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를 쓰다

by 김선희

꿈을 꾸었다. 베이지톤의 투피스를 입고 큰 가방을 든 초로의 여인이 눈앞에 서 있다. 박완서 선생님이다. 한창때의 모습이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쩍쩍 다셔가며 그녀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뵙고 싶었어요. 저는 '엄마의 말뚝'도 읽었고요, '나목'도, 그리고 수필집도 다 읽었어요. '그 남자네 집'도 물론 읽었고요. 그리고 또 뭐더라. 암튼 선생님작품은 거의 다..."

주름이 잔뜩 잡힌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이렇게 대답한다.

"정말? 그걸 다 읽었어?"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생전영상을 부지런히 찾아보았었다. 김동건 아나운서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볼 때는 왈칵 눈물을 쏟았고, '글 쓰는 박완섭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강의에선 그 인사말이 괜히 좋아서 그 부분을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살아 계신다면 나는 아이돌 팬들 못지않은 덕질을 했음에 분명하다.

더러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를 꽉 차도록 좋아하면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글로 쏟아내고 달래고.

박완서의 문장을 수없이 읽다가 숨이 가빠져서 난 지금 그녀를 쓴다. 길게는 못 쓸 것 같다. 손끝이 벅차서 일관성 없고 두서없이 그저 좋다는 단어만 흩어 놓을 뿐이다.


2026년 1월의 어느 날, '엄마의말뜩'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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