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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Feb 24. 2023

엄마가 보였다

"저 돈 냅니다."

새로 생긴 과일가게엔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는 카운터에서 정신없이 물건값셈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미심쩍었던 것 같다.

 "저 돈 낸다고요." 

아주머니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면서도 표정엔 의심이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해서는 안될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돈 내셔야죠."

"거봐. 거봐. 내가 이럴 줄 알고 돈 낸다고 미리 얘기하고 냈잖아요."

엄마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나는 얼른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엄마. 진정. 진정."

누구보다 엄마의 성격을 잘 알기에 재빠르게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세상 그 누가 우리 엄마보다 급하고 빠르게 타오를 수 있을까.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온몸의 에너지를 오로지 그 일 해결하는 곳에만 태우고 또 태우 엄마.


가끔 세금 고지서가 잘못 나오기라도 하면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가쁜 숨소리는 집안을 울리 전화번호를 누르는 데는 채 3초가 넘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결투를 신청하려는  비장하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면 인사를 잘라먹고 용건부터 한다.

"저기요. 저 돈냈거든요."

"네? 저... 성함이랑 주소를 말씀해 주세요."

"○○. 인천시 서구... "

주소를 말하는 동안 숨이 멈춰있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일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녹아버리는 게 우리 엄마다.

"밥 먹자. 신경 썼더니 배고프네."




양치질을 하면서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에서 엄마가 보였다.

'어쩜 서 있는 폼까지...'


얼마 전 차를 렌트했다가 억울한 일을 당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렌터카 사장님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또 엄마를 보았다.

"아니. 제가 고바위를 넘은 것도 아니고 정말 조심스럽게 방지턱을 넘고 있었는데 차에서 갑자기 터지는 소리가 난 거라고요."

말하는 동안 숨이 가빠지고 현기증이 났다. 그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밤이 되면 자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사까지 만들어 시물레이션을 그려보느라 밤을 다 보냈다. 그러고 나서는 날이 밝기만을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다가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생각해도 진상이다.

알면서도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결국 원활하게 마무리가 되고 나서야 그제야 밥이 흰색으로 보이고 반찬의 다양한 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가 엄마에게서 가장 싫었던 부분이 이런 점이었는데......'




'어? 분명 여기다 주차를 한 것 같은데......'

차를 찾아 다리가 아플 때까지 헤매고 있는 나에게서 또 엄마가 보였다. 길치에다 방향치. 이것까지 물려주셨구나. 엄만 그렇게 많은 걸 남기고 가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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