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당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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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9시에 맞춰 둔 알람에 곧바로 눈을 떴다. 편하지 않은 침대에서의 이틀째 숙박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오늘은 내가 아버지에게 해장국이라도 해드려야지 싶어 신음을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나의 희망사항은 맞은편 아버지의 침대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증발해 버렸다.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도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앉아 계셨다. 나도 의자 하나를 가져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어제와 달리 아버지의 표정에 숙취와 피로가 가득했다.


"더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7시만 되면 눈이 떠지는 걸 어떡하냐.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픈데 눈이 번쩍 떠지더라. 오랜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아버지는 방금 일어난 사람처럼 잘 떠지지 않아 실눈을 뜬 채 헛헛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몸 상태도 나의 몸 상태도 도저히 식당까지 갈 상태가 아닌 듯해서 해장국 두 그릇을 배달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믹스커피 한 잔씩 나눠 마셨다. 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이나 음식이 으레 그렇듯이 피곤한 아침 빈 속에 마시는 커피는 입에 착 감겼다.

종이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무릎에 팔꿈치를 댄 채 멍하니 구부정하게 앉아 멍하니 강을 응시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 한편이 시큰해졌다. 절대 작은 체격이 아님에도 오늘 아버지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커피를 홀짝이기 위해 종이컵을 입에 대고 기울일 때마다 조금씩 떨리는 손이 애처로웠다. 어디서 생긴 지 모를 크고 작은 생채기가 아문 흔적들이 손등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 곁에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널뛰었다.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는지 몰랐던 것처럼,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사흘 동안 함께하면서 마주했던 것들은 모두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잘 구운 고기를 내밀며 으쓱하는 모습, 라면을 끓이던 모습, 갯지렁이를 능숙하게 끼우던 모습, 진탕이 되도록 마셔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붙잡는 모습, 그럼에도 늘 규칙적으로 일어나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모습. 하지만 늘 내가 힘들거나 감정적으로 무너지려고 할 땐 거대한 고목처럼 곁에서 지켜주던 모습까지.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엄하고 가족들과 말을 잘 섞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는 아버지로 평생 기억했을 것이다.


"저희 오늘 여기 정리하고 이동해야 하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하고 싶은 걸 하러 가요."

"낚시도 했고 아들 녀석이랑 고기도 구워 먹었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여긴 제가 오자고 해서 온 거잖아요. 낚시 말고 좋아하시는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아버지랑 같이 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모르겠다."


그 말이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며 울렸다. 모르겠다니. 아버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장소에 그 물건을 갖다 놓으면 그제야 잊고 있었던 자신의 취미가 떠오르는 그런 사람. 일만 해왔던 남자들이 퇴직 후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겪는다는 어떤 우울감이 아버지에게도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서 하나씩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럼 바다부터 가보죠."


강을 따라 차로 2시간 거리에 동해바다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 좋을 대로 하라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창문을 열고 달리기에 날이 적당해서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바다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처음 글램핑장에 올 때처럼 차 안에서는 적막이 흘렀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돌 가요 대신 '정오의 투데이'라는 라디오방송이 막 오프닝 멘트를 하며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 안녕하세요, 정오의 투데이 MC 김성우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로 청취자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삶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는 거잖아요. 비슷할 순 있지만 똑같을 순 없는 것이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위로를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첫 번째 사연으로 바로 들어가 볼까요.


전화가 연결되고 준비된 멘트처럼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사연이 이어졌다. 마흔이 된 딸이 집에서 아픈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겨우 1년 간병을 했을 뿐인데 너무 힘들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질기고도 끈끈한 정 때문에 간병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나의 삶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자는 시작할 때부터 목소리가 울먹하더니 중간 즈음부터는 사연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회자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청취자들이 사연을 이해하도록 내용을 정리해 얘기했다. 나도 1년쯤 아버지와 함께하면 저런 마음이 들까. 아버지로 인해 내 삶의 균형이 무너 저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운전을 하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MC가 내용을 정리해 말하는 것을 듣던 도중 라디오를 꺼버렸다.


"여행하는데 이런 우울한 걸 듣고 그래. 전에 네가 틀었던 노래 좀 다시 틀어 봐라. 가……."


아버지가 말을 멈췄다. 아버지가 말을 멈추면 나도 심장이 덜썩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정면을 응시하며 블루투스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가 휴대폰과 연결되며 가요 차트가 흘러나오고 둘 사이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가요'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셨던 거였다. 어제 술을 많이 드신 것 때문에 잊어버리는 속도가 빨라진 건지, 약을 먹지 않아 그런 건지, 그저 오늘은 이만큼 진행될 예정이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불쑥 잊어버리실 때마다 나는 불쑥 찾아오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두 시간 만에 도착한 바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여름에 해수욕장으로 이용될 때를 말고는 찾는 사람이 없는 곳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의 끝까지 걸은 뒤에 되돌아 걸었다. 참다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어떡하실 거예요?"


내가 생각해도 대책 없는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든 내가 거기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그랬을까. 미래가 쪼그라들고 그러다 현실을 집어삼키고 종국에는 과거에만 머물게 되는 치매 앞에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결국 아버지가 다 짊어져야 할 것들인데.


"지금처럼 살겠지. 씻고, 밥 먹고, 은퇴한 친구 녀석들도 만나고, 종종 아들놈 불러 고기나 사달라고 하고."


아버지가 장난스레 웃었다. 다시는 꺼낼 수 없는 어두운 분위기로 빠지기 전에 끄집어 내주는 것은 매번 아버지 쪽이었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 어떤 연유로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한쪽이 져주듯 웃으며 한발 물러서 주는 것을 여기까지 오는 내내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여행이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내 욕구 충족의 장으로 변질되어선 안되었다. 나는 등허리를 펴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언제든지 불러요. 고기쯤이야 백 번이고 사 줄 수 있어요. 이래 봬도 아들이 전 직장에서 돈 잘 벌었어요."


내 말에 아버지가 '그렇냐'면서 귀여운 강아지 보는 듯한 표정 지으셨다.

우리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한적한 시기여서 그런지 당일에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2층으로 된 민박집이었는데 주인장이 2층에서는 바다가 더 잘 보인다며 추천하길래 2층에서 묵기로 했다. 주인장의 말대로 2층 창문에서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해풍을 막아주는 가로수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수평선이 보였다.

가까운 슈퍼마켓에 들려 저녁 찬거리와 고기를 샀다. 아버지는 중요한 것인 마냥 소주도 네 병 담았다. 자꾸 드시면 안 된다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차라리 기분 좋게 어울려주자고 마음먹었다. 이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는 걸 말을 하기 전에 계속 상기했다. 아버지는 내일 조금 덜 잊는 것보다 오늘 아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일 터였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대로 따라주기로 했다.

아버지가 고기를 구우면 나는 술잔을 채워주고 쌈을 싸 먹여 드렸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취기가 오른 그대로 내게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아들이랑 같이 마시는 술이 이렇게 좋구나."

"앞으로도 자주 마셔요."


아버지가 내미는 잔에 내 술잔을 부딪히며 그렇게 답했다.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셨고 나도 따라 크게 웃었다. 이렇게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밤이 지나갔다.




치매라는 병은 경사진 내리막길이 아니라 폭이 높은 계단과 같았다. 하나씩 천천히 잊히는 것이 아니라 덜컥하며 뭉텅이로 사라진다.

아버지가 어젯밤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저께 횟집에서 마신 것보다 훨씬 덜했기에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한 것까진 기억하는데 그 뒤로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이미 기억하고 있었던 언어도 잃으셨다. 어제의 일을 설명하면서 계속 말을 더듬거나 단어를 잘못 말했다.


"어제 우리가 고…… 고리를 사 와서 굽기 시작했던 것까지만 기억이나. 고…… 고리를 굽고 그다음이 기억이 안 나. 내가 먹었는지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 기억이 안 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 그래요. 어제 얼마나 많이 마셨는데요."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계속 떠올리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불안해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아버지의 상태로 보아 더 여행을 하는 것은 무리로 여겨져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동안 아버지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끝내 어젯밤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기억을 잃은 사건은 그날 이후 반복적으로 찾아오지 않았지만 실어증과 그것이 동반하는 의미 착어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아버지는 자주 말을 더듬으셨고 자주 다른 단어를 내뱉었다. 그리고 단어를 상실하는 만큼 몸도 야위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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