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에 문을 연 영국 최대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국립미술관 쯤 되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 세잔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반드시 봐야 하는 작품 목록만 봐도 대단하다.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must-sees
올해로 개관 200주년을 맞아서 고흐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https://www.nationalgallery.org.uk/exhibitions/van-gogh-poets-and-lovers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흐의 명작 진품들이 61점 모여들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 전시를 once-in-a-century Van Gogh exhibition이라고 자랑하는데, 호들갑이 아니다. 진짜다. 이 호사스러운 생일파티에 런던에 살면서 빠질 수 없다. 사실 이미 봤지만 한 번 더 보자. 두 번 세 번 더 보자.
맴버십이 있으면 무료다. 타임슬롯을 따로 예약할 필요조차 없다. 입장 대기줄도 안 선다. 멤버십 카드만 제시하면 직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아무 때나 내키는 만큼 자주 가서 머물고 싶은대로 머물 수 있다. 후원자의 특권이다.
오늘은 점심 약속 뒤 아이 하교 시간까지 딱 한 시간이 빈다. 점심 장소에서 내셔널갤러리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니까 딱이다.
미술 전문가들, 기자님들의 수준 높은 후기들은 차고 넘치니까 내가 어줍잖게 토를 달지는 못하겠다. 전시 소개는 링크를 눌러 보시는 걸로 하고. 나는 내 마음대로 후기.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9193993i
미술관에 직접 가서 작품을 보는 기쁨은 그림의 세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감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온라인에도 많은 그림들이 공개되어 있지만 그 맛은 제대로 느끼기가 어렵다.
위 그림의 부분을 확대했다. 그림 오른쪽 부분에 카메라를 가까이 대다시피 해서 찍은 사진이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고흐는 물감을 두텁게 짖이기다시피 발랐다. 입체감마저 느껴진다.
화병에 꽃힌 잎이 역동적으로 솟구친다. 협죽도라고 한다. 테이블 위에는 책이 두 권 있는데 위 책에는 글자가 보인다.
에밀 졸라 la joie de vivre, 삶의 기쁨. 그림의 의미는 이 사이트에서 보시라. 정보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내가 모르는 걸 알은체하며 또 쓰지는 않겠다.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36530
협죽도의 꽃 부분. 고흐의 그림들은 붓 터치 하나하나가 생생해서 숨 죽이고 들여다보게 된다. 꽃이 화려하면서도 한편 처절하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해바라기 두 점과 여인의 초상이 나란히 걸린 벽 앞. 왼쪽 해바라기가 런던에 원래 있던 그림이다. 런던 해바라기가 훨씬 예뻤다. 오른쪽 해바라기는 200살 생일 잔치에 참석하러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건너온 친구다.
내셔널갤러리 소장 해바라기. 꽃잎은 붓터치가 선명하고 씨앗 부분은 물감을 얼마나 덧발랐는지 심지어 입체적이다.
필라델피아 해바라기는 가까이서 보니 색감이 해바라기 같지 않은, 뭔가 투머치한 느낌이다. 조명 받은 모습을 멀리서 보면 예쁘다. 멀리서, 작품과 좀 내외하면서 보자.
오늘 가장 오래 들여다본 작품. 조명 탓인지 나뭇잎이 하나하나 빛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화폭의 오른쪽 옆에 붙어서 찍은 사진. 물감을 두껍게 이겨 바른 질감이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빛이 부딪히고 꺾이고 튕겨나가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줬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된다. 사과폰이 좋다 해도 눈만은 못하다. 저 그림을 그리던 시절, 고흐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고흐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물감을 짰을까?
내셔널갤러리 200살 생일 잔치는 대박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300살 생일 잔치에는 거의 확실히, 250살 생일 잔치에도 매우 높은 확률로 못 올 것이므로. 나는 런던에 있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더 가지 싶다. 런던에 올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강력 추천이다. 후회 안 하실 거다 정말. 고흐전은 1월 19일까지다.
저 방에서만 딱 한 시간. 61작품을 보기엔 맞춤했다. 이제 그만 나가자, 하다가 재미 있는 걸 발견. 램브란트의 자화상 두 점이 같은 벽면에 걸린 방이 있다.
34살, 그리고 대략 30년 뒤 63살.
죽던 해인 1669년 자화상. 렘브란트의 눈에서는 30대 시절의 총기는 더이상 찾을 수 없다. 얼굴에만 빛이 떨어질 뿐, 몸은 윤곽만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도 소박하고 손은 대충 뭉개놨다. 액자 색깔마저 칙칙하네 그러고 보니.