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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Feb 23. 2023

뻐드렁니

키 162에 늘씬한 다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단번에 눈길을 빼앗 정도로 출중한 건 아니지 빠지지 않을 정도의 외모를 갖고 있던 엄마. 그런 엄마의 콤플렉스는 뻐드렁니였다. 툭 불거져 나온 앞니가 전체적인 이미지를 다 잡아먹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삼켜버렸다.


엄마나이 30대 초반쯤 되었을 때 고심 끝에 앞니를 뽑고 씌우기 결정을 했다. 예약을 하고 나서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는 엄마의 표정이 얼마나 들떠 보였는지 그 기억이 흑백필름처럼 아른아른 남아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분명 뻐드렁니가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입은 돌출되어 있얼굴의 변화는 없어 보였다. 되려 붙인 이는 래의 치아보다 턱없이 약해서 늘 조심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로 남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이는 갈아버릴게 아니라 교정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때 그냥 놔둘걸 괜히 했어."

"아이고. 60이 넘어서까지 후회하고 계시네. 이뻐요. 이뻐."

인사치레 수준의 의미 없는 내 대답에 엄마는 이를 드러내며 한껏 웃어 보였다.

"치과 더니 씌운 이가 곧 빠질 것 같다고 지금 하자는 거 딸이랑 온다고 그냥 왔어."

"에이. 그걸 왜 미뤘어."

"그냥... 너도 치과 갈 일 있잖아. 그때 같이할까 해서."

"돈 때문은 아니었고?"

치아는 곧 빠질 것처럼 위태해졌지만 결국 엄마는 치과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 누워있 엄마를 볼 때마다  치아 눈에 거슬리고 걱정이 되었다. 테두리가 까맣게 드러나 있는 것이 툭 치면 당장이라도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 앞니가 곧 빠질 것 같은데 휠체어라도 끌고 치과에 가서 새로 해야 되지 않을까?"

아빠의 한숨소리가 깊었다.

"정신이나 멀쩡하면 모를까. 엄마는 의사가 시키는 것도 못 할 거다.

더군다나  엄마 콧줄로 밥 먹잖아.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없는데 그건 해서 뭐 하냐."

말씀하시는 동안 아빠의 표정은 온통 그늘이었다.


치과에 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엄마. 눈썹문신도 했었었지. 귀는 20대에 뚫었었나?"

예뻐지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썹문신 진하게 됐다고 속상해하던 표정, 귓불에 커다란 링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저희 엄마. 쓰러지전에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그리고 뻐드렁니를 뽑고 씌운 지 오래돼서 앞니가 까만 거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치과에 갈걸. 저랑 같이 가려고 미루다가..."

물어본 적도 없는데 병실 식구들에게 애써 엄마의 지난 모습을 상기하며 설명해 댔다. 그러다 옆에서 거드는 아빠의 한마디에 울컥해졌다. 

"우리 와이프 몸무게도 항상 52킬로 이상 나간 적이 없었어. 몸매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린 그날 6인실 병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입이 아플 때까지 엄마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지금의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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