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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찾아오는 것도, 잊고 있다 찾아오면 불청객이 될 수 있다. 실어증이 동반하는 의미 착어증을 의사에게 이론적으로 듣는 것과 실제 그것을 처음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치매는 거스를 수 없는 진짜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멈췄던 손을 움직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미끼를 마저 끼우셨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낚싯대를 건네는데도 내가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참지 못한 아버지가 내 팔을 때리듯 잡아챘다.
"받아라."
아버지는 조금 전 자신의 머리에서 일어난 일 같은 건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로 건네는 낚싯대를 받았다. 아버지는 낚싯대를 던지는 방법을 알려줬다. 어떻게 던져야 바늘이 옷이나 다른 곳에 걸리지 않고 멀리 잘 날아가는지 몸소 보여주는데도 내 귀와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 너도 해봐라."
나는 출처가 불분명한, 어디선가 봤던 낚싯대 던지는 아무개의 모습을 떠올리고 어설프게 따라 했다. 낚시 바늘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코앞에 빠졌다. 아버지가 한심하게 쳐다보며 내 낚싯대를 잡고 낚싯줄을 되감았다.
"딴생각은 이따가 하고 지금은 낚시에 집중해."
아버지가 다시 한번 낚싯대를 던지는 시범을 보여줬다. 갯지렁이가 달린 낚시 바늘이 하늘을 가르며 저 멀리까지 날아가 강에 빠졌다.
우리는 낚싯대를 바닥에 고정시키고 그 옆에 접이식 낮은 의자를 펴고 앉았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낚싯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낚싯대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낚싯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병원에서 원장이 했던 말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치매라는 게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요. 검사 결과를 보니까 이미 꽤 진행되었더군요. 모르셨다면 아직까지 경미한 증상이라 잘 숨겼던 건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라도 약 잘 챙겨드시고, 가능하면 대화도 많이 하세요. 단어 연상 게임 같은 거 많이 하시면 좋고요."
의사가 한숨 돌리고 말을 이었다.
"작년에 분명 건강 검진 때 증상이 나타나셨을 텐데 왜 치료를 바로 안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요즘은 약물 치료만으로도 진행을 억제하거나 많이 미룰 수 있거든요. 이만큼 진행되어 버리면 치료가 힘들어요."
아버지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정밀검사를 받으러 대학 병원에 갔을 때의 아버지의 반응은 이제야 치매를 알게 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의사는 아버지를 잠시 내보내고 보호자인 나와 단 둘이 남았을 때 아버지의 병이 최소한 작년부터 나타났을 거라고 말했다. 왜 치료받지 않고 내버려 뒀는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숨겨온 것을 보면 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을 것 같아 선뜻 물을 수도 없었다.
"뭐 하냐, 어서 낚아 올리지 않고!"
크게 흔들거리는 내 낚싯대를 아버지가 다가와 움켜쥐었다. 나도 손잡이를 같이 쥐었다. 큰 놈인지 힘이 장사였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낚싯대만 잡은 채 당황해하자 아버지가 능숙하게 낚싯줄을 풀었다 감으며 힘싸움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빛을 띤 커다란 잉어가 강 위로 올라왔다. 내 손목 길이보다 큰 녀석이었다.
"오늘 이거 한 마리 끓여다가 소주랑 먹으면 딱이겠는데?"
아버지가 낚인 잉어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태클박스에 담긴 잉어는 좁아진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경질적으로 파닥거렸다. 아버지는 빈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다시 끼워주셨다.
"이번엔 네가 직접 잡아 올려라."
큼직한 첫 잉어를 잡아 기대에 들뜬 것과 달리 우리 둘은 돌아갈 때까지 두 번째 손맛은 보지 못했다.
낚시를 하는 동안 아버지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묻고 싶었다. 내가 가진 돈에는 한계가 있고, 돈을 떠나서 언제까지고 아버지 옆에만 머물 순 없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때가 올 테고, 내가 가정을 꾸리면 그것을 우선 보살펴야 할 때가 올 터였다. 치매는 흔히 아는 암과 달리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 아니었기에 장시간 아버지를 캐어해 줄 사람이 분명 필요해질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까. 아버지의 퇴직금과 연금으로 치매요양보호사를 고용하라고 하거나 전문 시설에 들어가라고 하기엔 자식 된 도리로서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여 시간이 다 되어 낚싯대를 정리했다. 아버지는 잉어를 손질해 끓여 먹자고 하셔 놓고는 정작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다시 강에 방생했다.
"내가 손질할 줄 모르는데 너라고 할 수 있겠냐. 그냥 식당 가서 한 잔 하자."
손에 닿는 건 뭐든 뚝딱 해치우셔서 생선 손질도 잘하실 줄로만 알았다.
우리는 인근 횟집에 들어갔다.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시면 상차림비만받고 손질해 준다는 문구를 보고 아버지와 내가 서로 마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잉어회와 잉어 매운탕을 주문했다. 정갈하게 손질된 회가 빠르게 먼저 나왔고, 매운탕은 회를 반쯤 먹었을 때 나올 거라고 식당 주인이 안내했다. 아버지는 함께 주문한 소주를 딴 뒤 내게 잔을 내밀었다.
"약 드시잖아요. 게다가……."
"나도 안다. 치매에 술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까 한 잔 받아라."
나는 하는 수 없이 잔을 받았다. 내 잔을 따라 준 뒤 아버지가 소주병을 내게 건넸다. 나는 말없이 소주병을 받아 아버지의 잔에 따라 드렸다.
"이 맛있는 걸 먹는데 소주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아버지는 너무나도 맛있게 소주와 회를 드셨다.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내게 내밀었고 나는 쉴 새 없이 아버지의 잔을 채워드렸다. 아버지는 술을 정말 잘 드셨다. 두 병 째 절반쯤 드셨을 때부터 취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지만 아버지는 말이 꼬인다든지 목소리가 커진다든지 하는 술버릇이 전혀 없으셨다. 취기를 의지로 억누르는 듯했다.
"이렇게 마시고도 왜 안 취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인데, 너도 이 나이 되어보면 다 알게 된다. 취하고 싶어도 못 취해. 안 취하는 게 아니고 못 취하는 거다. 취해서 까딱 실수했다간 딱!"
아버지가 엄지만 편 주먹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회사 생활이란 게 그런 거야. 세상이 바뀌어도 회사에서 가장 쉽게 살아남는 방법은 술자리에서 잘 보이는 거야. 일터에서는 다 열심히 해. 서로 지켜보니까. 돈 받고 하는 거니까. 근데 밖에 나오면 돈을 안 줘. 근데 내 시간을 써야 해. 시간이 곧 충성심인거지. 나보다 높은 사람 고기 구워주고 술 따라주고 대리 잡아주는데 투자한 시간만큼 회사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거야. 요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 회사 내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인정받을 것 같지? 한국 사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겨들을게요."
나는 웃으며 아버지가 내미는 잔에 내 잔을 부딪혔다.
"네가 무슨 걱정하는지 다 안다. 부모는 자식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한테 피해 주는 일 없을 거다."
아버지가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세 병 째 소주를 따 아버지의 잔을 채워드렸다.
"제가 무슨 걱정을 한다 그래요."
"아까도 말했잖냐. 이 나이 되어보면 다 알게 된다. 자식 놈이 무슨 걱정하는지도 다 알게 된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세 번째 병도 다 드시고 나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음식을 꽤 많이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술과 함께 먹어서 그런지 싹 비웠다. 나는 가게 주인에게 대리기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여긴 주말 아니면 오는 사람이 없어서 대리 기사도 없어요. 택시 불러드릴게요. 차는 여기 두고 갔다가 내일 다시 찾으러 와요."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취기가 많이 올라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의자에 기대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업어 택시에 태웠다. 아버지는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에서도 엄한 소리를 하거나 몸부림을 치는 일이 없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정신력이 보일 정도였다.
숙소로 돌아와 아버지를 침대에 눕힌 뒤 신발과 양말을 벗겼다. 몇 잔 마시지 않은 나는 씻고 옷까지 갈아입었다. 소등을 하고 침대에 누우니 아버지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말처럼 하지 못하고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