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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May 23. 2024

선생님의 방문

 태풍이 불던 어느 , 부스스 눈을 떠보니 사위는 어둑하 짙은 하늘은 얼굴에 쏟아질 듯했다. 오싹한 한기에 무릎을 끌어안으며 이불을 당겨 덮었. 그것은 흥건하고 무거웠다. 몸에 닿자마자 몸서리가 쳐졌다. 비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오메 이걸 어쩐다냐.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국민학교 1학년때 나는 바람을 이기지도 못하는 작은 판잣집에 살았다. 푹 꺼진 부엌, 천정이 내려앉은 방, 작은 보폭으로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변소.

 나는 이곳, 초라한 판잣집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 볼까 봐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거나 어떤 날에는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숨겨왔건만, 그녀만 아니었다면, 그녀만 집에 오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을 텐데...


 숙제검사를 하던 그녀는 내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번주는 너희 집에 가서 밥 먹어야겠다. 괜찮니?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똘똘한 친구들만을 골라 그들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 네...

 나는 안으말려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끈거리는 낯빛을 숨기려 고개를 떨군 채 그녀와 나는 집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심장이 조여들었다. 내 눈엔 멀리서도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었다. 짙은 황토색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조그만 판잣집.

  집에 가까워지자 할머니와 엄마가 밖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를 다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칼로 배춧잎을 썩썩 썰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면을 쓴 사람들처럼 표정이 멈춰 있었는데 내 옆에  있는 그녀를 그제서 얼굴이 움찔거렸다.

 엄마, 우리 선생님이야.

 얘기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수철인형처럼 튀어 오른 엄마와 할머니.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살뜰한 말투로 그녀를 맞이했다. 밥을 먹으러 왔다는 말에 찬장을 헤집어 단출한 상을 내온 엄마는 찬이 없어서 죄송하단 말을 몇 번씩이나 다. 밥상머리에서 할머니와 엄마, 그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여러 번 입가를 올려 웃어 보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 창피함만 꽉 차 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일주일 내내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특별한 사이가 될 것 같아 설레기까지 했다.


  엄마는 내일 무슨 반찬을 대접할까를 걱정하느라 골똘해졌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씀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다음날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집에 가잔말이 없는 무정한 그녀 주위에서 쭈뼛거리던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교실을 나왔다. 그녀가 더 이상 우리 집을 찾지 않는 이유를 되뇌어 보니 적잖이 마음이 아팠다. 그녀도 가난한 판잣집이 싫었던 게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아니고서는 이번주 내내 오기로 해놓고 하루 만에 마음이 변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걷고 있는데 저만치 부반장 명희의 손을 잡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맨바닥을 발로 걷어찼다. 흙먼지가 코에 부딪혀 아릿했다. 잊고 있던 생각이 밀려와 주먹을 거푸 아프게 쥐었다.

  우리 집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는데 선생님은 괜히 우리 집에 와가지고. 

  등뒤에서 친구들의 말소리, 발소리가 섞여 들렸다. 나는 호흡을 골랐다. 애꿎은 신주머니를 발로 차면서, 운동화 앞코가 시커메지도록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걸었다. 판잣집이 보일 때까지 걸음을 재촉하지도, 발걸음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날따라 집이 꽤나 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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