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친정에 들어가 살았던 적이 있다. 미혼일 때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과 이미 출가한 상태에서 함께 사는 건 달랐다. 직장 다니느라, 연애하느라 바빠서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시작했고나도 그전보다는 철이 들었는지 예전엔 관심 없던 두 분티격태격하는소리에 귀가 기울어졌다.
어느 날은 밥통에 떡하니 붙어있는 종이를 보고놀랐던 적이 있다. 그 종이에는 굵은 매직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취사 중'
"엄마. 이게 뭐야? 이걸 왜 여기다 붙여놨어?"
"니 아빠가밥 하는 중간에 하도 밥통을 벌컥벌컥 열어대서 내가 붙여놨다."
다시 보니 '취사 중'이라는글씨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듯 이글이글 불타오르고있었다.
엄마가병석에누워있던 기간은5년이 넘었었고 아빠는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엄마를 찾아갔다.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입원기간이길어져도 아빠의 정성은 늘 한결같았다.
"여보. 이○○. 나야. 김○○."
어느 날엔가 엄마와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부르던 아빠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남편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아니야. 아빠만 보면 웃으시잖아."
"그건 내가 자주 오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지.자기한테 잘하니까."
최대한 담담하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아빠는 혼자가 된 후전에 없던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고 전에는 관심 없던법륜스님강의를 찾아 듣고 계신다. 늘 그랬듯 담담하게 살고 계신 듯보인다. 겉으론...
엄마가 떠난내 일상은 얄미울 만큼 변한 게 없다. 가끔씩 멍해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아이코.'식탁에 반찬을 다 차려놓고 밥통뚜껑을 열였는데 밥이 한 숟가락뿐이다. 밥을안쳐놓고밥통 곁을 맴돌다가 2분남았다는숫자가보이는데도조바심에뚜껑에손이 올라간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밥통에 붙여놨던 종이생각에 멍해졌다.'취사 중'남은2분을 기다리는 동안 두분이티격태격하던 옛날을생각했다. 그때는알 수 없었던 그토록 행복했던 일상들이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