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갑자기 증세가 악화된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급격하게 병세가 진행된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나를 추궁했고 나는 솔직하게 약 복용을 몇 번 걸렀던 것과 술을 두 번 마셨던 것을 이실직고했다. 약을 제 때 먹이지 않은 것보다 술을 마시게 했다는 것을 크게 문제 삼았다. 알코올 치매가 아니더라도 알코올이 뇌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 자리에서 심하게 꾸중을 했다. 나는 잘못한 어린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옆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입을 꾹 다고 있었다. 그래선지 의사도 나를 보며 계속 말을 했다.
"죄송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치매 진행은 되돌릴 수 없단 말입니다. 아버님이 술을 마시려 할 땐 당연히 말리셨어야죠. 그걸 넙죽 받아주고 같이 마시기까지 했다니 기가 막힙니다."
막상 치매가 악화된 상태를 마주하자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 드리겠다는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아버지의 기억이 더 천천히 사그라들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정답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의사가 처방전을 접수처로 보내기까지의 10분 정도 잔소리를 더 들은 뒤에 약 꼭 잘 챙겨 드시라는 말을 끝으로 진료실에서 풀려났다. 그 순간 아버지의 위중을 잠시 잊고 간의 해방감마저 느꼈다. 아버지는 잔소리가 귀에 앉았다는 듯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귀를 후벼 팠다.
5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엄마의 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장을 핑계로 분가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에게 엄마의 유품 몇 개만 챙기고 함께 이사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이사하는 것도 일이고 돈이라면서 이 집에 머물겠다고 했다. 혼자 살기엔 평수도 넓고 방도 너무 많아서 허전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그저 웃고 넘기셨다.
5년을 아버지 집에 가지 않았다. 갈 일이나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 생신은 용돈을 보내드렸고 내 생일 땐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자리하는 걸 피했다. 명절 땐 적당한 가격대의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걸로 끝냈다. 이외에도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아버지의 집에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처음엔 그것이 엄마의 흔적으로부터 도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 보니 그런 이유로 가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와 사적인 공간에 단 둘이 남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30년간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내온 부자(父子)의 관계란 한 공간에서 숨만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비틀리는 듯한 불편함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아버지의 간병을 이유로 아버지의 집에 방문했다. 걱정과는 달리 나는 무사히 현관을 통과했다. 오히려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순간적으로 5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 탓이었다. 그동안 이 집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하고 소리칠 뻔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물건을 버리기는커녕 정리조차 하지 않고 지내셨던 것 같았다. 엄마가 퇴원하실 때 신었던 검은색 단화가 신발장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날 걸쳤던 먹색 카디건도 거실 모서리 수직 옷걸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주기적으로 먼지를 털어주었는지 그 흔적들이 마치 방금 돌아온 사람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차린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했다.
"내버려 둬도 딱히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더라고."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두고 살아요. 버리진 못해도 정리는 하셨어야죠."
내가 옷걸이에 걸린 엄마의 옷을 걷으려 하자 아버지가 소리쳤다.
"내버려 두래도!"
나는 깜짝 놀라 카디건 옷깃을 잡은 채 멈췄다.
"내가, 내가 때 되면 정리할 테니까 아무것도 손대지 마라."
아버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는 잡았던 옷깃을 놓았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네 엄마 물건은 웬만하면 손대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주로 장기를 두거나 낱말 연상 퀴즈를 했다. 치매에 걸리셨어도 장기를 두는 능력을 잃은 건 아니셨는지 차(車)와 포(包)를 하나씩 떼주셨는데도 상대가 되질 않았다. 나는 내가 둘 수(手)만 계산해 가며 세네 수 정도 앞서 두었다면 아버지는 나의 수를 읽으면서 네다섯 수를 앞서 두셨다. 내 장기 말이 어떻게 공격하는지만 보다가 아버지 장기 말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혔다. 당황하다 보면 어느새 말의 개수가 역전되었고 게임은 기울어져 있었다. 내 또래 사이에서는 장기를 꽤 잘 두는 편이었는데 아버지 앞에선 어림도 없었다. 장기의 룰 정도만 겨우 알던 녀석들과 두면서 나 자신이 잘하는 줄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었다. 아버지도 너무 쉽게 이기는 것에 흥미가 떨어지셨는지 마(馬)도 하나 더 떼어주신다고 하셨는데 자존심이 상해 수락하지 못했다.
반대로 낱말 연상 퀴즈에서 아버지는 매우 고전하셨다.
"돼지, 닭, 소, 오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고기'나 '동물'과 같은 쉬운 답을 가진 퀴즈조차도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때로는 정답이 아닌 단어를 정답인 것처럼 확신하듯 대답할 때도 있었다. 내가 단어를 바로 잡아주면 아버지는 잊었던 걸 떠올렸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잊어버렸다. 미끼를 미리라고 부른 것처럼 한 번 상실한 단어는 아버지의 머릿속에 다시는 자리잡지 못했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미끼'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발'도 '열쇠'도 '좋다'도 '맵다'도 아버지의 세계에서 완전히 상실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들도 곳곳이 하얗게 지워졌겠지. 그래도 다행히 의미를 상실하는 건 아니어서 에둘러 표현을 하거나 틀리게 말할 순 있었다.
30분가량 낱말 연상 퀴즈가 끝나면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나씩 사라져 가는 아버지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밥 차려먹는 것도 귀찮은데 오늘은 자전거나 시켜 먹자."
나는 눈치껏 그것을 자장면으로 알아차리고 중국집에 전화해 자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작은 것을 주문했다. 자, 장, 면 두 그릇이요, 하고 일부러 또박또박 끊어 말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자장면을 자전거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배달 음식을 식탁에 펼쳐 놓고 자장면을 크게 한 젓가락 퍼서 입에 떠 넣었다.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면서 내가 온 덕분에 저녁엔 입맛이 돋는다는 말을 하셨다.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이면 아버지는 늘 그 말씀을 하셨다. 볼 때마다 그 말을 해왔던 자신을 잊어버린 건지, 매번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식탁 한편에는 연갈색 밥상보가 단정하게 말려있었다. 엄마가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줄 수 없었을 때 항상 이 밥상보가 펼쳐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구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부추전이 항상 들어있었다. 둘 모두 사족을 못쓰는 계란말이도 넉넉하게 들어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혼자 또는 각자 그 반찬들과 냉장고에 들어있는 김치, 그리고 남은 국을 데워 먹었다.
지금도 딱히 철이 든 건 아니지만, 당시의 나는 더욱 철이 없게도 엄마가 외출하기만을 바랐다. 평소에 먹기 싫은 나물반찬 대신 소시지만 먹고 싶었다.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밥대신 넓적한 부추전에 막걸리 한 병을 곁들이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친구들과 연락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밥을 먹었고 아버지는 인터넷 뉴스를 보며 먹거나 TV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야구를 보며 먹었다.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늘게 이어져 있던 연결마저 함께 사라졌다.
이제 밥상보를 엎어줄 사람도 없는데 아버지는 왜 저걸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계신 걸까. 그러면서 문득, 아버지가 생각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와 아버지가 알고 있는 엄마는 과연 같은 사람이었을까.
"아버지."
아버지가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나를 쳐다봤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너희 엄마?"
아버지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괜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건드린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뿐이었다.
"늘 연인 같은 사람이었지."
아버지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했다. 내겐 엄마였지만, 아버지에겐 여자였던 존재. 아버지를 통해 듣는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엄마는 부지런하고 사람이었지 이성으로서 예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엄마라는 속성 안에 '예쁜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었다. 가족을 향한 아름다움은 타인을 향한 아름다움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성으로서 아름다움은 엄마가 아닌, 또래 여자 아이들이나 젊은 여자 선생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엄마는 여전히 연인이었다. 가족이 되면서 바뀐 배우자가 아니었다. 특히 내가 사춘기를 겪으며 밖으로 방황하는 동안 두 분은 많은 애정행각을 나누었다고 한다. 나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또래와 놀기 위해 부모님을 의도적으로 피했었는데 정작 두 분은 내가 나간 시간에 그들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우린 늘 연인 같았어. 남들은 결혼생활이 10년이 넘어가면 사랑은 식고 정으로 한다고 했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땐 손을 잡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입을 맞추고 그랬지. 밥을 먹을 때 서로의 발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지. 너는 몰랐을 테지만."
과거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아버지가 숟가락을 멈추고 움찔했던 적이 여러 번 있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아버지가 이가 불편해 그런 거라고 짐작하고 넘어갔었는데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둘만의 소소한 애정행각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늘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었냐. 생각해 봐라. 언제 어느 때고 집에 들어왔을 때 네 엄마가 반겨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니 엄마는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가족을 한결같이 반겨주셨다.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밖에서 별일 없었는지를 묻는 건 반김 뒤에 늘 따라오는 패키지 상품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밥 좀 부탁해'라고 하거나, '오늘 별일 없었어, 밥은 먹었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버지의 대답에 맞게 다음 행동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순종적인 모습이 싫었다.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왜 저렇게 모시듯 사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 언제 적 가부장적 권위냐 생각했지?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니까. 넌 표정에서 네 감정이 너무 티가 나. 사회생활 하려면 숨길 줄도 알아야 해. 내가 네 엄마에게 그러라고 한 적 없다. 네 엄마는 그저 다정한 사람이었어.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듯하고 편안한 곳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야. 가부장제에 짓눌려 나온 행동이 아니란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도 했었어. 그때 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왔을 때 다정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가족이 무슨 소용이야. 나는 당신이 가족 안에서는 좋은 감정만 느끼면 좋겠어'라고 말하더라. 밖에서 일이며 사람이며 온갖 것에 치여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치유받는 기분이었어."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반겨주면 나는 짜증부터 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성질을 내며 방문을 소리 나게 닫은 적도 있었다. 정작 알아서 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땐 그런 관심에서 벗어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원해도 가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엄마가 보여준 다정함의 부재는 아버지의 집에 올 때마다 조금씩 뚜렷해졌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들은 그런 마음을 더 짙게 만들었다. 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왔어? 밥은 먹었니?'하고 엄마가 잰걸음으로 뛰쳐나와 반겨줄 것만 같았다. 이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마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라는 존재는 쉽게 마음속에 묻고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엄마!'하고 외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왔는데 왜 반겨주지 않느냐고 투정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가 엄마에 대해 얘기해 줄 땐 치매환자라고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을 유려하게 했다. 사라지는 단어와 기억들 사이에서도 엄마에 대한 것들은 철옹성처럼 지켜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지 않도록 매일같이 물었다. 엄마의 단화, 엄마의 카디건, 엄마의 밥상보.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들은 단순히 엄마의 흔적이 남은 물건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두 사람 몫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치우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의 흔적뿐 아니라 거기에 담긴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정리되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그 물건을 치우려 할 때 소리를 지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아버지의 집에서 함부로 물건을 만지지 않았다. 그저 장기를 두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낱말 연상 퀴즈를 한다. 종종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아버지가 말을 많이 더듬을 때면 엄마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그렇게 또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새해 인사라는 다소 어색한 안부를 전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갔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는 철옹성이 무너져 내린 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