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놀이(1) - 놀이터
지금은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시간 확인은 물론 옆에 없어도 실시간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시대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모인다는 게 당연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실내에서 쾌적하게 놀 공간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기껏해야 학교와 집 사이에 오락실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의 오락실처럼 쾌적하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당시 오락실은 어딜 가도 어두침침하고 불건전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던 공간이었다. 실제로 불량 학생들이나 건들거리는 어른들이 자주 드나들기도 했었다. CCTV라는 게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서 대놓고 돈을 갈취하는 사람도 많았다.
고작 10살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번쩍거리는 화면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오락실 앞을 지나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간식을 사 먹으면 10분이면 사라지지만 오락실에 같은 돈을 쓰면 한 시간은 거뜬히 놀 수 있었다. 적지만 소중했던 용돈을 어떻게 알차게 쓸지 궁리하는 것 자체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돈을 뺏기기 싫어 출입구에서 형, 누나들이 없는지 힐끔 거린 뒤에 즐기는 오락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렇게 게임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샌가 오후 수업을 마치고 오락실에 들른 고학년 선배들이 당당하게 '100원만 줘 봐'하고 겁박을 놓곤 했다. 더 많이 내놓으라 할까 봐 주머니 속 동전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스레 하나만 꺼내주는 건 오락실을 이용하는 약자로서 필히 가져야 할 기술이었다.
매일같이 드나들고 싶던 오락실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락실의 수많은 게임들이 비슷한 인기를 누린 게 아니어서 인기 있는 오락은 여러 대 설치되었고 비인기 오락은 하나씩 구색만 갖춰 들어와 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에 용돈이 어느 정도 투입되고 나면-엔딩을 몇 차례 보거나 내 실력으로 도달가능한 스테이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지겨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오락이 들어올 때까지 오락실에 저절로 발길을 끊게 되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동네 놀이터였다. 아파트 단지마다 놀이터의 규모도 시설도 비슷했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의 인기를 끄는 놀이터들이 몇 군데 정해져 있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 놀이터도 인기를 누렸던 곳 중 하나였다. 아마도 가까이에 화장실과 군것질거리를 많이 파는 작은 마트가 인접해 있던 게 이 놀이터가 인기를 끌었던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궂은 날씨가 아니면 놀이터는 늘 아이들로 붐볐다. 지금처럼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와 있을 시간이 없던 시대도 아니어서 공부의 잘함과 못함을 떠나 모든 아이들이 섞여 어울렸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과도 아무렇지 않게 어울렸었다. 지역마다 이름은 다르겠지만 옥상탈출이나 팔방놀이와 같은 놀이들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쉽게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매번 모일 때마다 규칙이 바뀌는데도 아이들은 그 변화하는 규칙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미끄럼틀에 올라갈 땐 눈을 감아야 한다든지, 미끄럼틀 계단의 몇 단까지는 눈을 떠도 된다든지, 술래가 아닌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벗어나면 세 걸음만 디딜 수 있다는 규칙들은 신기하게도 매 번 모일 때마다 규칙이 달랐다. 어제 함께 놀았던 멤버가 오늘 그대로 모여도 규칙이 조금씩 틀어지곤 했는데, 아마 해당 놀이의 큰 틀에서 우리끼리의 약속을 잘 지켜 논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규칙이 바뀌는 것에 큰 저항감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몇 시부터 모여서 이 놀이를 즐기자'와 같은 게 없다 보니 놀이터에 먼저 도착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혹은 학교에서부터 서넛이 모여 놀이터에 가기도 했다. 놀이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이 모이면 놀이가 시작되고 혼자 왔던 아이들이 그 놀이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자기네들끼리 놀고 싶어서 사람이 적은 놀이터로 곧장 가버렸을 땐 홀로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 못 끼어들기도 했었다.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규칙과 술래를 정한다. 그 후 모두가 순서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심판이 없는데 누구도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땅을 디딜 때 규칙보다 한 걸음 더 걷는다든지, 몰래 실눈을 뜬다든지 하는 일이 없다. 누군가 이 규칙을 어기는 순간 놀이가 파투 날 것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은연중에 알고 있어서였을까. 행여 어겼을 때 누가 지목하기라도 하면 창피당할까 봐 그랬을까. 아무튼, 모두가 서로 정한 규칙을 잘 지켜준 덕분에 늘 즐겁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놀다 보면 목마름이 불쑥 찾아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자기 움직임이 느릿해지면 술래가 하기 싫었던 녀석이 마침 이때다 싶어 마실 것을 사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러면 놀던 분위기가 흐지부지 정리되면서 마실 것을 사러 가고 싶은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로 나뉘었다. 대개 돈이 있는 아이들이 군것질을 하러 가고 싶어 했다. 주머니 속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마실 것에 과자까지 살 수 있었던 때였다. 용돈이 없던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너희들끼리 갔다 와.'라고 말하면 천 원을 갖고 있던 아이가 네 것도 사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말해주었다. 그걸 말해주는 아이들의 마음은 천 원으로 다른 아이들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맛을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시간에 같은 놀이를 즐겼다는 것에서 샘솟은 순수한 연대감이었다.
놀이터에서 걸어서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아이들에겐 불량식품을, 어른들에겐 담배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간판에 적힌 정식 명칭은 '할인 마트'였지만 그곳을 정확하게 부르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 먹으러 가자'라는 말이면 모두가 그 할인 마트를 떠올렸다. 주위에 다른 마트가 두 개나 더 있었음에도 나를 포함한 또래들이 그곳을 곧장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서넛이 군것질할 거리를 파는 곳은 이 '할인 마트'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주인아저씨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우리를 감시했다. 아이들이 툭하면 사탕이나 젤리를 훔쳐가다 보니 이렇게 떼로 몰려올 때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태도였다. 훔칠 생각 따위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인데 당당히 돈을 주고 사 먹을 생각만으로도 으쓱해지곤 했다.
할인 마트는 우리에게 천국이었다. 천 원이 어른들에겐 큰돈은 아니었을 테지만 백 원짜리 군것질만 눈에 들어오던 우리들에겐 큰돈이었다. 과일맛이 나는 캐러멜과 젤리부터 영어나 중국어로 쓰여 뭐라 읽어야 할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과자들이 모두 하나에 백 원이었다. 투명한 고무 튜브에 두 모금 정도 담긴 색이 선명한 과일맛 액체도 백 원이었다. 과자와 달리 아무런 성분 표시도 없이 그저 과일 모양의 튜브와 그 모양에 맞는 색깔의 액체가 담긴 것으로 맛을 추측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그걸 잘도 사 먹었구나 싶다. 아무튼 목이 마른 아이들은 과일맛 액체를, 배가 출출한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양이 많아 보이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천 원을 탈탈 털어 각자 손에 쥔 것을 먹으며 놀이터로 돌아가면 에너지 드링크라도 마신 것처럼 체력을 회복하고서는 다시 놀이에 뛰어들었다. 개중에 주도적인 아이가 개뼉다구, 땅따먹기, 그네 멀리뛰기 같은 것들을 언급하면 갑자기 하나의 놀이에 말이 모아지고 우리는 자연스레 다시 술래를 정하고 흙바닥을 뒹굴었다.
휴대폰이 사치품에 가까웠던 시절이라 거의 모든 아이들이 휴대폰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건물 안에 걸린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해야만 했었다. 몇 시까지 집에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말을 어기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시간에 되게 신경 쓰며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러 왔다 갔다 하다가도 금세 놀이에 빠져버려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놀곤 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엄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OO아, 밥 먹어라!'라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해산시키던 알람시계와 같았다. 그게 우리 엄마가 되었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시간도 상관없었다. 놀이터를 향한 엄마들의 목소리에는 이 모든 것을 단칼에 종결지어버리는 어떤 힘이 있었다.
호명당한 아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남음 아이들끼리 더 놀 수 있음에도 희한하게 모두가 동시에 스위치가 내려진 것처럼 '이제 집에 가자'는 말이 나왔다. 혹은 그런 뉘앙스를 온몸으로 풍겼다.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아이는 없었다. 더 놀자고 떼를 써도 혼자 남을 뿐이었다.
그렇게 놀이는 정리되지 않고 모두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 엄마의 외침으로-그것이 종종 우리 엄마이기도 했다- 우리는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집에선 엄마가 한창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고, 식탁 위엔 이미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 구이와 계란찜이 차려져 있다. 압력 밥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김을 내뿜었다.
"씻고 저녁 먹자."
엄마의 말에 떠밀리듯 샤워를 하면, 놀이터에 남아있는 더 놀고 싶은 마음까지 씻겨 나갔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게도 내일 똑같이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