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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핑장에서 아버지와 보낸 첫날밤은 시간이 지나서도 잊을 수 없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진솔하게, 가장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정정하셨던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날 이후로 조금씩 증상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모닥불을 좋아한다며 장작을 네 더미나 주문했다. 사장님은 이렇게 많이 주문하는 손님은 처음이라며 당황해하면서도 물건이 많이 팔리는 것에 미소가 가득했다. 한 더미에 한 시간, 우리는 총 네 시간의 모닥불을 구매한 셈이었다.
아버지는 벽돌로 둘러친 모닥불용 화로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 네 개를 서로의 끝이 만나도록 쌓은 뒤에 토치로 불을 붙였다. 부탄가스 머리에 토치를 끼우고 화력을 조절하며 불을 붙이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내가 친구들을 만난다고 집을 비우던 시절에 아버지는 이런 걸 배우셨던 걸까. 아니면 가끔 회사에서 야유회가 있다며 외박을 하실 때 아버지가 불을 피우는 역할을 맡으셨던 걸까. 내가 아버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아버지는 더 많은 걸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숙소 옆에 접힌 캠핑 의자를 가져와 모닥불 앞에 펼치고 앉았다. 10월의 밤은 기분 좋게 선선했고 적당히 떨어진 모닥불은 기분 좋게 따듯했다. 영영 어색할 것 같았던 아버지와 내가 가까워진 것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선선함과 따스함이 기분 좋게 공존했다.
아버지가 점점 짧아지는 장작 더미 속으로 새 장작을 두 개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들하고 단 둘이서 여행을 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새로 넣은 장작이 너무 빨리 타지 않게 적당히 위치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반사되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이 없는 건 아닌데, 내 기억 속 아버지보다 2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봤는데, 분명 그땐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는데 오늘 자세히 보니 아버지의 나이에 맞는 얼굴을 갖고 계셨다. 깊게 파인 팔자 주름, 절반은 하얘진 눈썹, 처진 눈매, 곳곳에 크레이터처럼 패인 피부까지 아버지는 완연한 노인이었다.
"아쉽진 않냐?"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둔 것에 대해 물었다. 직장을 그만둔 당시에 들었어야 할 질문을 이제야 듣는다. 아버지는 평생 나를 봐왔으면서도 어떻게 대화를 열어야 할지 몰라 어색한 것이다.
"이번에 미루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아버지는 누가 보더라도 치매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치매라는 게 언제 심해질지 모른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갈 즈음에는 여행은커녕 아버지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으세요?"
"뭘 말이냐?"
"정년까지만 하고 그만두셔도 되셨잖아요. 그런데 5년이나 더 연장하시고."
"책임감이지. 회사를 위해 내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줬다는 책임감. 그리고 가족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마지막까지 짊어졌다는 책임감이지. 그런데 요즘 애들은 우리 같이 근성이 없어. 조금만 다니다 힘들면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전 금방 재취업할 거예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투덜거림에 내가 변명하듯 말하자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네 얘긴 아니다. 내 자식이라 칭찬하는 게 아니고, 넌 정말로 요즘 애들과 다르니까 하는 말이야. 아무튼 후회는 없다. 오히려 끝까지 다닐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일찍 그만두고 나오면 치킨집 밖에 더 하겠냐. 치킨 튀기는 것보다 내 자리에 앉아서 내가 잘하는 일을 더 할 수 있는 게 좋은 거지. 돈 벌어오느라 너와 아내에게 소홀했는데 일찍 퇴직해서 집구석에 틀어박혀 남편, 아버지 대접해 달라고 어떻게 하겠냐. 내 정체성이 회사에만 존재했던 거야. 오히려 정년퇴직 후가 더 걱정이었다. 집에 있긴 눈치 보이고, 뭔가 새로 시작하기엔 두렵고. 아마 내 또래 퇴직한 남자들은 다 비슷한 고민을 할 거다. 그런데 치매 판정을 받고 아들 녀석이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니 얼마나 좋냐."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끼며 아버지에게 살짝 기댔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존재만으로도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치매라는 게 하루아침에 기억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너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없을 거다."
"그게 의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돼, 인마."
아버지가 어깨동무한 팔을 슬쩍 올리더니 헤드락을 걸었다. 나는 아픈 척 신음을 냈다. 아버지는 꿀밤을 먹인 뒤 헤드락을 풀어주었다. 한결 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미래를, 아버지는 과거를 이야기했다. 나는 결혼과 아이와 다음 직장에 대한 걱정을, 아버지는 엄마와의 연애 이야기와 나를 갖기까지의 시간과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마주할 고충에 대한 상담을 해주었다. 중간중간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장작을 넣고 나서 나는 열 살 난 아이처럼 불이 붙은 장작을 들어 횃불인 양 휘휘 휘둘러도 보았다. 아버지가 불붙은 다른 장작을 하나 꺼내 따라 휘둘렀다. 불의 길이 밤하늘에 호를 그렸다. 그 주변으로 불티가 반딧불이처럼 날아올랐다가 사라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장작을 모두 소진한 4시간으로도 부족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오늘만 날도 아닌데 들어가서 자자."
아버지가 옷에 뭍은 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만 날인 건 아니지만 많은 날이 남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먼저 침대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일도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온몸이 찌뿌둥했다. 매트리스가 고무처럼 딱딱해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결리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자고 일어나 보니 그 증상이 예상보다 심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침대를 봤다. 아버지가 침대에 없었다. 끙끙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보니 캠핑 테이블 위 가스버너에 냄비를 앉혀 물을 끓이고 있었다. 언제 사 왔는지 버너 옆에는 라면도 세 봉지 놓여 있었다.
"카운터에서 다 팔더라."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라면을 보고 있자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적절한 때에 일어난 건지 아버지는 라면을 반으로 부셔 냄비에 넣기 시작했다.
"제가 딱 맞춰 일어났네요. 어제 고기도 다 구우셨는데 라면을 저한테 맡기지 그러셨어요."
"딱 맞추긴. 너 일어날 때 바로 먹을 수 있게 물만 계속 부으면서 끓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비어있는 2리터짜리 생수 두 통을 가리켰다.
"말씀 안 하셨으면 감사히 먹었을 건데, 말씀하니까 죄송한 마음에 먹게 되네요."
"네가 라면 끓여줄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났어야 하지 않았냐. 지금 몇 신줄은 알고 그러냐."
나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터치했다. 11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릇이랑 어제 먹다 남은 김치 좀 가져와라."
나는 순순히 숙소 안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김치와 생수, 쓰다 남은 일회용 그릇을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능숙하게 종이컵으로 국물을 떠 그릇에 옮기고 자신의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내게 건넸다. 계란도 파도 고춧가루도 들어간 게 없는, 순수하게 라면에 동봉된 것들로만 끓여진 것이었다. 라면에 이것저것 넣어 푸짐하게 먹는 나로서는 꽤 아쉬운 비주얼이었다.
"밖에서 바람 쐐며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을 거다. 불기 전에 어서 먹어."
아버지도 자신의 그릇에 라면을 적당히 덜어 몇 번 입김을 분 뒤 한입 가득 넣어 드셨다. 나도 입김을 두어 번 분 뒤 면을 먹었다. 뭐지, 왜 맛있는 거지. 특별한 맛이 더해진 게 아닌데 더 맛있게 느껴졌다. 단순히 밖에서 먹기 때문에 맛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내가 잘 끓였으니까."
아버지가 어제 고기를 구워 건넸을 때처럼 어깨가 으쓱했다. 아버지란 존재는 라면조차 연륜으로 끓여내는 것일까. 젓가락질이 저절로 빨라졌다.
설거지는 내가 맡아서 했다. 아버지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본인이 드신 그릇과 젓가락조차 치우지 않은 채 숙소로 들어갔다.
먹은 것을 치우고 나서 오늘 일정을 아버지와 상의했다. 숙소 근처는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와 강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아버지는 낚시도 가능했다면 챙겨 왔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나는 당장 낚싯배를 빌려주는 곳에 전화해 낚싯대도 대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도 만 원에 낚싯대를 빌려준다는 대답을 받았다. 당일 예약도 되냐는 질문에 평일 낮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현장에서 바로 이용가능하다는 대답도 들었다. 낚시가 가능하다는 말에 아버지의 얼굴에 약간의 흥분이 일었다.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셨구나. 낚싯대가 작은 것도 아니고 취미로 즐기셨다면 한 번쯤은 봤을 텐데 나는 아버지가 낚싯대는커녕 낚시 얘기조차 들은 기억이 없었다.
아무튼 아버지를 데리고 가까운 선착장으로 갔다. 가게 주인은 배를 띄울 건지 근처 부둣가에서 할 건지 물었다. 아버지는 배까지 탈 필요가 있냐고 근처에서 낚시를 하겠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낚싯대 두 개와 갯지렁이 한 통, 태클박스 하나를 들고 정해진 낚시구역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맨손으로 능숙하게 갯지렁이를 꺼내 낚시 바늘에 꿰었다. 징그러운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잡아 바늘에 관통시키는 걸 이맛살을 찌푸린 채 쳐다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그런 나를 알아채고는 혀를 쯧쯧 찼다.
"다 큰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무서운 게 아니라 징그러워서요. 살아있는 걸 어떻게 꿰어요."
"이리 줘 봐라. 살아있는 물고기 살 떠 놓은 회는 없어서 못 먹는 놈이 죽은 지렁이 하나 가지고 엄살은."
아버지는 내 낚싯대를 건네받아 지렁이를 집어 들었다.
"이번만 끼워줄 테니 잘 봐라. 미… 미……."
아버지의 손가락 움직임이 멈췄다. 잠깐 동안 뭔가 생각이 잘 안 난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지렁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이제야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떠 주름진 이마를 펴며 말했다.
"미리를 잘 끼워야 낚싯대를 던지거나 강에 빠질 때도 바늘에서 잘 빠지지 않는다."
"미끼 말씀하시는 거죠?"
나와 아버지의 시선이 마주쳤다. 침묵 사이로 절망이 비집고 들어왔다. 잊고 아물어가던 마음이 억지로 찢어지는 아픔이 찾아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오른손으로 착잡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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