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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ug 25. 2022

프로가 되지못했던 이유

결혼 전에 리포터, MC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큰애가 4살 때쯤까지는 그 일을 이어갔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고 , 일이 많지도 않았고, 그렇게 가끔 들어오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꽤 즐겼었다.

강남 가로수길 개장식 때 사회를 본 적이 있었고. 올림픽공원 디자인클러스터 개장식, 베이징올림픽 선수 인터뷰  크고 작은 행사에서 mc와 리포터를 하면서 꽤 특별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큰애가 2살 때쯤 노래자랑의 사회를 봐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규모도 크다고 했페이도 나쁘지 않았기에 흔쾌히 수락하고 특정 지역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터미널에 내려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초등학교 이름을 일러주며 그리로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살짝 의아했지만 그 지역에서 전통과 명성 있는 학교일 거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없을 만큼 유명해서 찾아가기 쉽게 하기 위해 굳이 초등학교 이름을 말해주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앞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행사장소가 다름 아닌 바로 초등학교라는 걸 바로  수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곳에는 이렇다 할 다른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당자를 따라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서작은 운동장 한쪽에 무대가 세팅되어 있었고 그 옆에 노래방 기계 한대가 놓여있었다. 가물한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지만 현수막에 ○○마을 친목 노래자랑쯤으로 적혀있었던 것 같다. 짙은 메이크업에 딱 떨어지는 정장 차림의 내 모습이 내가 봐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래자랑2시간 뒤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이미 올 사람들은 다 와있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엔 각종 음식과 주류가 차려져 있었고 다들 기분 좋게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아따. 우리 사회자 아가씨가 외국인처럼 이국적으로 생겨부렸네."

나는 지나가듯 던지는 칭찬 같은 한마디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으대신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자랑은 원활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참가번호 1번부터 통제가 어려웠다. 1번이 비틀비틀 걸어 나와 박자고 뭐고 없이 무대를 휘청거리다 들어가 버리고 2번도 3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우왕좌왕 정신없는 광경이 펼쳐졌고 중심이 되어야 할 나는 졸지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번호까지 다 끝나고 시상을 하기 전에 나는 무대에서 나름 농담을 섞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여러분. 제가 생각했던 무대가 아니라 저도 당황했지만 여러분이 원하던 사회자가 아니라 여러분도 당황했으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즐거우셨나요?"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으나  얘기는 그들에게 닿지도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에 내 마이크 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시상식까지 마치고 담당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현장 페이로 두툼한 봉투를 주시면서 말씀하시길 "여기 이 행사 내년에도 또 거예요. 오늘 잘하셨으면 내년에 또 부를 겁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와서도 몇 날을 그 노래자랑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이 밀려왔다.

최소한 미리 분위기를 물어봐야 했었고, 미리 그려보기라도 했어야 했다. 대본도, 리허설도 필요 없단 얘기만 듣고 마음만 가지고 무작정 버스를 탈게 아니라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아니 준비성이 부족했으면 어느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잘 섞일 수 있는 실력이라도 갖추고 있었어야 다.


처음엔 내 기대와는 달랐던 작고 초라한 무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피해자는 내가 아니라 그 무대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마을분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노래자랑을 했던 10월이 찾아왔으나 잘했으면 다시 부를 거라던 담당자에게서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다른 사회자가 능숙하게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머리를 가로젓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따, 작년 사회자보다 백번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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