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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an 01. 2023

7성급 호텔 셰프보다 시어머니

10살 아들이 얼마 전부터 내게 자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단짝친구 태윤이 엄마.

"엄마. 엄마. 태윤이네 엄마는 캐나다 7성급 호텔 셰프였대. 버터스테이크도 진짜 잘하고 맨날 맛있는 것만 만들어준대."

"그래? 7성급? 캐나다에 7성급 호텔이 있어?"

아이들은 다소 허무맹랑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는 걸 안다. 표현이 과하다 보면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7성급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명한 셰프였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는 게 나름의 해석이다.


며칠 뒤 태윤이엄마에게 물어볼게 생겨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서로 안면이 없던 사이여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만날 약속을 잡았다.

"제가 마침 집에서 김밥을 싸는 중이었는데요.

그럼 우리 집에서 같이 점심 먹으면서 얘기할래요?"

초대를 받고 태윤이네 집으로 가는 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오늘 7성급 호텔 셰프가 만든 김밥 먹어보겠네.'


그녀가 셰프라는 게 각인되어 있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김밥을 싸는 모습에아우라가 느껴졌다. 

하지만 김밥은 김밥일 뿐.

식탁에 올려진 김밥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는 없었. 안타까웠던 건 맛도 다른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거였다.

'음... 내가 싼 김밥보단 못한걸~'

여기서 내가 싼 김밥이란 시어머님께 비법을 전수받은 김밥을 말한다.

내가 싸도 저작권은 어머님께 있다고 해야 정확한 계산인 것 같다. 어머님김밥이 7성급 호텔 셰프가 싼 김밥보다 맛있다는 생각은 아주 주관적인 나만의 입맛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다녀온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엄마.  태윤이가 내가 싸 온 김밥 먹어보고 뭐랬는줄 알아?

자기 엄마가 싼 김밥보다 훨씬 맛있대."

이 짜릿한 승리감 같은 건 뭘까?




"어머님. 모레가 어머님 생신인데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잉~  김밥. 네가 싼 김밥이 맛있더라. 그거나 좀 해다오."

지난 12월 29일 어머님의 생신상의 메인 등갈비찜도, 전복버터구이도 아닌 김밥이 되었다.


 년 전부터 요리에서 손을 어머님. 생신상을 차리면서 수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이젠 손수 음식 만드는 걸 생각 못하실 만큼 나약해지신 어머님의 모습이 가슴을 쳐 내릴 만큼 속상하기도 했지만 날 인정해 주는 것 같은 어머님의 작은 표현에 감사하고 뭉클했다. 그러고 나서 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내가 어머님 손맛을 이어받아 참 다행이다. 적어도 김밥만큼은 인정을 받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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