 아래층 사람에겐 산속의 폭포수처럼 들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토요일이 찾아왔을 때, 1404호 여자가 또 찾아왔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4호 아가씨."


그녀는 현관문 가까이에 대고 나를 불렀다. 당시 막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재킷을 벋으려던 참이었다. 나는 안전장치를 걸고 현관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방금 왔으니까, 이 시간에 내가 낸 소음 때문에 왔다고 말하진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참아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조금만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

"아주머니. 저도 방금 집에 왔어요. 이제 문 열고 들어왔다고요. 그러니까 우리 집 아니에요. 저희 옆집에 가보시든지 다른 집 찾아보세요."

"이 집이 맞다니까 그러네. 옆집에 사람이 없어.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더라고. 이 집만 사람이 있는데 이 집이 아니면 어디겠어?"


다짜고짜 층간소음 가해자로 몰아가는 게 짜증이 났다. 나는 보란 듯이 저번주에 산 실내화를 가져와 내밀었다.


"저번주에 시끄럽다고 하셔서 이렇게 슬리퍼도 신고 다니고요. 샤워도 최대한 빨리 끝내고요. 낮엔 아예 집에 있지도 않아요. 심지어 오늘은 방금 왔어요. 방금 문 열고 들어와서 가방 내려놓으니까 아주머니가 왔다고요."

"문 닫는 소리가 오죽 시끄러워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애가 자다가 그 소리에 깼어. 남편한테 애 맡겨 놓고 온 거야. 문 좀 살살 닫아 달라고."


나는 평소와 같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이었다. 문은 한 뼘 정도 열려있을 때부터 댐퍼로 인해 조용히 닫혔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에 들리는 소리는 감내할 수 있는 생활소음 수준이었다. 일부러 소음을 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매번 소리가 날 때마다 이렇게 올라올 일인가 싶었다.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1404호 여자는 현관문 옆을 손으로 꼭 붙잡은 채 자기 할 말만 했다.


"조금만 조심해 줘요.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올라올 수도 없잖아요. 문 좀 살살 닫아주고, 밤늦게 샤워는 좀 자제해 주고. 슬리퍼 신었다고 힘줘서 걸어 다니면 안 신은 거나 똑같아요. 그것도 좀 신경 써주시고."

"혹시 몰라서 저도 조심하긴 할 건데요. 오늘은 제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계속 그렇게 말하는 저의를 모르겠네요."

"이 집 맞다니까 그러네. 아가씨, 그냥 잘못했다 한 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져요?"

"알겠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조심할게요."


나는 신경질을 내며 현관문을 닫았다. 힘껏 닫으려 해도 내 힘에 비례해 댐퍼에 저항이 생기면서 문은 느긋하게 닫혔다. 열린 틈으로 끝까지 나를 주시하는 1404호 여자의 시선이 께름칙했다. 실내화를 신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께름칙한 기분이 섬뜩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뒤꿈치를 들고 현관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복도를 걷는 발소리,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도어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실루엣이 보였다. 1404호 여자가 현관문 방향으로 선 채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10분 가까이 거기에 서 있다가 되돌아갔다. 이 집에서 소리가 나는 게 확실하다는 걸 확인하려고 있었던 것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 여자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집을 늦은 시간까지 비웠다. 평일에 야근이 없는 날이면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갔었는데 바깥을 겉도는 시간을 늘렸다. 이르면 9시, 늦으면 10시까지 밖에서 시간을 축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외식 후 카페에 들러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어쩌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와 시간이 맞으면 맥주를 한잔 걸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 할 일이지 매일 하려니 여러모로 힘들었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내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는 게 왜 힘드냐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남에게 크게 피해 주고 살아온 적은 없었다고 자부했는데 그 여자가 자꾸 나를 가해자로 몰았다. 집이 너무 불편해졌다. 숨만 쉬어도 바람소리가 거슬린다고 아래층에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층간소음은 그 소음에 노출된 피해자만 큰 고통을 받는 줄로만 알았다. 가해자로 몰려 내 집에서 생활조차 할 수 없게 내몰릴 줄은 몰랐다.

진짜 내가 원인이었던 건지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 1404호 여자가 방문했던 건지 2주째 마주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지만 집에서의 행동이 조금씩 과감해졌다. 귀가하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고 밤 10시가 되기 전에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도 했다.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가는 와중에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1404호 여자와 마주친 것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정시 퇴근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잡고 올라타려는데 1404호 여자가 내렸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잊고 있었던 공포가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안 타세요?"


그녀는 마치 자기 집에 초대한 사람처럼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반기듯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5층을 누르고 가만히 서 있는데 그 여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지옥 같았다. 빨리 15층에 도착하길 바라며 하나씩 높아지는 층수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15층까지 가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숫자가 더디게 바뀌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14를 가리킬 때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 여자, 분명 1층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안에 있었는데 내리질 않았다. 당시엔 너무 놀라 그녀가 내리지 않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같이 올라가는 사람으로 착각했었다. 그런데 14층에서도 엘리베이터가 멈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15층으로 향했고 문이 열렸다. 내가 내리자 그녀도 뒤따라 내렸다.


"14층을 깜빡하고 안 누르신 것 같은데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 배에 힘을 꽉 주고 말했다.


"알아요. 그쪽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1404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 보복 같은 걸까. 몸 어딘가에 흉기를 숨기고 있진 않을까. 나 여기서 살해당하는 건가. 온갖 망상이 쏜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내 걸음을 따라 집 앞까지 쫓아왔다. 바로 옆에 나란히 선 그녀 때문에 도어록의 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우리 집 현관문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분명 조용히 해달라고 했잖아요."


도어록 앞에서 갈 곳을 잃은 내 오른손을 보며 1404호 여자가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밤늦게 씻지 말고, 조심조심 걷고, 문 살살 닫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거 저 아니에요."

"아가씨 아니면 누가 그래요? 1503호? 아니면 우리 옆집?"

"어딘지 몰라도 저는 아니라고요."

"내가 며칠간 아가씨 늦게 드나든 거 다 알아요. 어떻게 아냐고? 현관문을 그 시간에 그렇게 닫는 곳이 그 집뿐이니까요. 내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니까."


흥분했는지 존댓말과 반말이 뒤섞였다.


"내가 어려운 부탁하는 거 아니잖아요. 나는 괜찮은데 아이들이 자꾸 잠에서 깨. 윗집이 너무 시끄럽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 좀 할게요."

"조심할 테니까 그만 돌아가주세요."

"꼭 좀 부탁드려요."


그녀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녀가 1503호 문 앞을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둘러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녀가 되돌아오더라도 먼저 집 안에 들어가 문을 잠글 수 있다는 얄팍한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녀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그녀가 되돌아오거나 흉기를 꺼내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관에 서서 집 안을 보았다. 내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퇴근 후 누구의 간섭 없이 쉴 수 있었던 유일한 내 공간이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방을 딛고 걷는 것도, 샤워기를 틀어 씻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현관문 소리 얘기를 들었을 땐 내가 이곳을 열고 드나드는 것마저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날 층간소음과 관련된 물건들을 가득 구매했다. 발매트는 물론이고 각 문틀마다 붙일 충격 흡수재, 즐겨 앉는 의자 다리에는 소음 방지 패드까지 층간 소음 용품은 있는 대로 쓸어 담았다. 층간소음 유발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층간 소음 유발자들이 살 법한 물건들을 구입해 집 안에 설치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발소리가 난다고 하면 아래층 여자가 환청이 들리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집에 별로 머물지도 않는다. 집에서 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소음을 냈더라면 억울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호텔에서도 사람이 이렇게 조심스럽고 비참하게 지내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심하려고 한다. 한 달만 참으면 전세 계약이 종료된다. 똥을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아래층 미친년과 계속 마주할 바에 내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나았다.

푹신한 슬리퍼를 신고 푹신한 소음방지 매트 위를 걸어 본다. 이 정도면 집에서 달리기를 해도 아래층에 아무런 소음도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슬리퍼가 매트에 쓸리면서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 현관문과 문틀에 붙인 충격 흡수재가 서로 쓸리며 나는 소리가 전부였다. 집이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들로만 채워졌다.




숨 막히는 날들이 계속되던 중에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안에 있는 거 알아요."


현관문에 얼굴을 바짝 댄 채 말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조용한 집 내부를 가로질러 내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카랑카랑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목소리.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목소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숨까지 참았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긴장감이 극으로 치닫으면서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쳤다. 고요 속에서 묵직한 박동소리만 귓가에 울렸다. 진짜 내 귀를 통해 들리는 맥박소리인지, 두 망 방이질 치는 박자에 맞춰 헛것이 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공포 영화에서 귀신이 나오기 직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북소리 같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는 거 다 봤어요.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1404호 여자는 나의 일거수일투족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대체 어떤 소음이 집에 퍼지길래 내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까. 아니면 없는 척하는 나를 끄집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멀미가 난 듯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아가씨, 조금 전에 샤워하고 내가 오니까 불 끈 것까지 다 보였다니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서 얘기 좀 해요."


나는 살금살금 현관문으로 다가가 도어스코프를 통해 바깥을 확인했다.


"역시, 안에 있잖아요."


내가 도어스코프에 얼굴을 가까이 대는 순간 1404호 여자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어스코프를 통해 바깥에서 안쪽을 볼 순 없지만 빛의 변화는 감지할 수 있었다. 현관 앞으로 걸어간 순간 전등 자동센서로 인해 내부가 밝아졌고, 내가 눈을 가까이 대면서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통해 그녀는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걸 알아차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나는 알면서도 물었다.


"문 좀 열어 봐요. 내가 피해자인데 뭐가 무서워서 문도 못 열어요?"


당신이 피해자라고? 코웃음이 나왔다. 온 바닥에 깔린 소음 방지매트를 보고 있자니 저 여자가 어떻게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전장치를 걸지 않은 채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현관문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여자가 재빨리 뒤로 피했지만 왼쪽 어깨를 부딪히고 말았다.


"이거 안 보여요? 내 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답답해 죽겠는데, 피해자요? 하, 참."


나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거실을 가리키며 단숨에 말했다. 그녀는 집 안을 보는 대신 부딪힌 왼쪽 어깨를 쓸었다.


"사람을 쳤으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녜요?"

"지금 내가 사과하게 생겼어요? 멀쩡한 사람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잊을만하면 찾아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그렇게 예민하면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에서 살았어야죠!"


공포를 떨쳐 내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1404호 여자는 나의 반응을 공격적인 것으로 인지하고 잠깐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짧은 숨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네요.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이 위층에 사는 줄 알았으면 여기 이사 오지도 않았어요. 전에 살던 사람이 위층 사는 줄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고 해서 이사 왔는데 저는 지금 전 세입자에게도 속고 당신한테도 당한 피해자라고요. 내가 피해잔데 왜 당신이 소리쳐요?"


그녀가 나를 지칭하는 말이 아가씨에서 당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옆집들을 가리켰다.


"1503호도 1502호는 다 일찍 주무시는 어르신만 살고 계신 건 알아요? 내가 시끄러울 때마다 찾아가니까 자기들은 10시 한참도 전에 잔답니다. 이 시간에 찾아가 마주했을 때 얼굴만 봐도 자다가 일어난 표정이었다고요. 엄한 사람 안 잡으려고 내가 여기 집들을 몇 날 며칠 지켜봤어요. 밤 10시 넘어서 불 켜진 집은 여기밖에 없는데, 더 위로 집도 없는데, 그럼 여기가 원인이지 어디가 원인이겠냐고요!"


그녀가 말끝을 올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 흔들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이 악물고 참으며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제가 두 달 뒤면 전세계약이 끝나거든요? 그때까지만 좀 참고 살면 안 될까요? 집을 이렇게까지 했는데 소리가 난다고 하면 저도 방법이 없으니까 두 달만 참아 봐요."


나는 그녀가 보지 않았던 집 안을 다시 한번 가리켰다. 그녀는 거실을 곁눈질로 대충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쇼하고 있네. 내가 문 열어보라고 할 때 조용했던 게 저거 깔고 있었던 거였네."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는 이미 나를 가해자로 낙인찍은 상태였다. 지난 방문과 오늘 사이 내 집을 찾아오지 않은 것은 내가 조용히 지내서가 아니라 1503호와 1502호 혹은 다른 집들로부터 완전한 무결을 듣고 난 뒤에 나를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부릅뜬 두 눈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너 때문에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살기마저 풍겼다. 소매나 셔츠 밑단 안쪽에서 당장이라도 흉기를 꺼낼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문을 닫기 위해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반쯤 닫혔을 때 탁하고 문이 걸려 닫히지 않았다. 1404호 여자의 오른발에 문이 걸려 있었다.


"야! 시끄럽게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두 달만 참으세요? 이게 할 말이야?"

"저도 집에서 잠 밖에 안 잔다고요! 내 집에서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하는데 내가, 내가, 내 집에 사는 걸 사과해야 해요?"


분노와 공포가 차오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울분 섞인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내 집에 사는 걸 사과해야 되냐는 부분에선 거의 오열했다. 갑자기 내가 울음을 터트리자 상대는 당황한 듯 한걸음 물러섰다. 아무도 잡지 않은 현관문이 천천히 닫히다가 문틀과 문에 붙여 둔 소음방지재가 맞닿으며 멈췄다. 나는 문 닫는 것도 잊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데 하염없었다.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1404호 여자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녀가 뭐라 하는지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오전 곧장 집주인에게 전화해 계약 만료와 동시에 방을 빼겠다고 했다. 기운 없는 내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냐고 집주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너무 피곤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젊은 아가씨가 혼자 살기에는 이 가격에 이만한 집이 잘 없다면서 아직 계약 끝나기까지 기간이 남아있으니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가는 나를 은연히 붙잡았다. 이 집과 더는 엮이기 싫었지만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 참고는 하라는 의미로 아랫집 이야기를 조금 꺼냈다. 그러자 집주인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거기도 제가 전세를 내주고 있어요. 제가 이 근처에 몇 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래층에 무슨 문제가 있던가요?"


1404호 여자가 어제 찾아왔을 때보다 집주인이 세를 내놓은 집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여러 채의 집을 세 내놓고 돈을 굴리는 다주택자 이야기는 뉴스에서 나오는 서울의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집주인이 전화기 너머로 다시 나를 불러주었을 때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저희 집이 너무 시끄럽다고 하셔서요. 저는 제가 되게 조용히 지낸다고 생각했었는데 문 닫는 것부터 걸어 다니는 것, 씻는 것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럽다고 찾아와요. 찾아와서는 애가 둘이 있는데 저 때문에 잠을 못 잔대요. 진짜 제가 시끄러운 건지, 그 집 사람들이 귀가 밝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예?"


집주인이 이상하다는 듯 목소리 끝이 높아졌다.


"거기에 애가 둘이나 있다고요? 저랑 부동산에서 계약할 때는 혼자 살려고 들어온다고 했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 집이 세 명, 남편까지 있다면 네 명일텐데 네 명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그 집, 방 하나 거실 하나가 끝이에요. 고작 10평짜리 집이라고요."


나는 집주인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랫집 여자는 분명 두 아이와 함께 산다고, 떡을 돌린다고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말했다. 1404호 여자는 내게 또는 집주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10평 아파트에 세 명이 살든 네 명이 살든 집주인이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형편에 맞는 집이 여기밖에 없을 수도 있고, 살고 있던 좋은 집이 팔리지 않아 임시 거처로 이 주변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렴한 그린 아파트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집주인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아니었다.

그럼 내게 아이가 있다고 한 말이 거짓말일 이유로 가장 컸다. 이건 이것대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놀아 문제가 생기는 건 윗집에 양해를 구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떡을 건네줄 당시 윗집 사람인 내게 "저희 집에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거든요."라는 말은 상당히 이상한 발언이었다.

집주인과 통화를 마치고 바로 그날 저녁, 1404호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대체 무슨 연유로 나를 괴롭혔는지 혼자서는 도저히 밝힐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집주인이 고맙게도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나와 집주인은 퇴근 후 저녁 7시 그린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 1404호로 올라갔다.

1404호 앞에 서서 현관문에 붙은 호실의 명패만 봤는데 맹수 앞에 선 사람처럼 심장이 날뛰었다. 집주인이 현관문에 한 발짝 더 다가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다시는 듣기 싫은 여자의 목소리가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평온한 일상을 방문한 평범한 방문객의 신원을 묻는 듯 어떤 의심이나 짜증도 없는 평이한 목소리였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집주인입니다."


집주인은 이렇게 찾아온 것에 대해 상당히 죄송하다는 듯 현관문 앞에서 허리를 조금 굽히기까지 했다. 사람 한 명 정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현관문이 열렸다. 복도 끝쪽에 서 있던 나는 현관문에 가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집주인만 찾아온 줄로만 착각했다.


"무슨 일이세요?"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서 얼마나 힘드신가 확인차 방문했습니다."

"층간 소음이요? 아, 윗집이 좀 별나긴 하더라고요. 현관문도 쾅쾅 닫고, 집 안에서 걸어 다닐 땐 얼마나 발도끼를 찍어대는지.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니까요. 제가 여자라서 만만하게 보는지 몇 번을 찾아가서 얘기했는데 도통 말을 듣질 않아요. 임대인 분께서 이 집 조용하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그 소음 때문에 여기 이사 온 거 꽤 후회하고 있어요."

"이전 세입자 분은 아무 말도 없으셨거든요. 그 정도로 시끄러웠으면 분명 문제가 생겼을 텐데 말입니다. 혹시 아이들이 많이 예민한가요?"


집주인은 내게 들었던 아이 이야기를 넌지시 던졌다. 그녀는 여전히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계약할 때 말씀드렸잖아요. 혼자 살려고 여기 왔어요. 제가 어딜 봐서 애 낳은 몸인가요?"


호호호 가식적으로 웃는 1404호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왼쪽으로 한 발짝 걸음을 옮겨 집주인 옆에 섰다.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나머지 드러나 있는 얼굴이 이 상황의 불쾌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죠?"


그녀는 호의적으로 대화하던 집주인에게도 차갑게 쏘아붙였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아이도 없으면서 아이 핑계로 사람 범죄자 취급하는 게 정상인가요?"

"애가 있든 없든 시끄러운 건 시끄러운 거지."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됐고. 나는 정당한 계약으로 이 집에 들어왔고 내 집에서 조용히 살 권리고 있으니까. 당장 돌아가. 임대인 분도 이런 식으로 집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1404호 여자는 자기 할 말만 쏘아붙인 뒤 집 안으로 사라졌다. 현관문이 쾅하고 닫혔다. 내가 문을 닫을 땐 문틀에 쓸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게 조심해 달라던 여자가 본인은 남 들으라는 듯 힘껏 닫았다. 나와 집주인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미친년."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1404호 여자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미친년이었다. 지금까지 칼을 맞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그러나 내가 당한 것과 별개도 나는 이 욕설을 넘어선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 층간소음이란 워낙 분쟁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인지라 끝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의 욕설은 그 무기력에 지배당하기 전 마지막 처절한 외침이었다.




다행히 저렴한 원룸을 빨리 구해 계약 만료 전에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조심하려고 샀던 층간소음 방지 매트와 슬리퍼는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전부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위층에 살았던 층간 소음 피해자. 그 불쾌한 기억이 저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졌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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