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깥 화장실
외할머니 집은 시내버스로 30분 정도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골목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들은 하나같이 오래되고 너무나도 가깝게 붙어 있었다. 집마다 담장을 둘 수 없어서 두 집이 하나의 담장을 공유했다. 이 집에서 내 키만 한 담장도 저쪽 집에서는 계단이어서 엉덩이까지 밖에 오지 않는 담장이 허다했다.
외할머니집은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2층 주택이었다. 2층을 독채로 전부 사용하는 건 아니었고 이 동네 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로지 계단과 현관으로 향하는 길 역할만 하는 좁은 마당이 나왔다. 왼쪽으로는 주인집이, 오른쪽으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이 계단을 오르기 위해선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했는데 바로 주인집이 기르는 개를 지나쳐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계단과 마주 보는 좁고 막다른 공간에 주인집이 기르는 개와 그 개가 사는 개집이 있었다. 목줄이 감겨 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개집에 몸을 반만 내민 채 엎으려 있기 일쑤였지만, 아주 가끔 산책이라도 하듯 목줄이 팽팽해지는 거리까지 걸어 나오곤 했다. 그렇게 해도 계단 입구까진 한참 멀었지만 덩치 큰 개가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올 수 있다는 건 12살의 나이에 충분히 무서운 일이었다.
계단은 2층으로 가는 절반쯤에서 건물 모서리에 닿았다가 90도로 꺾여서 나머지 절반을 올라갔다. 한마디로 기역자 모양이었다. 그리고 계단이 꺾이는 모서리 공간에 내가 외할머니 집을 그토록 오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이 동네 주택들은 지어진 지 당시 기준으로도 40년은 훌쩍 넘어서, 옛날 주택이 으레 그렇듯이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곳이 드물었다. 외할머니 집은 물론 주인집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화장실이 있었으니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에야 워낙 건축 기술이 좋아 주택의 실내에 있는 화장실도 집 안의 다른 곳처럼 따듯했지만 그 당시엔 실내든 실외든 화장실은 여름엔 덥고 습하고 겨울엔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곳이었다. 하물며 바깥에 있는 화장실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외할머니 집은 가장 더운 여름방학과 가장 추운 겨울방학 때 주로 방문했으니 화장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용하거나 추위에 덜덜 떨며 이용해야하만 했다. 심지어 남은 나무판자를 어설프게 이어 붙여 놓은 듯한 문짝엔 틈이 많아서 밖에서 용변 보는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변기에 앉아 몸을 살짝 앞으로 수그리면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틈에 눈높이가 딱 맞았다. 벌어진 틈으로 낮은 담장 밖 인도가 훤히 보였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고개를 들면 눈이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위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금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면 당시 사람들은 그저 이유 없이 시선을 들지 않고 걸었다. 나는 볼일 보는 것조차 잊고 관음증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한참을 내다보곤 했다. 들키면 부끄러울 것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두근거림이 속을 간지럽혔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고역이었다. 여름은 당시 열대야라는 게 흔치 않았던 때라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밤은 충분히 선선했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네 걸음 남짓한 마당을 지나쳐 계단을 반 층 내려가는 길은 선선함을 넘어 시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담장 밖 주택을 가로지르는 왕복이차로 너머로 병풍처럼 낮은 산이 펼쳐져 있었는데 늦은 밤에도 풀벌레 울음이 가득했다. 밤에 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무서운 나이였지만 산속에 모습을 감춘 채 울어대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무서움을 잊곤 했다. 바깥을 나가는 것도 모자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다 보니 볼일을 마치고 나면 잠이 달아나버려서 현관문 옆 조그마한 평상에 앉아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늦은 밤, 길엔 사람이 없고 끝없이 펼쳐진 노란 가로등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아주 드물게 자동차가 지나쳤다. 그럴 때면 나는 이곳에 갇힌 사람이고 저기 오는 운전자는 나를 구해줄 구원자인 양 양손을 마구 흔들어 '나 여기 갇혀있어요. 살려주세요.' 하는 망상을 피워보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적은 없으나 괜스레 몇 걸음 앞으로 나와 담장에 궁둥이를 붙이고 소심하게 나 좀 봐주십사 행동한 적은 있었다.
여름과 반대로 겨울이 오면 바깥 화장실은 그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여러 불쾌한 감정들이 치솟는다. 여름과 달리 바깥이 안방보다 더 쾌적하지도 않으며,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무서움을 쫓아내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겨울의 차가움, 건조함이 주는 스산함 자체가 몸을 잔뜩 움츠리게 만들어버렸다. 거기에 더해서 비나 눈이라도 내렸다 치면 밤새 마당과 계단이 얼어버려서 자칫 잘못했다간 넘어질 수도 있었다. 난간을 짚고 내려가기엔 손이 너무 시렸고 아무것도 잡지 않고 내려가기엔 길이 너무 미끄러웠다. 이런 손주의 고민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현관 앞에 요강을 두기도 했는데 요강은 말 그대로 오줌을 받는 항아리여서 큰 일을 보고 싶으면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화장실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관문에 부딪힌다. 벌어진 틈으로 겨울 칼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이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얼음장 같은 변기에 앉는 것이었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나와 몸은 덜덜 떨리는데 이보다 더 차가운 변기에 앉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참을 수 있으면 참고 싶건만 생리적 현상은 특정 임계점을 넘는 순간부터 참을 수 없는 통증과 그에 비례해서 보상주머니가 부풀어 오른다. '지금 볼일을 보면 이 만큼의 쾌락을 보상해 줄게.'라는 신체적 신호가 뇌리에 끊임없이 꽂힌다. 뱃속이 끓어오를수록 상상 속에서 쾌락의 주머니도 빠른 속도로 커져 갔다. 그래도 꿋꿋이 참아보려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용변은 속전속결로 본다. 체온에 변기커버가 데워지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뱃속에 든 것이 쏟아져 나오면서 쾌락의 주머니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부푼 풍선 상태로 쾌락이 오래 머물렀다면 추위를 무릅쓰고서라도 그것을 온전히 누렸을 테지만 다행히도 금세 보통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얼른 바지를 추스르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매서웠던 추위대신 차분한 추위가 나를 반겨준다. 두 평 남짓한 복도 겸 거실은 난방을 하지 않아 공기가 차고 건조했지만 그래도 바깥만 하지 않았다. 그래도 춥지 않은 건 아니어서 시린 발바닥을 동동거리듯 굴리며 안방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가 험난했던 바깥 화장실 여정을 다녀온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손주를 따듯하게 재우려고 아낌없이 켜 둔 보일러 덕분에 디딘 바닥은 따듯함을 너머 뜨끈뜨끈했다.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델 정도다. 나는 얼른 추운 몸을 녹이려고 이불을 파고들었다. 속이 편하고 등이 따듯하니 추위 속을 오가며 깨었던 몸도 금세 나른해졌다.
외할머니는 꽤 오래 그 집에서 사셨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잠시 더 열악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가-그곳은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한 층의 세 가구가 하나의 화장실을 썼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이제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화장실에서 누가 볼까 걱정하는 것도 없이 볼일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화장실에 갈 때 들었던 어떤 들뜬 긴장감 또한 사라져 버린 건 뜻밖에도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어느샌가 내게 바깥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모험처럼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외할머니 집에 방문하는 재미를 잃어버리면서 점차 발길을 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